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기의 노래> < 다시, 회복기의 노래> 한강
<회복기의 노래 >
한강
이제
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
물으며 누워있을 때
얼굴에
햇빛이 내렸다
빛이 지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
<다시, 회복기의 노래>
한강
...
어떤 말,
어떤 맹세처럼 활공해
사라진 것들
단단한 주먹을 주머니 속에 감추고
나는 그것들을 혀의 뒷면에 새긴다
....
나를 긋고 간 것들
베인 혀 아래 비릿하게 고인 것들
(고요히,
무서운 속력으로)
스스로 흔적을 지운 것들
시집 <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수록
‘회복기의 노래’라는 시를 쓰고
또 바로 이어서 ‘다시, 회복기의 노래’라는 시를 쓴 한강.
이제
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
물으며 누워있을 때 얼굴에 햇빛이 내렸다...
이제, 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를 묻는 12월이다.
얼굴에 햇살이 내려앉는 오후
늦지도 이르지도 않은 오후다.
이 봄날 같은 시간.... 12월의 한 복판에서 나는 ‘회복기의 노래’를
부른다.
오랫동안 병을 앓다 겨우 일어나 침대맡에 기대앉은 사람처럼...
아이를 낳고 산후 후유증에 시달리다 겨우 회복기에 접어든 여인처럼
맹렬하게 달리다 기진해서 겨우 일어난 사람처럼......
혀에 베인 상처를 안고 있다 겨우 떨치고 일어난 사람처럼...
다행히 날이 춥지 않아서 마음이 여유롭다.
어떤 말,
어떤 맹세처럼 활공해
사라진 것들
단단한 주먹을 주머니 속에 감추고
나는 그것들을 혀의 뒷면에 새긴다
....
나를 긋고 간 것들
올 한 해 나를 긋고 사라진 것들. 혀의 뒷면에 새겨야만 했던 것들을 생각한다.
참 덧없이 가버린 시간이다... 봄부터 여름... 가을까지 올해 발간 예정인 두 번째 산문집에 매달려왔다. 연말이라 인쇄가 지연되어 잘하면 다음 주에 받을 수 있을지... 그것이 나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시간들이었다. 이제 그것도 다행히 마무리단계다. 해를 넘기면 안 되는 것이니...
살아가는 것은 무엇일까... 묻고 있다. ‘무엇’이란 말에 멈춘다.
‘무엇’이란 말을 곰곰 생각하기엔 몸도 마음도 지쳐있다.
그래도 다행히 회복기 같은 12월이 있다. 아직은 12월이다. 아직은 끝나지 않은 2024년...
한 해의 마지막달은 회복기... 저마다 삶의 회복기.
겨우 일어서 맞이하는 회복기 같은 달... / 려원
<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