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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이 사랑스러운 존재의 가벼움, 푸바오!

매일매일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정성을 다한 시간 때문이야!

"사랑하는 푸바오! 할부지가 너를 두고 간다. 꼭 보러 올 거야. 잘 적응하고 잘 먹고 잘 놀아라. 할부지가~"

강철원 사육사가 푸바오에게 보낸 편지 

    

참을 수 없이 사랑스러운 존재의 가벼움               

월스트리트 저널 2024년 4월 5일 자 1면에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Adorable"(참을 수 없이 사랑스러운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왔다.

          

밀란 쿤데라의 작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연상시킨다.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 번 뿐이며,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 번만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과연 어떤 것이 좋은 결정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결정인지 결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 가지 결정을 비교할 수 있도록 두 번째, 세 번째, 혹은 네 번째 인생이 우리에게 주어지진 않는다. 도무지 비교할 길이 없으니 어느 쪽 결정이 좋을지 확인할 길도 없다. 모든 것이 일순간, 난생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다. 마치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그런데 인생의 첫 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에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태어남은 리허설과 선택이 불가하다. 태어남과 동시에 주어진 첫 번째 인생에서 우리를 늘 갸웃거리게 만드는 것은 현실에서 직면하는 ‘선택’의 순간 때문이다

인생에서 어떤 선택은 카푸치노를 마실지, 바닐라 라떼를 마실지처럼 가벼운 선택이 아닌 심각하고 치명적인 선택이다. 그 선택의 결과가 인생의 결정적 순간을 만들기도 한다     


 2020년 7월 20일, 러바오와 아이바오의 첫아기, 대한민국 최초로 자연 번식으로 태어난 판다, 푸바오는 중국의 판다 소유권 정책에 따라 2024년 4월 3일 오전 10시 40분에 에버랜드 판다월드를 떠나 중국으로 갔다. 1354일이 추억을 남기고 푸바오가 떠난 4월... 노란 유채꽃이 피어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나는 푸바오 열풍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처음에 나는 

왜 사람들이 ‘푸바오’ 영상을 보고 ‘푸멍’을 하는지

왜 푸바오의 영상을 여기저기 퍼 나르는 것인지

왜 푸바오의 일거일투족이 날마다 업데이트되는 것인지

왜 에버랜드의 다른 동물들보다 푸바오가 더 인기를 끄는지

왜 다른 곰들, 지리산 반달가슴곰에 대한 기사는 안 뜨는지 

왜 푸바오와 관련된 포토북이 인기몰이를 하고

왜 푸바오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왜 푸바오가 떠나는 날 빗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에버랜드의 자이언트 판다 한 마리에 온 국민이 덕후가 되는 기현상이 이상하게 여겨지기도 했고 국가 간 친선 도모 차원의 판다 대여라는 중국의 정책 또한 우호를 가장한 자국의 이해를 위한 불평등 정책이라 생각했다.  

아마도 ‘곰 걱정하는 거 보니... 다들 먹고살기 편한가 보다’.‘ 사람보다 곰 한 마리의 일거일투족이 그렇게 중요하나’ 이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에버랜드에 가서 푸바오를 실제로 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으니 영상으로 접하는 현실이 더 이해가 안 되었던 것이다.     


푸바오에 대한 내 생각의 반전은 의외로 노란 유채꽃 때문이었다.

강철원 사육사가 2017년 푸바오의 부모 아이바오와 러바오를 데려오기 위해 중국으로 가서 2달 정도 머물 때 그들이 살던 곳에 샛노란 유채꽃이 천지였다고 한다.

강 사육사는 판다 부부를 데려와 제일 먼저 한 일이 고향의 유채꽃을 기억하라는 의미로

판다월드에 유채를 키웠다고 한다. 노란 유채꽃을 보며 떠나온 고향을 기억하기를...     

푸바오는 노란 유채를 꺾으며, 노란 유채 아래 뒹굴며 자랐다.

