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성화 Sep 06. 2024

드디어 나만의 책을 쓰려고 합니다.

나만이 쓸 수 있는 나의 이야기를 종이로 만나고 싶어요.

2018년 9월 18일에 세 살배기 셋째가 혈액암 진단을 받았다.

정확한 병명은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이었다. 그날부터 병원을 학교처럼 드나들던 2019년 5월 어느 날 5차 두 번째 항암을 하러 갔다가 재발이라는 날벼락을 맞았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의 노력이 헛수고로 돌아가려던 찰나였으니까…


4차 항암이 끝나면서 하게 된 골수검사에서 5%로 쭉 관해 되었던 암세포가 갑자기 13%로 껑충 뛰었다고 했다. 이 말은 악성종양세포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얘기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납득을 할 수가 없었다. ‘어디를 봐서 내 아이가 재발이래?’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니까 담당교수님께서 답답하셨는지,


당장 입원해서 이식을 위한 절차를
밟지 않으면 애 죽어요.

라고 하셨다.


분명 뭔가가 잘못됐다.
치료가 끝난 것도 아닌데 재발이라니!
왜 우리 아이한테 이런 일이 두 번씩이나??

마음속에서 혼란스럽게 싸우고 있을 때 내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왔다.


입원 안 하겠습니다.

어이없다는 교수님의 표정을 못 본 척하며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러자 입원을 1순위로 연기시켜 주었고 며칠 내로 골수검사를 다시 해보자고 하셨다. 나는 최대한 말을 아끼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외래로 검사 날짜를 잡아 주셨다.

택시를 타고 곧장 집으로 왔다. 무슨 정신으로 왔는지 생각이 안 난다. 입원을 거부하고 집으로 온 건 내 선택이었다. 그러니 그때부터 나는 납득할 수 없었던 '재발'을 '재발이 아님'으로 증명해내야만 했다.

제발 재발이 아니게 해 주세요!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거에 온몸으로 빌고 있었다. 엄마로서 할 수 있는 게 여전히 많이 없었다.


가장 정확한 건 골수검사라고 했는데 그 골수검사 결과를 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한 채혈검사에서 수치가 지극히 정상이었고 집에서 쉬는 동안 컨디션이 계속 최상이었기 때문이다. 미열조차 없었고 이보다 더 건강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몸상태가 최고였었다. 그런 아이에게 '재발'이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치료스케줄을 관리하는 전문간호사 선생님께 연락해 다시 한번 검토해 달라고 정중하게 부탁을 드렸다. 그랬더니 이제 곧 증상이 나타날 거라며 골수검사 상태로 봐서는 악성 종양 세포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였다.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운이 좋았던 걸까?

믿고 있었던 구석이 있어서 그랬을까?

병원 치료 외에 보조요법으로 먹이고 있었던 글리코영양소를 의지해서였을까?


당시 나에게는 글리코영양소가 지푸라기였다. 기댈 곳이 이것밖에 없었다. 증거라고 내밀 수 있는 게 내 선에서는 이것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점점 더 좋아지고 나아지는 게 맞아야 했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고 했으니 나는 강해지고 독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가닥 희망을 품고 매일 먹이고 있던 글리코영양소를 계속 먹이면서 '재발'을 뒤집으려고 고군분투했다. 그러면서 우연히 알게 된 '헤마토곤'에 모든 걸 걸었고 짧은 간격으로 세 번의 추가 골수검사를 단행했다.


hematogones : 헤마토곤은 ‘혈구소아세포’라고 하는데 정상세포이다.
간혹 급성림프모구성 백혈병 환자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세포이기는 하나
흔한 경우는 아닌 것 같다.


2019년 5월 16일에 했던 골수검사 결과, 그동안 5% 미만으로 잘 떨어지던 암세포가 갑자기 13%로 껑충 뛰었다면서 재발이라고 했다. 보통 헤마토곤으로 보이려면 7~8%가 나와야 하는데 셋째는 13%라서 악성종양세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셋째의 몸은 과하게 회복이 되면서 정상세포인 헤마토곤이 갑자기 많이 늘어난 것인데, 이 헤마토곤은 비정상 세포와 구분이 어려워 ‘재발’로 본 것이다.

내가 알아내고 이해한 바로는 그랬다.

