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 그 벤치에 물들다

나무는 모든 것을 드러낸다

단풍나무 밑동은 어찌나 고운지 나는 연거푸 입맞췄습니다.

찝찔한? 껍질의 감각에 혀에 묻어났습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습니다. 급한 골짜기로 쏟아지는

물을 한쪽 어깨로 받으며, 연한 뿌리로 바위틈에 길을

만들며

언젠가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습니다 푸른 하늘 한쪽에

나의 작은 하늘을 만들며 겁 많은 잎새들을 다른 잎새 위에

드리우며

찝찔한 나의 입맞춤을 단풍나무 껍질은 알았을까요?

이성복 <나무 1>『 그 여름의 끝 』



매년 연어의 회귀처럼 찾아가는 장소가 있다, 초록의 언어가 조락의 언어로 바뀔 무렵이 되면 이른 새벽 서둘러 그곳을 향한다.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 시간, 단풍 빛깔 옷을 입은 이들이 먼저와 삼삼오오 줄지어 걷는다.

단풍의 시간. 나무는 비움의 군무를 시작한다. 우리는 흔히 말하는 단풍으로 물든다는 표현은 과학적으로는 맞지 않다. 엄밀히 말하면 물이 든 게 아니고 본래의 색이 드러난 것이다. 진초록에 가려져있던 것들이 비로소 드러나는 계절이다. 가을은 드러나는 계절인 것이다. 맨 몸이 드러나고 가려져 있던 색이 드러나고, 가지 사이로 하늘이 드러나고 나무의 옹이가 드러나는 계절이다. 앙상한 가지와 마른 잎들과, 저마다의 색들이 드러나는 시간이다. 나무는 스스로 모든 것을 드러낸다.



단풍의 숲으로 접어든다. 약간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비에 젖은 단풍 빛깔이 짙어 보이고 나무줄기는 검어진다, 누군가의 말처럼 비 맞은 나무줄기는 왜 검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검은 나무들의 숲이다.

올해 단풍은 그다지 곱지 않다. 나무도 사람만큼이나 힘들었을 한 해였다. 1년은 어떤 형태로든 지나가고 그 안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1년을 채우는 일, 내 뜻대로 되지 않은 일도 많다.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는 같지 않다. 변해가는 것과 변해버린 것들. 그 사이 1년이라는 시간이 또 흘렀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그저 평범한 나무 벤치, 똑같은 디자인의 나무 벤치들 중 입구에서부터 세어 올라가면 꼭 열 번째 벤치다. 똑같은 벤치를 배경으로 나무 사진을 찍는다. 여전히 같아 보이는 그 자리의 그 벤치. 작년 이맘때, 재작년 이맘때의 그 벤치... 더 거슬러 그 벤치를 찍은 사진들을 다시 들여다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언가가 살짝 달라 보인다. 그건 사진을 찍은 구도 차이도 아니고 해상도 차이도 아니다. 벤치의 낡음 때문인지 주변 나무들의 변화 때문인지 모르겠다.

무엇에 물들고 무엇을 물든인 시간이었을까.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이곳에 올 수 있을까? 망막에 찍힌 벤치와 나무들의 모습과 애써 해독한 그들의 언어를 나는 얼마나 더 간직할 수 있을까.


단풍나무 밑동은 어찌나 고운지 나는 연거푸 입맞췄습니다.

찝찔한? 껍질의 감각에 혀에 묻어났습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습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라는 말이 나를 붙잡는다. 단풍나무 밑동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나무에게 '그렇게'에 대해 묻고 싶어진다. 그렇게 살고 싶은 바람은 바람일 뿐인가.

해마다 비슷한 시기, 같은 곳, 같은 나무 아래를 걸으며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함을 자책한다.

나의 지난한 시간들이. 내가 지나온 1년이. 1년전 단풍나무 밑동을 어루만지며 속삭였던 다짐들이...

'그렇게 살지 못함'으로 느껴질 때.... 나는 언제나 '그렇게 ' 살아갈 수 있을까를 다시 생각한다.

가을은 무엇이든 드러나는 계절이다. 내가 드러난다. 이마에 주름도 드러나고 눈가에 잡힌 주름도 드러난다. 감추고 싶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흐르면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이 더 드러나게 될까? 드러남의 계절. 벌거벗은 나무, 폭로의 계절이다. 그 벤치에 앉아 드러난 것들을 살핀다. 단풍 같은 사람들이 저 아래로부터 밀려온다. 빗줄기가 더 굵어진다. 형형색색의 우산도 사람도 모두 단풍이다.

'그렇게'살고 싶은 소망을 지닌 사람들이 저마다의 단풍 나무를 어루만지며 고해성사를 하는 가을이다./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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