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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종 Jan 04. 2016

할머니와 손녀의 수타리봉 산책

꽃다지, 학교종이 땡땡땡

방학을 맞은 손녀들과 농사일이 끝나 손이 심심한 할머니가 근처 봉우리로 산책을 나섭니다. 

카메라감독인 아빠는 두고두고 볼 수 있는 산책이 되려나 ... 스마트폰 하나 들고 그 뒤를 따라 갑니다. 

멀쩡한 길 놔두고 시작하는 질퍽질퍽한 논두렁길 코스

그렇게 볼 것이 많았던가? 몇 걸음 못가 쭈그리고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할머니와 함께 산다는 것이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귀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편집부담 없이 가볍게 영상을 완성하려면 

전체적인 장면과 가까이서 묘사하고, 감정이 느껴지는 장면들을 잘 캐치해서 

적절하게 배치하면 되는데, 

예상했던 장면보다 새롭게 다가온 장면들이 많습니다. 


말라 비틀어진 콩깍지의 콩알이 

상했는가 멀쩡한가 살펴보고 

뿌리를 내릴지, 

더 날아갈 지 고민중인 홀씨도 발견해주고 

겨울에 얼지 않고 자라나는 극성스런 풀이겠거니

지나치던 초록무리에서 

 '꽃다지' 라는 이름을 

노래로 불러주는 모습은 예상치 못한 장면입니다. 



'달래, 냉이, 꽃다지 모두 캐오자~   종다리도 봄이라 노래하잔다'   할머니도 어머니에게서 배웠을 법한 노래가 손녀들의 머릿 속 암기장에 콕 박히는 걸 보았다.


지팡이를 대신할 나무를 찾아 살살 걷는 할머니의 앞 뒤로 

뛰어다니는 손녀들의 모습을 전체적인 장면으로  표현하고, 

미쳐 떨어지지 못한 낙엽의 요란한 흔들림이나, 

딱따구리가 파놓은 구멍 속의 모습이라든가, 

엑스레이 사진처럼 벌레먹은 낙엽자국에 햇빛을 비춰보는 것은 

산책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는 느낌으로 가까이에서 천천히 기록합니다. 


쏟아지던 비가 멈춘 것 같은 솔잎 걸린 가지에 

작은 솔방울 하나 더 얹어주는 아이다운 모습과, 

작은 밑둥마다 균형잡기를 하느라 산을 오르는 게 놀이가 된 풍경도 

설명하듯 적당한 거리에서 기록을 합니다. 

전체적인, 설명하는, 공감하는 장면들을 골고루 영상으로 기록하고, 배열을 적절히 섞으면 현장스케치 영상이됩니다. 

이렇게 카메라맨 아빠의 촬영산책을 봉우리 중간지점 벤치에서 끝내려 하는데, 

아빠의 주머니속에 넣어두었던 비장의 무기를 꺼내 딸들이 줄넘기를 합니다. 


최고 기록을 직접 보여주고 싶은 큰 딸과, 

무릎이 다 되어서 쿵쿵 울리는 할머니의 여덟 번의 기록과 

한 개 밖에 못 하던 둘째 딸의 신기록 갱신이 예상치 못한 이야기 거리가 되더니,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줄넘기 반주에 맞춰 부르는 

'학교종이 땡땡땡' 노래가 되었습니다. 


줄넘기가 땅에 닿질 않고 

쇠로 된 운동기구에 닿으며 땡,땡,땡,.. 

종을 치는 것 같다 하니 

손녀와 할머니는 줄넘기 반주에 맞춰 열심히 노래를 부릅니다.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

https://youtu.be/791hWp40YoU

구성안이 없어도, 잘 만들려고 애쓰지 않아도 

산책을 즐기면서도 보이는 장면을 전체적인, 설명하듯, 가까이서 감정을 느끼듯 

기록하는 것 만으로도 

명절에 가족들 앞에서 같이 보며 웃을 수 있는 

영상으로 된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여러분의 스마트폰으로 일상을 작품으로 만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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