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서리 귀신과 흔들리는 세계

by schmitz cabrel


빨래하기 좋은 날은 집에 있기도 좋다. 햇볕의 뜨거운 기운이 바닥에 내려앉는다. 세탁기가 띠리링 울리면 졸린 몸을 일으킨다. 살짝 젖은 수건이나 잠옷 따위를 탈탈 털어 베란다에 널어놓고 나서, 다시 값싼 카페트 위에 앉는다. 이번엔 반쯤 쳐 놓은 커튼 뒤로 햇빛이 슬며시 손을 뻗는다. 벽이 환하다.


고요한 주말 아침이 지나간다. 아침 설거지 거리를 외면하고 큼큼 목기침을 한다. 전기 난로가 옆에서 ‘이융-’ 같은 소리를 내며 회전한다. 내 앞에 커튼, 그 옆엔 아무것도 없는 벽. 눈을 감아 고요가 내준 무아지경에 빠져들기 직전 나를 붙잡는 것이 있다. 왼쪽 상단 시야에 걸리는 천장 모서리. 잠시 눈을 피해보다 다시 쳐다본다. 세 개의 선이 만난 지점. 세 면이 생겼다. 두 선이 만나면 2차원의 가상이 되고, 세 개의 선이 만나면 3차원의 내가 사는 세상이 된다. 왜 혼자가 되고 싶었더라. 모서리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다. 이상한 말이겠지만 흥미로운 마음이 든다. 모서리에는 귀신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스무살 언저리에 친구가 사는 동네에 우르르 몰려간 적이 있다. 기차를 타고 해변을 걷고, 탑이 있는 동산에 올랐다. 할 말이 뭐가 그렇게 많았는지 한 시도 조잘거림을 쉬지 않았다. 친구 본가에 가서는 맛있는 집밥을 먹고 거실에 널부러져 잤다. 한밤중에 눈을 떴다. 모두 곤히 잠들어 있었다. 어둑한 거실이 무서워서 방에 들어갔다. 눈은 금방 어둠에 익숙해졌다. 침대, 책상, 생활 가전 같은 것들을 훑어보다 천장에 시선이 멈췄다. 모서리가 보였다. 모서리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면 세개를 붙잡고 있는 점에서 본 적 없는 형태가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그 형태에 길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머리 앞쪽으로 뒤집어 흔드는 전통적인 귀신의 이미지가 덧씌워지자 나는 잠을 잘 수 없었다. 아마도 전날 친구들과 모텔에서 귀신 말을 들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이 사건은 진짜 무섭고 불쾌해서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모서리를 등지고 누웠다. 그러자 톡톡 뒤에서 내가 상상하는 그게 나를 건드릴 것 같았다. 다시 뒤돌면 내가 분명 무서워할 모양으로 나를 따라다닐 것 같아서 다시 거실로 가 친구 옆에 누웠다. 아무도 깨지 않았다. 이름을 불러도 마찬가지였다. 다음날 아침 내 얼굴에 뾰루지 하나가 올라왔다. 내 친구는 잠을 못잤나 보네, 라고 말했다. 뾰루지를 가리키며 그게 증거야, 라고도 말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모서리가 없어지기로 한다면, 나는 오늘부터 세 면을 붙잡고 있는 이 일을 그만하겠어, 라고 말하고 벽에서 걸어나온다면 모서리가 필요한 사물들은 모두 무너지게 될 거다. 그 위에서 모서리 귀신이 춤추고, 우리는 모서리가 없는 자연으로 뛰어나가야 한다. 모서리를 집중해서 오래 쳐다보면, 세 면이 벽을 이루고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상자처럼 보이는데 이때 왠지 기묘함이 느껴진다. 사실 저쪽이 진짜라면 난 어떤 형태로 바닥에 앉아있을수 있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모서리 귀신이 날 바라보면서 쿡쿡 웃을 것 같다. 아니야? 새매야. 어떻게 생각해. 새매가 폭신한 등을 내준다. 부드럽게 쓰다듬다보면 공중에 주황색 털이 날아오른다. 턱 밑을 긁어주면 골골 소리를 낸다. 벽은 고요하지 않을지도 몰라. 아주 시끄러운데 그 소리를 우리는 밤에만 들을 수 있는 거지. 생각에 잠겨 손이 멈춘다. 새매의 시선이 느껴진다. 나를 빤히 응시하는 고양이의 얼굴 또한 오묘하다. 혹시 내 생각을 다 알고 있나. 앗 한심한가. 호수는 볕이 뜨거운 베란다 창가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다. 역시 까만 털을 송송 뿜어낸다. 불러도 불러도 동그란 뒤통수는 그대로다. 이럴려고 혼자인 인간이 되었나. 고양이 둘과 벽에 둘러싸여 벽에 대해 생각하려고. 그걸 모서리가 바라본다는 생각이나 하려고. 쿡 하고 누가 웃는다.


