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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저 빨간 우체통 같은 방 안 어딘가 끝없이 타오르는 내가 있기를....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이수익의 시 ‘우울한 샹송’이 제목인데도 왜 나는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가 제목처럼 생각되는 것일까? 그의 시에서 반복되는 질문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때문일 것이다. 


<우울한 샹송 >  이수익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기진한 발걸음이 다시

도어를 노크하면

그때 나는 어떤 미소를 띠어

돌아온 사랑을 맞이할까     / 부분 발췌



 오래전 시내 한복판에 있는 우체국은 만남의 장소였다. 삐삐가 유일한 연락 수단이었던 때 우체국 앞 공중전화는 늘 긴 줄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체국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곤 했고 우체국 앞, 나지막한 4단 정도의 계단에는 사람들은 층층이 자리 잡고 서서 멀리서 걸어오는 친구를 찾아 손을 흔들곤 했다. 

  만남의 거리, 가만히 서있어도 등 떠밀리듯 걷게 되는 젊음의 거리였다. 그 찬란함의 한 복판에 우체국이 있었다. 갑자기 소나기라도 내리는 날은 계단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우체국으로 들어가 비를 피하기도 했다. 우체국 근처에는 꽤 오래된 유명한 서점도 있었고, 베토벤이라는 클래식 음악 감상실도 있었고 원두커피 전문점도 있었다. 편지와 책과 음악, 그리고 커피 찬란한 계보 같은 것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찬란한 시간의 한 복판에 있었던 그 우체국을 찾았다. 창밖으로 그때와 똑같은 에메랄드 빛 하늘이 보였다. 그 시절이 우체국과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 다만 그곳을 찾는 이들이 변해버린 것. 편지를 부치고 소포를 부치고 부산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여유를 잃어버린 사람들, 끝없이 움직인다.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시인의 독백처럼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 위해 우체국 유리창에 엽서를 대고 무언가를 쓴다. 기억나는 사람들. 유난히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린다. 누구에게 보낼까.

 ‘잘 있다고, 너와 함께 본 태종대 앞바다가 그립다고, 우리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라고 적는다. 어디에 살고 있는지 주소조차 알지 못하는 그 친구에게 엽서를 적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이 엽서 안에 남겨진다.

보내지 못하는, 보낼 수도 없는 엽서에 태종대 앞바다의 거센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편지를 부치기 위해서 우체국으로 가던 시절이 있었다. 우체국까지 가기 번거로운 날은 

길거리 어디서든 볼 수 있던 새빨간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돌아오곤 했다....     

포만에 겨운 새빨간 우체통의 입이 열리면 새하얀 편지들이 쏟아져 나온다. 

우체부 아저씨의 불룩한 갈색 가방 위로 튀어나온 편지들. 봄, 여름, 가을, 겨울. 아저씨의 경쾌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올 때면 설렘을 품고 대문 앞으로 달려가곤 했다.

집집마다 대문에 걸려있던 우편함에 편지를 꽂아놓고 돌아서는 낙타처럼 굽은 등. 경쾌한 걸음의 끝 불룩한 가방의 벌린 입이 오므라들면 그의 일과가 마무리되는 것이리라.     

빨간 우체통도,  주택가 대문 앞에 어김없이 붙어있던 우편함도 사라져 간다. 

온기들, 그  안에 있어야 할 온기, 내 안에 있어야 할 온기들이 사라져 가는 것이리라.

누구에게든, 무엇에든 정성을 다하던 시간이, 편지 속 붉은 마음이 담겨 받는 이의 우편함에 정착한다. 사소한 행복들. 이제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인가.         

자판을 두드려 대충 몇 자 적당히 쓰고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불과 몇 초 안에

수신인의 메일함으로 즉시 날아가는 시대, 편지지를 고르고, 마음에 드는 펜으로 정성을 다해 쓰던 아날로그적 편지들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우편함에서 꺼내오는 것들의 대부분은 광고물이거나, 청구서거나 아파트 관리비 명세서...... 거주자에게 통지되어야 할 목록들이다.  슬픈 삶의 목록이다. 

        


   행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리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 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던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리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부분 발췌)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던/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사랑하는 것은 사랑받느니 보다 행복하다고/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고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진정 행복하다고.... 청마 유치환은 말한다     

‘행복’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빨간 우체통 같은 집. 작은 네모 창문, 저 붉은 집 안에는 누가 살까? 

어디선가 날아온 새하얀 편지가 수북이 쌓여있을지도 모른다. 수취인 불명의 편지들. 전해지지 못한 사연들이

거대한 빨간 우체통 같은 집안에 있다.     

 빨간 벽을 타고 초록 잎들이 자란다. 유리창으로 안을 들여다보려고...

나를 사랑했던, 누군가를 사랑했던 시간, 새하얀 편지지 위에 거침없이 써 내려간 그 모든 사소한 행복들, 나를 타오르게 하던 것들이 모두 저 안에 있는 것만 같아 빨간 우체통 같은 집 앞에서 머뭇거린다.      

  우체국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시가 또 하나 있다.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다. 고등학생이던 황동규가 짝사랑하던 여대생을 생각하고 쓴 절절한 사랑의 시로 알려져 있다.     


즐거운 편지/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 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부분 발췌)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고,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그대가 나에게 한없는 기다림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구절이 마음에 와닿는다.           

우리 안에 있던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

한없이 잇닿은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골짜기에 눈이 퍼붓기 시작하지만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 화자는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더라도 변치 않을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한다

저 빨간 우체통 같은 방,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이 소실되지 않은 곳,

한 없이 잇닿은 기다림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곳

또 여전히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해 보는 방     

아직 재가 되지 않은 내가 남아있기를

오래전 그 무엇이든, 세상의 모든 것이 내 발화점을 자극하던

끝없이 타오르는 내가 있기를....

저 빨간 우체통 같은 방 안 어딘가에.............

기꺼이  그곳에 멈추어도 좋을 그 방 어딘가에..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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