강할부지가 대나무에 꽂아주는 노란 유채꽃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푸바오의 표정은 진지하다     

푸바오가 한국을 떠날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아직 날씨가 추워 에버랜드에 유채꽃이 만발하지 않았다고 한다. 강사육사는 푸바오의 눈에 한국의 유채꽃을 잊지 말라고, 고향을 기억하라는 의미로

온도를 높여주며 개화를 앞당기기도 했다     

노란 유채꽃.... 그가 푸바오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노란 유채꽃은 정성을 다한 시간의 상징이다.

생텍쥐페리의 작품 『어린 왕자』에 별에 두고 온 한 송이 장미가

지구별의 5000송이 장미보다 더 소중한 이유는 ‘정성을 다한 시간 때문’이라는 말처럼     

푸바오의 1354일은 그를 비롯한 다른 사육사들이, 푸바오에 관심을 갖는 모든 이들이

정성을 다한 시간이다. 돌아보면 노란 유채꽃뿐이겠는가?


아기 판다 출생 100일을 맞아 여러 후보 이름 중에서 관객들의 투표로 결정된 ‘푸바오’(행복을 주는 보물)란 이름 또한 중국반환을 염두에 두고 중국식으로 지어야 한다는 룰 때문에 선택된 이름이라 한다.

이름을 갖는다는 것 100일, 아기 판다는 그날로 행복을 주는 보물로 우리에게 왔다.


2021년 7월 20일에 첫 돌을 맞아 푸바오의 돌잔치가 열렸고 돌잡이로는 워토우(窝头)를 잡았다. 2022년 9월 1일에는 어미 아이바오를 떠나 독립하고 11월 1일에는 사육사로부터도 독립했다. 부모와 사육사로부터의 독립은 어엿한 한 마리의 자이언트 판다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푸바오 좋아하는 것은 물놀이, 공놀이, 나무 타기, 자기, 마사지받기, 사육사, 죽순, 워토우, 당근, 대나무, 사과, 장난치기, 눈, 눈 덩어리,  엄마와 놀기, 사육사의 스마트폰이고 싫어하는 것은 호박, 퇴근, 장미, 더위, 구충약, 사육사와 엄마가 혼내는 것이라 한다.

가장 인상적인 사진은 강 사육사와 나란히 앉아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이다.

사람과 동물의 교감이 느껴져서 아름답고 따뜻하다. 

푸바오의 팔짱. 어지간한 교감이 아니고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다

억지로는 연출이 불가능한...     


이미 한국을 떠난 푸바오가 여전히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수많은 자이언트판다 중

2020년 코로나라는 가장 슬프고 힘든 시간을 함께 거친 판다이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의 정점에서 무너지는 자영업자, 죽어가는 사람들, 부작용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우리는 모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경계의 눈빛을 보내야 했던 그 살벌한 시기를 지나왔다.

판다월드의 푸바오는 코로나가 절정이던 그해 태어났다.     


‘매일매일 행복해’

“푸바오, 고마웠어”

“10년이 지나도 넌 영원한 아기 판다‘     


‘매일매일 행복해’라는 말은 매일매일 행복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반증이다

우리는 매일 행복해지고 싶다. 그러나 현실을 입을 굳게 다물게 하고 자꾸만 눈빛을 흔들리게 하고 등을 왜소하게 한다

‘행복’이란 말이 너무 먼 외계의 단어 같아서 아득해질 때, ‘행복’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 너무 버겁게만 느껴질 때.. 4살 푸바오는 그냥 주어진 현실을 열심히 산다. 대나무 잎과 줄기를 우걱우걱 먹으며....

나무에 올라가 바람에 실려오는 향기들을 맡는다.

어떤 이들은 판다 곰 한 마리의 사육비가 엄청나다는 말도 한다.

왜 대여까지 하면서 그런 비용을 부담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말도 한다.

사실 경제 논리로 따지자면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행위는  마이너스다.  태생적으로 금수저 아닌 이상은 ‘먹고살기 위해’ 우리를 위한 엄청난 사육비(주거비, 교통비, 교육비, 양육비, 공과금, 노후대비 등등)가 필요하다.     


왜 우리는 4살 자이언트  판다 푸바오 때문에 울고 웃는가?