그런데 정말 운이 좋았다. 운명이 우리 복덩이(셋째의 태명)에게 기울었다.


2019년 6월 10일(월요일). 세 번째 골수검사 결과가 나왔다. 2.8%로 관해 되어 최종적으로는 ‘재발’이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다. 5월 16일 이후로 한 달 가까이 어떠한 약물 투여도 없이 13%에서 2.8%까지 떨어졌다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만약 정말로 악성종양세포였다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결과였다. 담당 교수님과 전문간호사 선생님께서도 끝내는 헤마토곤으로만 보인다며 최종 답변을 주셨다.


이렇게 우리는 '재발'을 뒤집었다.




이런 일을 겪고 나서 나는 무섭고 두려울 게 없을 만큼 단단해졌다. 웬만큼 아픈 건 아픈 것도 아니었다. 병원밥을 먹고 병원생활을 하면서 아픈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의학의 눈부신 발전과 치료 기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고치기 어려운 병들이 쏟아지는 세상이다. 원인불명의 질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이 주위에 눈에 띌 때마다 병원과 의료진에게만 의존하는 치료는 더 이상 완치를 기대하기가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원인 없는 병은 없다.
원인 모를 병이 있을 뿐이지


나는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아이가 할 수 있는 것

이 세 가지로 나누어서 3년 4개월을 달렸고,

우리는 2022년 1월에 완치판정을 받았다.

3년 4개월(1213일)

그리고 그 이야기를 7페이지로 축소시켜 최근에 알게 된 '역경 극복 수기' 공모전에 내보냈다. 기대도 안하고 있었는데 지난주 금요일에 결과가 빨리 나왔다.

정말 운이 좋았다.


셋째가 재발 판정을 받고 오진임을 밝혀낸 직후에 나는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글쓰기 경험이 없던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당시의 마음 같아서는 쓰기만 하면 책 한 권이 금방이라도 뚝딱 나올 것만 같았다. 아무리 단순해도 그렇지...

쓸 얘기가 너무너무 많아서 줄줄줄 써질 것 같았는데 막상 노트를 펼치자 한 줄도 못썼다. 이상하리만치 한 글자 한 글자 쓰는 것도 정말 어려웠다.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지어내는 얘기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 쓰려고 하는 건데 왜 안 써지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음이 너무 급했다. 까먹지 않기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록으로 남겨놔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 같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이겨냈기에 아무나 할 수 없는 이런 경험을 큰 자산으로 생생하게 간직하고 싶었을 거다. 그래서 책을 쓰고 싶었겠지!


또한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를 쓴 서진규 박사님처럼 내 아이도 아픈 사람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어 용기를 주고 싶었다. 그것뿐이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건강주권을 실천하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고 희망을 주고 싶었다. 다른 욕심은 없었다.


하지만 글이라는 건 누구나 쓸 수 있는 건 맞지만 연습이 되지 않으면 또 쓸 수 없는 게 글쓰기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그래서 블로그를 시작했다. SNS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으니 맨땅에 헤딩하며 차곡차곡 하루하루를 채워나갔다. 2021년 3월 30일에 첫 글을 발행하고 하루에 방문자 수가 2명이 될까 말까였었다. 1년이 다 되어갈 때도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신독(愼獨)을 믿었다. 대한민국에 처음으로 인문고전독서 열풍을 일으킨 이지성 작가님의 책을 보다 알게 된 '신독(愼獨)'이란 단어를 기억하며 혼자인 시간에 나는 나를 단련시켰다.


결혼과 동시에 시부모님과 한집에서 함께 살았는데 주부로서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하며 일곱 식구를 챙긴다는 것이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다. 셋째를 간호하며 그날그날을 기록하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나의 루틴이었다. 눈 뜬 시간부터 잠들기 전까지 진심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었다. 남이 알아주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하루 일과를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았다. 온라인상에 글을 올리는 것이지만 글쓰기 연습을 하려고 시작했던 거고 인기를 얻거나 관심을 받으려는 글도 아니었다. 나의 하루하루가 소중했을 뿐이고 누군가에게는 다시는 없을 오늘을 기억하고 간직하기 위해 쓰려고 했을 뿐이다. 4년 차인 지금은 775명의 이웃이 있고 전체 방문자수는 5만 8천이 넘었다. 잘 쓰고 못쓰고를 떠나 그저 묵묵히 꾸준히 써온 결과라 생각한다.

