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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붉은 수수들이 솨악솨악 붉은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붉은 수수밭』 모엔, 에로스의 기원, 투쟁의 성지, 일상의 삶의 장소

붉은 수수밭          

“ 난 단지 나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왔습니다. 난 행복을 사랑했고, 힘을 사랑했고, 아름다움을 사랑했습니다       

8월 만추가 되면 끝도 없이 펼쳐진 수수의 붉은빛이 광활하게 일렁이는 피바다를 이루곤 했다. 수수로 덮인 가오미 마을은 찬란하게 빛났다.     

이 책의 원 제목은 『붉은 수수 가족』이다. 모엔의 연작  붉은 수수, 고량주,  개의 길, 수수 장례. 기이한 죽음 중 첫 번째 작품 '붉은 수수'를 원작으로 영화화된 『붉은 수수밭』이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하면서 더 유명해진 소설이다. 『붉은 수수밭』은 할머니와 위 사령관 세대, 아버지와 나로 이어지는 삼대의 역사가 담겨있는데 화자인 내가 이름 없는 무덤과 몇 줄의 기록만으로 남겨진 집안의 역사를 이야기로 풀어 복원해 가는 내용이다. 소설은 '나'가 서술하는 동시에 '나의 할머니ㆍ할아버지ㆍ아버지ㆍ어머니'가 주인공 화자로 등장함으로써 이들 가족의 오래전 옛이야기를 현재의 이야기처럼 생동감 있게 전달한다.  

   


1920년대 중반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의 중국 산둥 성 가오미 지방을 배경으로 하는데  가오미 둥베이 지방은 붉은 수수가 피바다를 이루고 붉고 검은빛으로 일렁이고, 생명의 근원인 모수이강이 흐르는 곳이다. 피비린내와 수수가 익어가는 냄새가 뒤섞인 곳, 사랑, 증오, 찬란함과 비장함, 잉태와 소멸, 환희와 절규가 공존하는 역설의 공간이다. 피로 물든 검은 수수밭과 피로 물든 모수이 강에서 사람들은 사랑을 나누고 일제에 저항하고, 생에 맞서고 죽어간다.. 붉은 수수밭은 에로스의 기원이고 투쟁의 성지이고, 일상의 삶이 반복되는 곳이다. 붉은 수수는 거침없이 자라고 꺾이고 또다시 자란다.

      

가오미 현 둥베이 지방은 분명 이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누추하고, 가장 초연하면서 가장 속되고, 가장 성결하면서 가장 추잡하며, 영웅호걸도 제일 많지만 개잡놈도 제일 많고, 술도 제일 잘 마시고 사랑도 제일 잘할 줄 아는 곳이라는 사실을. [……] 8월 만추가 되면 끝도 없이 펼쳐진 수수의 붉은빛이 광활하게 일렁이는 피바다를 이루곤 했다. 수수로 덮인 가오미 마을은 찬란하게 빛났다. 수수의 슬픔은 처연했고 수수의 사랑은 격렬했다.          


짙은 안갯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붉은 수수의 우울한 표정을 읽고 수수의 생생한 영혼과 교감을 느끼고 수수들의 신음소리, 웃음과 울음소리를 듣는다. 온갖 제도적 구속에서 벗어나 위진아오와 수수밭에서 사랑을 나누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 여자 추억과 사회적 하층민이었던 한계를 극복하고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일제에 저항한 위잔아오를 주축으로 전개된 과거와 화자인 내가 살아야 하는 현재 그리고 어떤 형식으로든 펼쳐질 미래가 수수밭의 바람 소리에 뒤섞인다.          

 

 그들은 사람들을 죽이면서까지 아낌없이 조국에 충성을 바쳤으며, 한 막 한 막의 영웅적인 장극(壯劇)을 연출함으로써 이렇게 살아 있는 불초한 자손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세상은 진보하지만 그와 동시에 종(種)은 퇴화한다는 것을 난 절실하게 느낀다.           


고향을 떠나온 지 10년 만에 나는 영리한 상류사회가 내게 물들인 거짓된 감정과 거짓된 생각을 가지고, 더러운 도시 생활의 냄새나는 물에 흠뻑 젖어 모공 하나하나에서까지 코를 찌르는 악취를 발산하게 된 몸을 이끌고 다시 한번 작은 할머니 무덤 앞에 섰다.        


『붉은 수수밭』에서 죽음은 삶을 완성하는 죽음이며 ‘신화’는 죽음으로 다시 살아나는 삶의 이름이다. 죽음은 ‘한 세대에서 다른 한 세대로’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유한한 삶을 무한한 생명의 유전으로 바꿔놓는다. 하나에서 열, 열에서 백으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면서 아름다운 신화 한  편이 되고 흑토 위에 뿌리내리고 꽃을 피우고 다시 시큼하고 쌉쌀한 열매를 맺으며 그것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면서 마침내 해방을 완성한다.                    

