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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간으로 가는 길, 찬란하다

오는 중입니까? 가는 중입니까? 당신! 

뒷간으로 가는 길, 찬란하다        

           

해우소(解憂所) 근심을 해결하는 곳이다. 화장실에 ‘해우소’라는 명칭을 처음 붙인 이는 통도사의 경봉 (鏡峰·1892~1982) 스님이라 한다.     

경봉스님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한 노스님이 산길에 앉아 있는데 한 젊은 스님이 지나다가 물었다.

“오는 중[僧]입니까?

가는 중[僧]입니까?”

분명 노스님을 희롱하는 언사였기에 곁에 있던 시자(侍者)가 발끈했다.

그러나 노스님은 태연하게 한마디 했다. “나는 쉬고 있는 중이라네.”

그 노스님이 바로 경봉스님이다.     


해우소(解憂所)는 절에서 주로 부르는 이름이고 화장실(化粧室), 변소(便所), 칙간, 측간, 뒷간, 똥둑간, 작은집, 측실이란 이름으로 흔히 불렸다. 몸 안의 근심과 걱정을 가득 쌓아두면 병들게 마련이다. 뒷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고통을 혼자서 해결하는 은밀한 곳이다. 그러하기기에 앞에 있지 않고 대부분 건물의 후미진 곳에 있다.

     


< 선암사 >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 앞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

- 정호승 <선암사> 후략


시인의 말처럼 실컷 울고 싶은 날, 선암사 해우소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닐까...      

뒷간으로 가는 길, 햇살에 버무려진 싱그러운 연두와 붉은 꽃. 찬란하다. 

근심 걱정을 품고 뒷간으로 가 조용히, 고요히, 천천히  근심과 걱정을 거기 놓아두고 돌아온다.

     

낡은 나무 간판에 적힌 ‘뒷간’이란 말이 ‘인생학교’의 초대장처럼 여겨진다. 

뒷간은 철학교실이다,

컴컴한 곳,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만 눈부실 뿐...

가르치는 이는 없지만 우리는 모두 뒷간의 수강생들, 낙제도 졸업도 없는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잘 먹고 잘 싸는 일이 모든 것의 본질이라는 것을 몸으로 터득한 수강생들이다.     


< 두 번은 없다 >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 (후략)     

- 비스와봐 쉼보르스카     


뒷간 앞에서 오래전 젊은 스님이 경봉스님에게 했다던 선문답 같은 질문을 생각한다.

  “오는 중[僧]입니까?, 가는 중[僧]입니까?” 

   인생학교 같은 뒷간 앞에서 나는 인생의 어디에 와 있으며 어디를 향해 가는가?를 묻는다. 오고 있는가, 가고 있는가..... 찬란한 5월의 뒷간에서 묻는다./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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