햇빛이 벽 위에서 아래로 이동하면, 아까는 보이지 않던 움푹 패인 자국이 보인다. 자세히 보면 마름모 얼굴을 한 인간이 인사하는 형태처럼 보이기도 한다. 꼭 손을 흔드는 것 같다. 머리 몸통 손 발 다리가 움직이는 것 같다. 무엇이든 오래 빤히 바라보면 흔들린다. 혹은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모두가 움직이고 있다. 진동하고 있다. 그걸 느끼다 드디어 눈을 감는다. 천천히 눈꺼풀을 내렸다 올리고 나는 고요하지 않은 명상에 빠진다. 벽이 내는 소리. 누군가 걷는 소리. 새가 우는 소리. 누군가는 뭔가를 떨어뜨렸다. 문이 열렸다 닫힌다. 반갑다고 짖는 개가 있다. 똑똑 노크하는 소리. 소리가 귀가 아니라 몸에 닿는다. 공간과 접촉하는 신기한 순간, 보이지 않는 세계를 느낀다. 내 뒤에 있는 모든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여기 있지 않는 것들과 만나게 된다. 거짓말 같은 이런 명상은 자연 속에서라면 몰입하기 훨씬 쉽다. 하지만 실내에서도 종종 가능하다. 내가 멋대로 세상에 관해 상상하는 것처럼, 모서리 귀신도 벽에서 있고 싶은대로 있고, 이 안을 헤엄치고, 나를 통과해 휙 지나가고, 그 바람에 내 목덜미엔 오소소 소름이 돋고. 언젠가 우릴 붙잡고 있는 벽이나 신체가 없어지면 모든 걸 놓고 이곳을 떠나게 되겠다. 그때가 되면 내가 사물을 통해 상상하는 모든 신들을 만날 수 있을까. 호수가 부르지 않았는데 뒤를 돌아본다. 까만 눈동자가 나를 관통한다. 이 기분 좋은 환상을 아는 거야?


해가 지고, 방 안이 어둑해진다. 빨래가 말랐는지 확인한다. 마른 것부터 거둔다. 머리칼 위로 바람이 분다. 모서리 귀신이 지켜보나. 천장을 뚫어지게 쳐다보면 흰 벽에는 내 눈 속의 날파리 뿐이다. 안과 정기 검진이 언제더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귀신을 등지고 거실이자 침실이자 서재인 내 방에 앉는다. 고양이들이 위쪽을 쳐다보고 있다. 왜. 왜 보는 거야? 뭐가 보여? 보이는 거지? 호들갑을 떨었더니 호수가 자리를 뜬다. 새매는 배를 보인다. 나는 새매의 배와 등을 열심히 쓰다듬는다. 벽 안의 마름모 인간이 손을 흔들고 모서리 귀신은 벽을 타고 들어가고 내 세계는 흔들린다. 고요한 주말 저녁이 지나간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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