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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Apr 17. 2022

이 주의 시들-업보

청산될 때가 올까?

안녕하십니까, 제이한입니다. 이번에는 업보를 주제로 한 이주의 베스트 시간이네요.

업보란 자기가 행한 일의 결과를 받는 것을 뜻하는 불교 용어로, 돌고도는 윤회 속에서 일어나는 만사의 법칙을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실생활에선 본래 뜻을 벗어나 인과응보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업보가 돌아왔다', '업보를 쌓고 살면 화를 당한다', 용례는 많지만 어느 하나 부정적이지 않은 것이 없지요.


자신의 잘못이나 방심 때문에 범하는 과오와는 달리, 행동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쌓이는 업보가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은 좀 억울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게 있다면 업보가 마냥 탓해야만 하는 대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겠죠. 특별한 경우를 빼면요.


미지근한 온도의 책망. 전 업보라는 단어를 이렇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업보가 가리키는 대상이 타인이든 자신이든 간에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볼까요. 이번 주 베스트에 오른 작품들을 소개하겠습니다.



1. 덜렁덜렁님의 '업보'


https://m.fmkorea.com/451102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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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지면 달이뜨고

눈 속에서 새싹이 피어나 듯

유구한 굴레 속에서


삶이라는 시간,

또 한 축의 굴레가 되었다


하루하루 

쳇바퀴 속에 의미를 찾아내려는 여러 발버둥은

미래를 피지 못한

과거에 나의 업보일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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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사람이 미래를 피할 수 없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업보가 청산되는 것 역시도 사람은 막을 수가 없습니다.


특별하게 생각지 않고 보낸 시간은 어느새 화자를 지겨운 삶의 굴레에 가둬버렸습니다. 나쁜 일로 되돌아 올만한 일은 하지 않았는데. 화자는 시간이 사뭇 야속하게 느껴졌지만, 이내 그 생각을 거두고 마음을 비웁니다.


내가 시간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듯이, 시간도 나를 그렇게 대했을 뿐이구나. 그리고 이 쳇바퀴는 그 결과구나.


업보는 청산될 때도 뜨거워지지 않고 미지근한 온도 그대로인가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2. 아놀드슈왈제네거님의 '꼴 좋다'


https://m.fmkorea.com/4507283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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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 상황발생.  


이상황을 수습하기는 귀찮아.  


가장 편리한 방법 발견.  


업보를 탓해. 

업보를 쌓은 과거의 나 자신에게 책임을 물어. 

앞으로도 그럴것이라 나 자신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어.  


따라만 한다면 너도 이 태풍 한가운데 비련의 주인공.  


슬픔에 중독되자.  


꼴좋다

니모습을봐

니가 탓해야할사람은 오직 거울속에 서있는 남자

넌 이런일을 당해도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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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추잡하게 행동하는 자신을 마주하면 보통 사람들은 즉시 부끄러움을 느끼고 반성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그러나 탓하는 대상이 업보인 사람들은 멈추는 일 없이 한 걸음 더 나아가죠.


업보를 쌓은 과거의 자신이나 편리한 선택을 하는 지금의 자신, 업보의 주체와 놀림 당하는 대상도, 모두 다 자기 자신이니까요.


흔치 않게 '뜨거운' 업보 청산이 나왔습니다. 자기 스스로 무덤을 파는 모습이 안타까움을 넘어서 우습기까지 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3. 아떽띠해님의 'ㅇㅓㅂㅂㅗ'


https://m.fmkorea.com/4495405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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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버이의 사랑을 당연하다 여기며


어 느 것 하나 값지 못한 자식이 되었다.


버 릇 없단 소리를 듣지 않았으니 괜찮다 싶다가도


보 답 없이 지나온 세월에 뒷목이 시려온다.


오 늘부터 행하지 않으면 내일은 죽을지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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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업보는 돌아올 때까지 존재가 확실치 않은 관념입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업보를 단어로써만 이해할 뿐, 실존하는 대상으로 여기질 않습니다.


화자는 아직 불효에 대한 업보를 받지 않았습니다. 효도 못한 자식에게 벌이 내려지는 걸 바라는 부모는 없겠지만, 받지 않았다 해서 업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죠.


화자도 그걸 알기에 변하려는 겁니다. 더 늦어서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업보의 투박하면서도 따스한 일면이 한 자식의 생각을 바꿨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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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베스트도 이렇게 끝이 났군요. 업보, 본래라면 종교적 단어로 분류되어야 하겠지만 실상은 전혀 딴판이었던 한 주였습니다. 하기사 원래 뜻 그대로 쓰이는 시어에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이런 맛도 때때로 있어야죠.


다음 주에도 재밌는 작품들과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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