     

『붉은 수수밭』은  문둥병을 앓고 있는 양조장집 아들 산볜량에게 나귀 한 마리 값으로  팔리듯 시집가던 추얼이 신부 꽃가마꾼 위잔아오와 사랑에 빠져 '나'의 아버지를 잉태하는 시점에서 비롯된다.      

수수냄새가 가슴 깊숙이 파고들어 왔다. 수수밭에서는 진기한 새들이 높고 낮은 소리로 지저귀고 있었다....

할머니는 보드랍고 왕성하고 물기가 축 촉했다. 곰팡내 나는 머릿수건을 벗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혼인의 전통에 따라 작열하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세 겹으로 된 솜저고리와  솜바지를 입고 있었다. 

너덜너덜하게 낡은 꽃가마에는 때가 꼬질꼬질하게 묻어있었다. 그것은 관처럼, 결국은 시신이 될 운명에 놓인 신부들을 얼마나 많이 실어날랐는지 모른다. 죽순같이 뾰족한 다리를 내밀어  가마의 휘장 사이에 틈을 내고는 밖을 내다보았다.

가마꾼들의 몸에서는 시큼한 땜 냄새가 풍겨 나왔고 할머니는 넋이 빠진 사람처럼 그 남자 냄새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가마꾼들의 ‘길 밟기’ 제대로 자격을 갖춘 가마꾼 들음 도두 두 손을 허리춤에 댄 채 발걸음을 맞추어 걷는다...

수숫잎이 가마를 스치면서 다시 츠츠 소리를 냈다. 수수밭 깊숙한 곳에서 갑자기 높아졌다 낮아졌다 은은하게 들려오는 울음소리가  길거리의 단조로움을 깨뜨렸다.

.. 다시 두려움 속에서 문둥병으로 문드러진 산볜랑의 얼굴을 보았고, 순간 얼음 같은 냉기가 가슴속 깊이 파고 들어왔다. 아름다운 발과 복숭아 같고 앵두 같은 얼굴과 이처럼 정이 많고 재주가 뛰어난 자신의 청춘이 정말로 문둥병자에게 바쳐져야만 하는가?..

할머니의 통곡소리가 수수밭사이로 깊숙이 난 오솔길을 흔들어놓았다. 날라리의 흐느낌은 여인의 흐느낌보다 아름다웠다. 처연한 곡조 속에서 죽음의 소리를 듣고 죽음의 냄새를 맡고 죽음의 신이 수수처럼 시뻘건 입술과 옥수수처럼 누런 얼굴을 하고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수수밭 사이의 작은 길을 지날 때 대열은 이미 신랑을 맞으러 가는 게 아니라 장사를 지내러 가는 것 같았다. 할머니의 발 앞쪽에 선 가마꾼 위잔아오의 마음에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 바람이  거세고 날카로워지면서 수수는 앞으로  밀리고 뒤로 몰리며 물결을 이루어 흔들렸다.     

위잔아오는 수숫대를 붙잡고 서서 길모퉁이를 돌아가는 추얼을 눈빛으로 전송했다, 수수를 거칠게 밀치며 방금 전의 성스러운 자리로 돌아와 누웠다. 붉은 해가 서쪽으로 기을 때까지 자고 깨어난 뒤 맨 먼저 본 것은 수숫대와 수수 이삭 위에 두툼하게 칠해진 붉은색이었다. 수수들이 솨악솨악 소리를 내고 있었다.     


위잔아오는 양조장집 산티유, 산볜량 부자를 살해해 추월이 양조장의 안주인이 되도록 하고 그녀의 남편이 되었다. 양조장은 맛과 향이 뛰어난 최고의 고량주를 빚어 번창하고, 민중들은 그 술을 마시며 공동체의 결속을 다진다. 위잔아오는 뛰어난 기개와 능력을 바탕으로 민중을 통솔하며 저항의 영웅으로 일제에 맞선다. 일제의 착취는 점점 심해져 가고, 양조장의 큰 어른 뤄한 큰할아버지(大爺)가 가죽을 벗겨 죽임을 당하자 양조장 사람들은 복수를 다짐한다. 위잔아오는 수수밭에서 매복전응 벌여 일본군에 승리를 거두지만 추얼이 총에 맞아 숨진다.     


