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사실 숲에서 태어났어

by schmitz cabrel




물방울이 어깨에 하나 둘 떨어진다. 소나기다. 내 발에, 손에, 흙에, 나뭇잎에 비가 도달한다. 어느새 비 내리는 숲을 달리고 있다. 날아오르고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나는 종종 어른들에게 혼이 났다. 된다 안 된다처럼 단순한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내 잘못된 행동과 태도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가 있지 않다거나, 만지면 안 되는 물건을 건드렸다거나, 형제 혹은 동급생과 싸웠다거나, 규칙이나 약속을 어겼다거나 할 때마다 나는 매번 야단 맞을 순간을 걱정했다. 가장 크게 혼날 때는 거짓말이 들통날 때였다. 잘못을 숨기기 위해 한 행동에는 더한 책임이 따르니까. 하지만 억울할 때도 있었다. 난 분명 형제에게 대든 적이 없었고(또래나 마찬가지니까 대든다는 말 자체가 틀렸다), 학교 숙제가 있는지 몰랐고(부 활동 때문에 교실에 없었을 것이다), 내 물건을 맨날 아무데나 둔 건 아니었고(제자리에 놓을 때도 있었다), 친구랑 놀러 가기 전에는 허락을 구하려는 시도를 했다(집에 들렀는데 아무도 없었던 것 뿐이다). 그런데도 난 거짓말을 한 아이가 되어서 잘못했다고, 죄송하다고 말하지 않으면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없었다.


잘못했다는 한 마디를 하고 나면, 나는 거짓말쟁이가 된 기분으로 방으로 향했다. 울분에 차 있다는 걸 티내고 싶었지만 인내심을 끌어모아 발소리를 죽였고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 침대로 뛰어들어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불 속에서 내 사정과 마음을 무시하며 날 믿지 않았던 어른들을 줄 세워놓고 복수를 꿈꿨다. 어린 나이에 성공해서 금의환향한 나를 상상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돈이 많고 유명해지면 모두가 나를 우러러 보게 될 것이고, 어른들은 날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얘가 내 자식이에요! 쟤가 제 제자랍니다. 손바닥을 반쯤 덮은 내 옷소매를 아이들에게 흔들어보이며 이러면 멋져보일 줄 알지만 전혀 아니라던 교사도, 어쩌다 부러뜨린 수수깡을 가지고 반항하는 거냐 묻던 선생도 그럴 것이다. 내게 쌀쌀맞게 굴던 그 애도 다정한 척 말 걸 것이다. 하지만 눈길도 주지 않을 거다. 아니면 용서해주는 척 아량을 베풀 수도 있다. 그러면 난 성공한 사람이면서 착하기도 한 희귀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당장 일어나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 조기 졸업이라도 해야 대단하단 소리를 듣겠지. 그 다음에는 하버드를 가고 그 다음엔 엄청 큰 빌딩을 많이 가진 엄청 큰 회사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무슨 수로? 난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면 성공하는 건 복수가 아닌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원하는 거니까.

나는 학교가 끝나면 애들이랑 고무줄이나 하고 싶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노래를 부르면, 발끝이 머리끝까지 닿는 날이면 참 기쁘던데. 일요일이 좋다. 학교도 안 가고 아침에 만화영화를 볼 수 있다. 만화 주인공들은 공부 같은 건 하지 않아도 잘 산다. 학교도 안 가고 규칙도 없다. 숲에서 냇가에서 친구들이랑 놀다가 또 다투다가, 서로 도와주다가 같이 숲을 돌아다니다가, 가끔은 본 적 없는 신기한 걸 발견한다. 처음 보는 커다란 나무라던지, 동굴이라던지, 새로운 친구라던지. 이불 안이 덥다. 이마에 송글 땀이 맺힌다. 코에 싱그러운 바람이 분다. 내 마음은 이미 숲에 있다.