신독(愼獨)
삼갈 신, 홀로 독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 하고 언행을 삼감
신독, 혼자 있는 시간의 힘 / 저자 조윤제 / 발매2024.07.19.

본문 중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나온다.

혼자됨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마음에
간직하고 있던 뜻을 이루고, 지친 몸과 영혼에 자유를 줄 수 있다. 이러한 여유와 휴식을 통해 방향도 모르고 달려왔던 삶이 나아갈 길을 알게 된다.
하늘이 준 소명을 깨닫고, 내 삶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창의와 통찰을 얻는다.
혼자됨의 시간이, 내 삶을 바꾸는 인생역전의 기회가 된다.


이지성 작가님의 책 다음으로 반가운 책이 나와서 보자마자 구입했다.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고전연구가 조윤제 작가님의 책이다. 작가님은 개인 수양의 최고 경지로 손꼽히는 '신독(愼獨)'의 가치를 새롭게 끌어올려 주셨다. 혼자 있는 시간에 스스로를 돌아보고 단단하게 다지는 지혜를 2,000년 고전의 명문장들을 통해 풀어내셨다. 긴 세월을 관통하는, 우리 삶에 가장 본질적이고 실천적이며 현실적인 조언과 흔들리지 않는 내공을 확인할 수 있을 거라고 표지 안쪽에 소개되어 있다.




블로그를 쓰면서도 글쓰기와 관련된 공모전이 있으면 가끔씩 도전을 하곤 했다. 잘 쓰고 있는지를 확인받고 싶어서. 그런데 그럴 때마다 모두 입선에도 들지 못했다. 정말 정성을 다해서 썼는데 그런 글들이 인정을 못 받고 쓰레기통으로 내동댕이 쳐진다는 게 너무 서글프고 가슴이 쓰렸다. '내 글이 그렇게 형편이 없나'싶어서 공모전 결과를 받아들일 때마다 몇 날 며칠을 속앓이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이런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역경 극복 수기’ 공모전에서 장려상이라도 받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장려상이라서 비록 상금은 없지만 상금보다 더 좋은(?) 특전이 주어진다.


13명의 당선작이 공저로 발행이 되는데 종이책과 전자책이 무료로 발행된다는 것.


보도자료가 언론에 배포되며, 유튜브 동영상으로 인터뷰가 실릴 예정이라는 것.


한국출판지도자협회에서 발행하는 작가 등단증이 주어지고 네이버 인물 검색에도 등록이 된다는 것.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 한 번에 이루어진다는 게 너무너무 신기하고 놀라웠다. 폭죽이 연속으로 팡팡 터져 황홀경에 빠지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정말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이래도 되나? 싶었다. 내 볼을 꼬집으니 아파서 꿈은 아니었다.


인생에 단 한 권이라도 좋으니 내 이름 세 글자가 들어간 책, 진짜 내 책이 나오는 게 소원이었다. 그 꿈에 한 발 다가갈 수 있게 동기부여를 해준 게 ‘역경 극복 수기’ 공모전이었다. 이번 공모전에서의 내용이 내가 쓰고 싶었던 책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은 것 같다. 내 책의 축소판이 된 글이 공저로 발행될 예정이라는 사실이 꿈만 같고 하루하루 구름 위를 걷는 듯 즐겁고 행복하다.




8월 무더위를 견디며 글쓰기 공부를 하고 지금은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쓰기 위해 목차를 구성하고 있다.

모든 게 처음이라 간단해 보였던 목차 구성도 어렵게만 느껴진다. 주제를 정하고 컨셉을 잡으면 목차도 그냥 나올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멀리서 바라볼 땐 쉽게 생각했던 것이 막상 내 일이 되니 어렵기만 하다. 쉽게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하고 싶어서 꼭 붙들고 있다. “남들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겠지?”라고 나 자신에게 용기를 주면서 천천히라도 나는 계속 나아가고 있다. 목차 구성이 완성되면 바로 초고로 들어간다. 다음 단계를 떠올리며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도 해본다.

나만이 쓸 수 있는 나의 이야기를
나도 한 권의 책으로 꼭 만나고 싶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건강을 위한 '꾸준함'은 매우 중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