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떼기 20_ 나의 닉네임(1)
다이아몬드와 흑연은 둘 다 똑같이 탄소(C) 원자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그 탄소 원자의 배열 차이로 인하여 두 물질은 서로 완전히 다른 성질을 띤다. 다이아몬드 내의 모든 탄소 원자는 다른 4개의 탄소 원자들과 결합하여 치밀한 그물 구조를 이룬다. 이러한 탄소와 탄소 사이의 결합은 매우 단단하여 잘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단단한 다이아몬드 결정을 이루는 것이다. 한편, 흑연은 모든 탄소 원자가 다른 3개의 탄소 원자와 결합하여 육각형 모양이 계속 이어지면서 얇은 판 모양의 결합구조를 만든다. 그리고 판과 판 사이의 탄소 원자끼리 또 다른 약한 결합을 이룬다. 이때 흑연을 구성하는 육각형의 탄소 결합은 잘 깨지지 않으나 판과 판 사이의 탄소 결합은 쉽게 깨진다.
유희충동(遊戱衝動),
내가 사용하는 닉네임 가운데 하나이다. 프리드리히 실러(독일 고전주의 극작가이자 철학자)의 책에서 만난 이 말은 첫눈에 나를 사로잡았다. 내 삶의 방식에 들어 있는 빛을 조명해 주는 동시에 나아갈 방향을 손가락질해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재미없는 일을 하지 못한다. 어려서부터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일은 패스하거나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대충하면서 살아왔다. 내가 이렇다 할 사회적 성공을 거두지 못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특별히 개선하겠다는 의지 또한 가져본 적이 없다. 내 삶에서 유희성과 충동성을 제거해 버리면 그것은 곧 나를 잃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삶을,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성취하지 못하는 이유는, 재미없는 일을 참아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재미있는 일을 ‘성실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내킬 때만, 내키는 만큼만, 내키는 강도로 했기 때문에 종종 나태하고 태만했다. 하루하루의 성실함이 쌓여 만들어내는 길이 없으니 종종 꿈을 놓쳐 방황했다. 그러니 내게 필요한 것은, 재미없는 일을 참아내겠다는 궤도 수정이 아니라 재미있는 일을 정성스럽고 참되게 하겠다는 결심이다.
천연 다이아몬드는 지구 내부에 있는 흑연으로부터 만들어진다. 지각 하부의 매우 높은 열과 압력에 의해 흑연을 구성하는 탄소의 결합 구조가 다이아몬드를 구성하는 구조로 바뀌는 것이다. 어두컴컴한 지각 하부, 숨막히게 하는 높은 열과 압력이 흑연을 다이아몬드로 바꾸는 것처럼, 나는 나를 동굴 속으로 밀어 넣기로 했다. 내 안에 있는 원자의 결합구조를 바꾸어 보기로 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것은 나의 영역에 속한 일이 아니므로. 그저 지금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은, 늘 언저리를 맴돌던 ‘글 쓰는 행위’ 속으로 한 발 더 내딛는 것이다. 그 일을 정성스럽게 하는 나를 보고 싶을 뿐이다. 끝내 다이아몬드가 되지 못하여도 괜찮다. 사실 내 손은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있을 때보다 연필을 쥐고 있을 때 더 행복해하니까.
그래서 나는 매일 글을 쓰기로 했다. 오늘은, 이 결심을 한 지 119일째 되는 날이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9)
* 참고도서: <살아 있는 과학 교과서> 홍준의, 최후남, 고현덕, 김태일 저/ 휴머니스트(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