사슴이 있다. 귀가 쫑긋 서있고 아몬드 모양의 검은 눈을 가진 이 동물은 숲이라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엄마를 잃어버리는 슬픔을 겪었지만 용기 있게 친구들과 모험을 떠났고, 결국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사슴은 신나게 달리고 있다. 나무 사이를 지그재그로 점프하다 속도를 높여본다. 꽃 냄새를 따라 멈춰 선다. 열매를 따먹다 다다른 냇가에서 목을 축인다. 시원하게 흐르는 물에 발굽을 담근다. 누가 얼굴에 철썩 물을 뿌린다. 꼬맹이 수달이다. 수달은 물에서 헤엄치며 사슴을 약올리다가 얼굴에 진흙을 맞는다. 작은 자갈을 재빨리 던지지만 사슴 역시 민첩하다. 둘의 던지기 경주가 시작된다. 사슴은 진흙을 던지면서, 수달은 자갈을 던지며 달린다. 누구도 쉽게 맞지 않는다.

사슴의 콧잔등에 물방울이 떨어진다. 봄비다. 파릇파릇 솟아난 숲속 이파리들 위로, 가는 빗줄기가 내린다. 수달은 사슴에게 손짓하고 냇가를 헤엄쳐 내려간다. 사슴이 따라 달린다. 커다란 나무가 보인다. 주변 나무들보다 백살은 많아보이는 이 나무 아래에는 굵은 뿌리가 만든 굴이 있다. 수달이 문어 다리처럼 사방으로 뻗은 나무뿌리굴 아래로 쏙 들어간다. 사슴은 조심스럽게 몸을 구겨넣는다. 그새 또 자랐는지 엉덩이를 집어넣는 게 벅차다. 굴 안으로 사라진 조그만 하얀 꼬리를 지나가던 새가 내려다 보고 있다.

새는 안개비가 오는 날 비행하는 걸 즐긴다. 특히 냇가 상류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이 좋다. 날다 보면 뿌연 하늘 아래에서 동족과 머무는 곳에서는 마주치기 힘든 것들을 만날 수 있다. 몸에 검은 줄무늬가 그려진 삵이 나무 아래에서 새끼와 비를 피한다. 수풀 아래 흙에서 뒹굴며 장난 치다 데구르르 구르는 새끼를 어미가 한 발로 낚아챈다. 웅덩이가 생긴 곳에 검은곰이 몸을 담근다. 입에 열매를 물고 진흙을 튀기며 마사지를 한다. 산등성이에서 긴 울음소리가 울린다. 서로를 부르는 소리일까, 누군가에게 경고하는 소리일까. 뒤따르는 울음은 메아리일까, 응답일까. 나무 아래에서 안개비를 맞던 번쩍이는 금색 눈이 새를 응시한다. 새는 산꼭대기 앞에서 반원을 그린다. 숲으로 돌아간다. 금색 눈의 늑대는 동족과 산기슭으로 재빠르게 뛰어내려 무언가를 덥석 물어버린다.


사슴이 선잠에서 깨어나 고개를 흔든다. 낯선 냄새가 난다. 나무뿌리에서 기어나가자 그 앞에 얼굴이 있다. 작은 사람이다. 새가 하늘에서 내려와 나무 위에 앉는다. 호루라기처럼 삐욕삐욕 울자 수달과 사슴이 새를 바라보고, 다시 사람을 바라보고, 다시 새를 바라본다. 작은 사람은 나무를 향해 폴짝폴짝 점프한다. 사슴이 보기엔 볼품 없는 높이다. 사람은 손으로 가지를 잡고 나무껍질을 기어오른다. 다른 나무의 기둥만한 두 큰 가지 사이에 앉았다가 일어서서 새를 향해 손을 뻗는다. 새가 놀라 푸드덕 날아 더 높은 가지에 앉는다. 수달은 물가로 가서 사람의 발치에 조그만 자갈을 던진다. 구름 사이로 해가 나온다. 부드러운 햇살 아래에서 수달과 한참 첨벙거리던 사람은 나무가 만든 그늘 아래로 달려가 눕는다. 팔과 다리를 오른쪽 왼쪽 위 아래로 쭉쭉 뻗는다. 내 몸통은 나무 기둥, 내 팔은 나뭇가지, 내 머리카락은 나뭇잎, 내 다리는 뿌리! 사슴은 사람 몸 위에 열매를 던진다. 새가 땅으로 내려온다. 모두 먹느라 조용하다.

