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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늘 Feb 22. 2022

그의 리버사이드 파크

뉴욕에 가게 되는 기분은 어때?


출국을 앞두고 이런 질문을 받을 때나는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뉴욕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생동감에 걸맞은 대답을 원했겠지만 사실 내게 뉴욕은 박사 생활을 시작하게 될 도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별생각 없다"로 대답하곤 했다.


뉴욕에서 무언가를 하겠다는 계획은 딱히 없었다. 굳이 있었다면 그 정신없는 도시 속에서 무사히 박사 생활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으면 하는 그런 소망만이 있었을 뿐이다. 서울 가면 눈 뜨고 코 베인다고 하던데, 뉴욕이면 코만 베일까.


내게 뉴요커의 삶이란 망망대해에 떠다니는 부표와도 같아 보였다. 복잡한 도시 속에서 몸바삐 움직이는 것 같지만, 사실 같은 자리에서 오르락내리락할 뿐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꼭 그 흐름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한국에서도 서울에서 살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니 일종의 괴담 같은 생각이었을 수도 있겠다.


나의 뉴욕에 대한 선입견을 한 꺼풀 걷어준 곳은 리버사이드 파크였다. 센트럴 파크는 규모나 주위의 풍경이 어김없는 "뉴욕"의 공원인데 비해, 리버사이드 파크는 왜인지 뉴욕 같지 않다. 리버사이드 파크에 발을 디디면 도시가 주는 특유의 각박함과 조급함이 덜어진다.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강을 따라 위치한 공원인지라 너비가 크진 않지만 길 양 옆의 큰 나무들이 마치 공원을 감싸고 있는 것 같아 뉴욕과는 분리된 공간처럼 느껴진다. 중간중간에 위치해 있는 어느 시대의 양식을 따왔는지 모를 가로등은 분야 막론하고 시대를 앞서야 할 것만 같은 뉴욕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 같다.


이따금씩 러닝 하는 사람들,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 사이에는 여유로움이 깃들어 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강물, 그리고 해가 떨어질 때쯤 리버사이드 파크의 하늘이 담는 노을이 꽤나 근사하다. 뉴욕에는 마천루에 올라 볼 수 있는 빌딩 숲 곳곳에 켜진 불빛만이 존재할 것 같지만, 사실 이런 자연의 빛들도 곳곳에 담고 있다.


그래서 나는 리버사이드 파크를 발견한 이후로 종종 이곳을 찾곤 했다. 그곳을 걸을때면 그녀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고 싶은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하지만 사진을 보내지 말라는 부탁이 있었기에 꾹 참았다. 그녀가 오면 겨울일 텐데, 가을의 리버사이드는 못 보게 되는 것일 텐데, 그런 아쉬움과 함께.


그리고 그녀가 뉴욕에 온 첫날, 리버사이드 파크에 같이 갈까 하고 물었다. 그때 그녀의 표정이 오묘했는데, 얼굴에 번지는 기쁨과 기대감, 그리고 바쁜 나를 향한 걱정이 뒤섞인 그런 표정이었다. 왜인지 마음이 포근해졌다. 나도 머리를 환기해야 하니 같이 걷자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번 겨울에 뉴욕의 찬바람은 아무렇지 않은 양 공원을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그녀가 떠난 후, 혼자 걷기가 싫었는지 아니면 바빠졌다는 핑계 때문인지, 나는 한 번도 리버사이드 파크를 가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나고, 도무지 의욕이란 게 나지 않는 일요일 오후쯤, 나는 그녀가 떠난 이래로 처음 리버사이드 파크를 걸었다. 원인 모를 울적한 감정이 주말 내내 방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는데, 의식적으로 털어내지 않으면 잠식될 것만 같았다. 어디든 외출할 요량으로 옷을 걸쳤다. 정처 없는 발길이 이끈 곳은 리버사이드 파크였다. 리버사이드 파크를 따라 흐르는 강물은 여전히 햇볕을 받아 반짝거린다.


그리고 그 오묘한 표정이 떠오른다. 왜인지 마음이 포근해다. 여기가 푸르름으로 뒤덮일 때쯤이면, 우린 또 리버사이드 파크를 걷고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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