할머니는 너무나 피로하다고 느꼈다. 그 미끌미끌한 현재의 손잡이가, 인간 세상의 손잡이가 그녀의 손을 막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죽음인가? 내가 죽어가고 있는 건가? 이 하늘과 이 땅, 이 수수와 나의 아들을, 지금 사람들을 데리고 전투를 벌이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는 것인가? 총소리가 너무나 멀게 들렸고, 모든 것이 두꺼운 안개 뒤에 가려져 있는 것 같았다. 더우관! 더우관! 내 아들아, 엄마를 도와주렴. 어미를 꼭 잡아라. 어미는 죽고 싶지 않다, 하늘이시여! 하늘…… 하늘이 내게 사랑하는 이를 주셨고, 하늘이 내게 아들을 주셨고, 하늘이 내게 재물을 주셨고, 하늘이 내게 붉은 수수 같은 30년의 충실한 인생을 주셨습니다. 하늘이시여, 당신이 이왕 나에게 준 것이니, 도로 거두어가지 마소서. 나를 용서하소서, 나를 놓아주소서! 하늘이시여, 당신은 내가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나요? 당신은 내가 문둥병자와 동침을 해서 살이 썩어 문드러지는 괴물을 낳아 이 아름다운 세상을 형편없이 더럽혔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하늘이시여, 무엇이 정조고, 무엇이 정도(正道)입니까? 무엇이 선량한 것이고 무엇이 사악한 것입니까? 당신은 한 번도 말해준 적이 없고, 난 단지 나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왔습니다. 난 행복을 사랑했고, 힘을 사랑했고, 아름다움을 사랑했습니다. 내 몸은 나의 것이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난 죄도 벌도 두렵지 않고 당신의 열여덟 층 지옥에 들어가는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난 해야 할 일을 다 했으니 어떤 것도 겁날 게 없습니다. 하지만 난죽고 싶지 않습니다. 난 살아야겠습니다. 살아서 이 세상을 더 보아야겠습니다. 아 나의 하늘이시여……    

 

무엇이 선량하고 무엇이 사악한 것인가? 살아가는 일, 어느 한순간의 궤적만으로 어떤 한 사람의 일을 평가하는 것은 위험하다

일본군의 총에 맞아 죽어가는 추얼이 " 행복을 사랑했고, 힘을 사랑했고, 아름다움을 사랑했으며 해야 할 일을 다 했기에 어떤 것도 겁날 것이 없으나 다만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살아서 이 세상을 더 보아야겠습니다.'라는  말이 가슴을 울린다.


어미의 죽음을 목격한 아들이 외친데.

" 엄마... 엄마.... "

'엄마'라는 말이 이렇게 강렬하고 크고 숭고하고 두렵게 느껴진 적이 있을까.


 이어지는 일본군의 보복 학살로 가오미 현은 처참한 살육의 땅으로 변해간다. 일제에 맞서기 위해 렁 부대(국민당), 팔로군(공산당), 철판회(민병 조직) 등이 여러 조직이 생겨나지만  '나의 할아버지'인 위잔아오 사령관은 어느 거대 조직에도 가담하지 않고 선봉에 서 민중들을 진두지휘하며 일본군에 저항한다.                          

이레 후면 8월 15일 중추절이다. 둥근달이 천천히 떠오르면 사방에 널린 수수들은 숙연하게 서 있었고 달빛에 젖은 수수 이삭들은  수은을 묻은 듯 반짝거렸다.

아버지가 조각난 달빛 아래에서 지금보다 몇 배나 강렬했을 그 들척지근한 비린내를 맡고 있을 때 위잔아오 사령관이 아버지를 데리고 수수밭으로 걸어 들어갔다. 3백 여구가 넘는 동네 친지들의 섞은 시체가 잘려나간 팔과 다리들이 겹겹이 포개진 채 이리저리 뒹굴었다.. 시체에서 흘러나온 선혈이 수수밭 한쪽을 적셔놓았고 수수밑동의 검은흙은 피로 진창이 되어 그들의 발걸음을 더디게 만들었다. 들척지근한 비린내가 강해졌다.          


* 만국 27년 일본군이 가오미, 핑두, 자오현 사람들을 40만이나 잡아가서 쟈오핑로를 닦았다. 훼손된 농작물이 부지기수였다.  자오핑로 공사가 가오미 마을까지 이르렀을 때 들판의 수수는 어른 허리만큼 자라 있었다. 길이가 70리, 넓이가 60리나 되는 저지대의 평원 위에 촌락, 두 갈래의 강줄기, 마을 사이 급이진 밭둑길 말고는 초록 파도처럼  펼쳐진 것이 모두 수수였다,


일본군은 가오미 마을을 사람들을 학살하고 붉은 수수를 학살한다. 군수물자 수송을 위한 도로를 내기 위해 총칼로 사람들을 겁박해 수수밭을 초토화시킨다. 우두둑 우두둑 밟히고 쓰러지는 수수의 거친 몸뚱이, 검붉은 얼굴의 절규.       