고요함을 뚫고 다시 넷은 일어선다. 달리기 시작한다. 산들바람이 덩달아 거세진다. 쫓기는 것도 아니고 쫓는 것도 아니다. 단지 달린다. 참, 새는 날아간다. 햇빛은 뜨거워지고 땅은 단단해진다. 이파리들이 너그러운 흙에서 위 아래로 자라난다. 선명한 초록빛으로 만발한다. 넷은 멈추지 않는다. 물소리가 잦아든다. 앞장서던 새가 날개를 움직여 천천히 하강한다. 사슴과 수달, 작은 사람이 멈춘다. 막다른 숲이다. 나무 사이로 들어가 수풀을 헤치고 나가면 언덕 위에 뜨거운 해가 있다. 숲의 끝자락에서 넷은 황색 언덕을 바라본다. 수풀이 듬성듬성 난 언덕 너머에서 소리가 난다. 숲의 소리가 아닌 다른 소리들. 작지만 빼곡한 소리들. 사슴이 킁킁 꽃냄새를, 수달은 물소리를 찾는다. 새는 날아오를 준비를 한다. 사람은 가만히 서 있다. 저 멀리에서 숲의 것과 다른 분위기를 느낀다. 뒤를 돌아보면 우리가 달려온 깊고 넓은 숲이 있고, 저 멀리엔 새가 다녀온 산등성이가 있다. 그곳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신호인듯 새가 날아오른다. 수달과 사슴도 숲으로 돌아간다.

이불은 여전히 덥고 답답하다. 나는 막다른 숲에 서있다. 하지만 곧 숲으로 뛰어든다. 언제나 주인공이었던 숲의 주인들을 따라 숲으로 들어간다. 멀리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돌아오지 않아도 돼.




나는 학교를 싫어하지 않았지만 숙제는 싫었다. 숙제가 있어도 집에 가서 이야기하지 않았고, 다음날 남의 것을 베끼기도 했다. 나는 물건을 마땅히 있어야 하는 자리에 두지 않았다. 제자리라는 걸 인식하는 게 어려워서 연필, 지우개, 책, 공책, 가위, 붓 같은 걸 잘 잃어버리곤 했다. 변명을 할 때 친구랑 만든 상상 속 친구를 활용했다. 우린 그걸 청소년 심리 관련 책에서 배웠다. 그애가 가져간 것 같아요. 우스갯소리로 넘어가 주는 어른도 있었다. 집 초인종을 누르고 대답이 없으니 아무도 없는 거라고 생각한 건 내가 인내심이 없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누군가가 초인종 소리를 못들어서 일 수도 있다. 여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아니면 만화영화에서 만났던 밤비와 보노보노(얘는 해달이다)와 같은 용감한 동물 주인공들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숲에 가면 나는 그곳에 속하고 싶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곳에 마음대로 있고 싶을 때 나는 교정된 몸을 벗고 숲으로 갔다. 누군가에게 거절당할 때, 알 수 없이 기분이 곤두박질칠 때, 노력했는데 다 망쳐버렸을 때, 노력도 안 했을 때, 조그만 일 하나하나가 다 어려울 때, 세상이 내게 무심할 때, 내가 원하는 나는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숲으로 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난 사실 숲에서 태어났어. 어쩌다 인간들 사이에서 살게 되었지만 원래는 숲에 속해 있었다. 그래서 이 세상과 맞지 않는 것이다. 숲속의 나는 비 내리고 바람 부는 숲의 자리에서 충만한 힘을 수혈받고, 비로소 안심한다. 돌아가지 않아도 돼. 무언가 될 필요도, 무언가를 증명할 필요도 없이 달리고 멈추고 잠들고 자라고 꿈꾼다. 나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곳에 남아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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