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무어라고 대답할까?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
한강 < 서시 > 부분
저승길에 오른 망자들이 자신의 생을 이력을 나무로 만든 목걸이에 걸고 길을 떠난다.
저승길,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있고 그 나무에는 수많은 나무 목걸이가 걸려있다.
이승에서 지금과는 다른 생을 원한다면 나무에 걸린 목걸이에 적힌 생의 이력을 샅샅이 읽어보고
마음에 드는 목걸이를 찾아 자신의 것과 바꿔 목에 걸면 다음 생에서는 새로 바꾼 목걸이에 적힌 이력대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기대와 설렘으로 나무에 걸린 목걸이들을 하나하나 내려서 읽는다.
적어도 자신이 걸어온 생보다는 더 그럴듯하고 더 볼품 있는 것을 고르기 위해 분주하다.
.....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자신이 바라는 완전하고 완벽한 생의 이력이 적힌 목걸이는 하나도 없다. 자신의 목걸이에 적힌 생의 이력보다 더 비참하고 슬픈 이력들이 더 많았다.
결국 망자는 자신의 목걸이를 다시 목에 걸고 길을 떠난다...
오래전 어디선가 읽은 이런 내용의 글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다. 한강의 시를 읽으며 거대한 나무 아래 멈춰 서 있는 망자들의 모습을 상상한다. 이생보다는 더 나은 다음 생을 찾기 위해 손과 눈이 분주한....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는 < 명상록 >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이야기한다
애드워드 기번은 ‘세계사 속에서 인류가 가장 행복하고 번영했던 시대를 꼽으라고 한다면. 인류는 주저 없이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죽은 때로부터 코모두스가 즉위하기 직전, 즉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재위 기간을 꼽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명상록>이란 명칭은 17세기에 와서 붙여진 이름이고 본래는 < 그 자신에게 >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전쟁이 끊이지 않는 시대에 황제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가 도나우 지역 원정을 간 10여 년에 걸친 기간 동안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한두 구절을 적어둔 흔적이다. 그에게 있어 자신의 내면은 외적인 그 어떤 것도 침범할 수 없는 ‘요새’ 같은 것이었으니 그가 집필한 <명상록>은 우리가 그의 요새로 들어가는 일종의 관문이라 할 수 있다.
수많은 작은 유행 방울들이 동일한 제단 위에 떨어진다. 어떤 것들은 거기에 먼저 도착하고, 어떤 것들은 나중에 도착하지만 차이는 없다.
마치 수천 년을 살 것처럼 살아가지 마라. 와야 할 것이 이미 너를 향해 오고 있다.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선한 자가 돼라.
네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주 전체 속에서 처음부터 내게 정해져 있던 일들이 하나하나 일어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네 자신을 기꺼이 운명의 여신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그녀가 ‘너’라는 실을 가지고서 자신의 목적과 계획에 따라 원하는 것을 짜게 하라.
<명상록 > 제 4권 중
사람의 운명을 이루는 모든 원인들이 서로 결합되어 하나의 통일된 원인이 된다. 아무리 무식한 자들도 ”운명이 그 일을 그 사람에게 보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이런 이치는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에게 처방된 운명을 두말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하다. 우주의 본성이 네게 처방해주어서 이루는 일들과 마찬가지로 너를 건강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여겨서. 아무리 싫고 네 마음에 들지 않는 일들이 네게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그 모든 일들을 기꺼이 환영하고 맞아들여라... 그 모든 일들은 너를 위해 일어난 것이고, 너를 위해 처방된 것이며, 오직 너와 관련된 것이고 까마득한 저 옛날의 원인들에 의해 처음부터 너를 위해 정해진 운명의 실들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네가 무수히 많은 일들을 겪어왔고 그 일들을 잘 견뎌왔다는 것, 네 인생의 역사는 이미 다 기록되었고 너의 복무기간은 그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 네가 수많은 아름다운 일들을 보아왔고 수많은 쾌락을 외면하고 고통을 극복했으며 야망을 이루고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수많은 기회들을 도외시했고 너에 대한 사람들의 수많은 냉담함에 따뜻함으로 되갚아주었다는 것을 기억하라.
<명상록 > 제 5권 중
너의 몫으로 할당된 것들에 적응하고 운명이 네게 정해준 사람들을 사랑하되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사랑하라.
내게 일어나게 되어있는 것들이 신들이 나에 대해서 개별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의 이익을 내린 결정이다... 신들이 우리에 관한 어떤 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내게는 여전히 내 자신에 대해 결정을 내리고 내게 이로운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능력이 있다
<명상록 > 제 6권 중
< 명상록 > 슬로우 리딩으로 함께 읽기를 하고 있다.
로마 제국 최고의 황제가 긴 시간이 흘러.... 2024년의 우리에게 운명과 주어진 인생을 받아들이라고 끝없이 말한다.
내 운명이 내게 찾아와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
나는 아직은 답을 유보하고 싶다.
설령 어딘가에 내 운명에 대한 기록이 이미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 운명이 좋은 것이든 평범한 것이든 좋지않은 것이든....
나의 노력 여하에 따라 약간의 수정은 가능할지 모르니까...
아직은 .... 말할 수 없다.
첫부분은 마음에 드는데 중간을 넘어서부터 실망스럽고 끝에서는 두 번다시 보고 싶지 않은 소설이 있는 가 하면 처음에는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다가 읽을수록 독자를 끌어들이는 소설이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비슷한 톤으로 우리를 끌고가는 소설도 있듯...
인생이란..... 그 알 수 없는 소설책이 아닌가.
마음에 드는 결말을 위해
지상의 무력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을 지라도
이미 정해진 흐르을 바꾸기에 역부족이라 할지라도
그래도.... 그래도
나는 무언가를 해야하다. 아직은 답을 하기엔 이르다. / 려원
<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2022/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나눔 우수도서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