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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성화 Feb 18. 2024

아버님, 어머님의 눈을 생각해서

사소한 배려

내가 결혼할 당시만 해도 시부모님께서 두 분 다 50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시아버님께서 칠순을 바라보고 계시고 시어머니는 60대 후반이 되셨다.


두 분 모두 시력이 참 좋으셨는데 떡방앗간을 운영하시면서 눈이 많이 안 좋아지셨다고 했다. 처음엔 이게 무슨 소린가 했다. 언뜻 보면 연관이 되지 않는데 왜 눈이 안 좋아졌다고 하시는지……


이야기를 잘 들어보면 이렇다.

떡방앗간에서 떡을 찔 때 김이 많이 나면 안개가 자욱하게 낀 것처럼 코 앞의 사람 또는 물건이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다. 떡방앗간 자체에 수증기가 많고 습기도 많이 찬다. 그렇게 계속 일을 하다 보면 몸에도 땀이 차지만 얼굴에도 땀이 맺히고 땀 닦을 새도 없이 바쁘게 일을 하다 보면 그게 눈으로 자꾸 들어가서 눈이 따갑고 아프다고 하셨다. 이런 일이 몇십 년 반복되다 보니 눈이 약해지셨고 시력도 많이 떨어졌다고. 게다가 지금은 노안까지 생기셨으니 여러모로 많이 힘들어하신다.

매번 씻으실 때마다 샴푸, 린스, 바디워시를 잘 구분하지 못하셔서 화장실에 샴푸, 린스, 바디워시가 늘 여러 개 꺼내져 있었다. 한 개씩만 꺼내놓고 쓰시라고 해도 며칠 지나면 또 도루묵이었다. 처음엔 시부모님의 이런 행동이 너무너무 이해가 안 갔었다. 글씨가 너무 작아서 안 보이니까 당장 급한 대로 새로 또 꺼내 쓰고 그냥 손에 잡히는 걸로 막 사용을 하시다 보니 이거 쓰다, 저것 쓰다 하셨다고.

목욕탕에 같이 갈 때는 내가 항상 알려드려서 괜찮은데 혼자 샤워하실 때는 또 손에 잡히는 대로 이것저것 막 쓰신다. 그래서

시부모님 화장실에는 대형 샴푸와 바디워시를 들여놓고 큰 글씨 네임스티커로 주문 제작하여 붙여드렸다. 린스는 상대적으로 자주 안 쓰셔서 작은 거지만 글씨는 크게 해서 붙여드렸다. 이렇게 해드리면 한동안은 구분해서 잘 사용하신다.

때문에 이번 설 명절 전에도 화장실 대청소를 싹 하고 네임스티커도 새로 붙여드렸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고 흐르는 세월도 누구나 비껴갈 수 없다.


지금은 내 눈으로 책도 읽을 수 있고 깨알처럼 아주 작은 글씨도 어려움 없이 볼 수 있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나도 언젠가는 시부모님처럼 되겠지. 누구나 그렇겠지. 눈과 귀는 한번 망가지면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말 소중하게 다루어야 오래오래 쓸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어머님, 아버님을 보면서 다시 한번 더 눈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책을 더 많이 읽고 싶은 마음에 조급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간절한데 어릴 땐 나도 몰랐다. 한평생 늘 잘 보이고 건강할 줄만 알지. 나빠지기 전에, 노안 오기 전에 눈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쓰고 관리도 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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