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 Stout Apr 05. 2021

알약 세 봉지

나의 어린 전두엽과 나이 든 사고인지 기능

    정신과를 방문했다. 불면증 때문이었다. 요 몇 주간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사방이 막혀, 내가 도망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료를 받고 정신과 약을 먹게 됐다. 정신과 선생님은 진료 간 나를 신기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종합심리검사를 추천했다. 비싼 와중에 할부로 결제했다. 검사 결과지를 보고 난 그는 나의 사고 인지 능력과 감수성 인지 능력 사이에 너무 큰 갭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사고인지 능력이 50세에 가까운 나이라면 감수성 인지 능력은 5세-11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어른이 되면 응당 전두엽이 퇴화할 수밖에 없는데, 나의 경우 전두엽의 퇴화가 너무 진행이 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어린아이 들은 엄마가 머리를 자르고 오거나, 키우던 닭이 삼계탕이 되거나, 강아지가 보신탕이 되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곤 하는데, 그들의 전두엽이 민감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나의 전두엽 역시 그들의 것과 비슷하다고. 하지만 내 경우, 어른으로서 인지하는 삶의 덧없음을 어린아이의 감수 능력으로 인지하려니 너무할 수밖에.

    밤에는 신경 안정제를, 아침과 점심에는 활력제를 먹는다. 이 알약은 나의 욕구를 없애준다. 식욕, 성욕, 표현욕 등. 오직 ‘해야 한다’는 의무만 남는다. 표현하고 싶었던 나는 표현해야한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그래서 쓰레기가 된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또 P의 생일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