이미 한국에 없는 푸바오의 사계절 동영상을 보고 또 보고 끝없는 ‘푸멍’에 빠져드는 것인지?

생각해 본다.    

이유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치유받지 못한 마음, 떨림, 설움, 위로받고 싶은 마음, 용서와 화해, 슬픔, 현실의 막막함 때문이 아닐까? 이런 마음을 어디에도 표현할 수 없다.

우리 안의 이런 마음들이 이제 부모와 떨어져 새로운 판생(판다의 생)을 시작하는 4살 판다에게 전이되는 것이다.

비를 맞으며 판다와의 이별을 안타까워하며 슬픔에 젖는 것은 우리 안에 억눌러있던 누군가와의 이별을 떠올리게 하고...

천진한 푸바오의 눈빛은 아주 오래전 아기였던 자녀들의 순수함을 떠올리게 한다

호기심, 응석, 분노, 슬픔... 세상의 모든 동물도 희로애락을 경험한다

좋은 감정들, 따뜻하고 감정을 품으며 매일매일 행복하기를 바란다     

인간들의 숲, 언제부터인가 편견과 차별, 서열, 감정, 정치적 종교적 차이, 경제적 불평등과 소외.... 어쩌면 우리는 이미 인간들의 숲에 지쳐버린 것이다.


열심히 살아도

열심히 달려도

생을 위해 전력질주를 해야만

겨우 제자리라도 지키는 현실은 잔인한 정글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 누군가는 밀려나야 한다.


거대한 애벌레 기둥

끝없이 딛고, 짓밟고 올라가는 애벌레 기둥의 끝....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모두 덧없는 것임을 알지만 우리의 현실은 끝없이 우리를 기둥의 끝으로 내몬다.     

세속의 관점에서 자꾸만 도태되는 우리들은 모두 잠재적 멸종 위기 종인지도 모른다.          


추상적인 가치들이 있다. 경제 논리로 잴 수 없는 것들     

송 사육사가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푸바오가 먹던 마지막 대나무와 푸바오의 몽글거리는 솜털 한 뭉치. 강 사육사가 손바닥 크기만 한 일기장에 빼곡히 적어두는 그 모든 기록들... 

긴 줄을 서서 잠깐이라도 푸바오를 만나려던 사람들의  발걸음. 내리던 비, 형형색색의 우산들

그 안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슬픔과 아픔들이 녹아있는 것이다.

     

우리가 행복할 수 없었기에 우리의 삶이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기에

우리는 4살 푸바오에게라도 마음을 전이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이 현실이 너무 각박하고 슬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가는 끝없이 오르고 김밥은 금밥이 되고 국민과일이라던 사과는 금사과가 된 지 오래고.

카페 자영업자는 과일대신 자신을 갈아 넣어도 한 달 월세조차 나오지 않는다 한다

신문에 도배되는 온갖 슬픈 사건 사고 소식

전쟁, 유가 인상, 살인....     

왜 우리가 4살배기 ‘푸비오’에게라도 기대려 하는 것인지 알 것 같다.

바로 그러하기에 ‘1354일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이리라.

     

서울시에 푸바오를 다시 데려오자는 민원이 접수되었다고 하지만 푸바오에게는 이제 푸바오 스스로 행복을 선택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강철원 사육사의 말처럼 인간이 생각하는 행복의 관점에서 동물을 바라보면 안 된다는 것.

사람도 그러하지만 동물에게 있어 더욱 중요한 결정적 시기를 인간의 욕심으로 놓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찬란한 4월.... 노란 유채꽃이 피었다

바람에 흔들린다. 회색의 도시에 노랑이 번진다. 

현재 푸바오는 엄마 아이바오가 타고온 케이지에 실려 중국 쓰촨 성 자이언트 판다 보전 연구센터 중 하나인 워룽 선수핑 기지에 머물려 적응 훈련을 하고 있다.       

그곳에도 유채꽃이 만발하기를...  

그리하여

떠나온 곳을 그 향기와 그 노란 색깔로 기억해 주기를

매일 행복해 지가를....... 

저마다의 자리에서............... / 려원

  # 푸바오!! 참을 수 없이 사랑스러운 존재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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