   


오랜 시간이 흘러 ‘나’는 가오미 마을의 작은 할머니 무덤 앞에 선다. 

그곳에서 조상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쓸쓸한 소리가 망망한 대지 깊은 곳에서 전해온다. 이 소리는 익숙하면서 낯설다. 할아버지의 소리 같기도 하고 아버지 소리 같기도 하고 뤄한 큰 할아버지 소리 같기도 하고 할머니들의 맑고 깨끗한 노랫소리 같기도 하다. 온 가족의 망령이,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계시를 보내고 있다     

“가련하고  나약하고 시기심 많고 편벽되고 독주에 영혼이 미혹당한 아이야, 너는 모수이 강으로 가서 사흘낮 사흘밤동안 몸을 담가라.

기억해라, 하루도 더 믾아서도 더 적어서도 안된다. 너의 몸과 영혼을 깨끗이 씻은 뒤 너의 세계로 돌아가라. 바이마 산의 양기, 모수이 강의 음기, 순종의 붉은 수수 한 자루, 온갖 노력을 다해 그것을 찾아야 한다. 너는 그것을 높이 들고 가시가 무성하고 호랑이와 이리가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세상을 두루 다니며 경험해라. 그때 그것은 너의 호신부가 되고 또 우리 가족0의 영광스러운 토템이 되고, 우리 가오미 둥베이 지방의 전통적인 정신의 상징이 될 것이다. “          


지금 작은 할머니의 무덤을 에워싸고 있는 것은 하이난 섬에서 가져온 잡종 수수다.

가오미 둥베이 지방이 검은흙은 울창하게 덮고 있는 것도 잡종 수수다. 피바다 같은 붉은 수수는 이미 혁명의 거센 물살 속에서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고 그것들을 대신한 것은 키가 작고 줄기는 굵고 입은 촘촘하며 온몸에 이얀 가루가 묻어있는, 수수 이삭이 개 꼬리처럼 긴 잡종 수수들이다.     


잡종 수수의 포위 속에 나는 낙심하고 잡종 수수를 혐오한다. 언제나 덜 익은 녹회색의 눈을 반쯤 감고 있는 듯한 잡종 수수는 영원히 무르익지 않는 것만 같다. 누추한 잡종들이 쑥쑥 자라나 토종의 붉은 수수를 대체하는 것을 본다. 


붉은 수수의 찬란한 색도 영혼과 풍모도 없는 침침하고 어정쩡하게 좁고 긴 얼굴의 잡종 숫수가 가오미 둥베이 지방의 순수하고 맑은 공기를 더럽히고 있다.   잡종 수수가 빈틈없이 들어찬 진영 안에서 나는 이제 다시는 존재하지 않게 된 진기한 광경을 떠올린다 8월 만추 온 들판의 수수들이 붉은색으로 광대무변한 피바다를 이룬 광경을, 가을 물이 범람해서 수수밭이 온통 바다가 되면 혼탁한 누런 물속에서 검붉은 수수들은 머리를 치켜들고 푸른 하늘을 향해 완강하게 호소하던 광경을, 이것이 바로  내가 그리워하는 그리고 영원히 그리워할,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경지, 아름다움의 경지다. 하지만 나는 잡종 수수들에 포위되어 있다, 뱀 같은 날개로 몸을 둘둘 휘감고, 초록색 독소로 나의 생각을 헤치고 있다. 헤어 날길 없는 고통의 비애를 느낀다.     


모옌은 『붉은 수수밭』에 등장하는 인물들 추어, 위잔아오, 뤄한, 작은할머니, 아버지... 등은 격정적인 삶을 살았다. 길들지 않은 들판의 검붉은 수수처럼. 야성의 인간, 잡종이 아닌 순종의 인간, 저항하는 인간, 외치는 인간으로     

역사란 개인의 수많은 희생을 딛고 만들어진다.

어떤 이는 역사서에 영웅으로 기록되고, 어떤 이는 역사서에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붉은 수수들의 울부짖음처럼. 수많은 민초들의 저항이 역사를 만들어낸다.

화면을 가득 메운 붉은 것들. 붉은 울음, 붉은 피를 먹고 자란 붉은 수수의 몸짓.      

붉은 수수로 술을 빚고 밥을 짓는 사람들은 오래전 누군가의 붉음을 먹고 마시고 오늘을 산다. 허리가 휘청하게 키가 큰 붉은 수수는 잡종 수수에 밀려 사라져 버렸다 해도  누대로부터 이어온 붉은 알알들이 몸속 어딘가에 분명 살아있는 것이다.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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