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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

영혼의 열기와 이성의 한기.... 우리들의 어스름 같은 12월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

우리 모두를 숨어 살피는 우연

우리 위에는 피할 수 없는 어스름

혹은 신의 얼굴과 광명

....

천국과 지옥이 어디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지를.

그대는 침착한 잣대로 보이는 모든 것을 헤아려야 한다

우연한 윤곽들을 지우라

그러면 알게 되리니, 세계는 아름답다는 것을

어디가 빛인지 알지어다. 그러면 어디가 어둠인지 알게 되리니.

세상의 신성과 세상의 죄악,

........

영혼의 열기와 이성의 한기를.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블로끄      


12월이다.

한 해의 끝...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블로끄의 시를 읽는다. 

잠재된 불안과 어스름, 어떤 두려움들... 발화되지 않은 악들...

세상은 신성과 죄악의 뒤범벅인지도 모른다. 

천국이면서 지옥이고 지옥이면서 천국인 세상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천국을 꿈꾸지만 지옥에 발을 딛고 있고...

천국이라 생각한 곳에서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면 지옥인 것이고 

누구나 지옥이라 할 만한 곳에서도 선의지로 천국을 구현할 수 있다면 지옥도 천국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마음이 뒤숭숭한 우리에게  1910년 러시아 시인이 말한다.

침착한 잣대로 보이는 모든 것을 헤아리라고

세계의 빛과 어둠을 기억하라고...

영혼의 열기와 이성의 한기를... 잊지 말라고.


해마다 이맘때면 느끼던 한 해를 돌아볼 여유를 잊은 지 오래다. 

산책로의 꽃, 꽃의 조용한 노화를 본다. 

어떤 시인은 꽃에는 노화와 장수의 유전자가 없을 것이라 하였지만...

목이 완전히 꺾여 죽음에 직면한 순간에도 그 붉음을 움켜쥐려 한다.     

죽어가면서도 온전한 형태를 지키려 하는 고결함

죽음의 존엄을 보여주려 하는.. 꽃... 거룩함... 그 거룩함 앞에 부끄러운 겨울...     

날마다 같은 위치에서 같은 꽃을 찍는다.... 꽃에게 삶이란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일까.

뜨거움으로 타오르던 꽃... 꽃의 죽음을 애도하는 겨울.

끝은 시작이라는 것을.... 모든 시작에는 또다시 끝이 있으리라는 것을.... 바스라짐 속에 한 생을 태워버린 광기와 열기와 이성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갑자기 눈발이 날렸고 우박이 쏟아지던 날을 지나...

지금은 붉게 타오르는 단풍에 겨울바람이 지나간다....     

    

세계가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어쩌면 영원히 깨닫지 못할 수도 있을 아름다움을 위해

우리는 또 얼마나 괴로워해야 할까..... 우리의 마음은 그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또 얼마나 뜨거워져야 할까... 아름다움을 위해.... 선을 위해서 ... 우리는 또 얼마나 가슴 졸여야 할까.

세상의 선함과 아름다움을 기원하는 겨울....... 저녁이다/ 려원

 


<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 려원 산문집 2022 수필과 비평사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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