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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성화 Sep 18. 2024

치매 걸린 날씨에도 웃음은 살아있다.

미소와 웃음은 내 삶의 무기다.

2024. 9. 16(월) 일기

저녁 설거지와 뒷정리가 드디어 끝났다. 시계를 보니 밤 11시 30분 언저리다. 일부는 식체세척기를 돌렸는데도 손으로 하는 설거짓거리 또한 많았다. 아홉 식구가 밥을 먹었으니 많을 수밖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으로 범벅되어 가만히 있어도 땀 냄새가 풀풀 났다. 시부모님 떡방앗간에서 추석 대목 떡장사를 하고 들어온 게 저녁 7시라 씻지도 못하고 저녁 준비를 했다. 명절 내내 덥고 습하다더니 오늘 종일 밖에 있으면서 8월만큼이나 더운 날씨를 실감했다. 평소 물을 많이 마시기 위해 신경을 쓰고 있는데 오늘 하루는 물 마시는 게 가장 쉬웠다. 한 모금씩 마셨는데도 2리터를 순식간에 마셔버렸다. 추석 전날에 더워도 이렇게 더울 수 있나 싶을 만큼 날씨는 대단했다. 꺾일 줄 모르는 이 더위는 과연 언제까지인지.. 8월에 에어컨이 고장 났는데 부품이 없어 새로 사야 된다는 말에 며칠만 견디면 될 줄 알았지. 선풍기도 있으니 그냥저냥 버티면 될 줄 알았지. 그런데 웬걸 더워도 너무 덥다. 날씨도 치매에 걸렸는지 9월인데 8월 같은 고온다습에 정말 너무 힘들었다.

나도 이런데 몇 날 며칠 동안 추석 준비로 분주하셨던 시부모님은 오죽하셨을까? 남편과 서방님, 아가씨, 삼형제 중 첫째와 둘째는 새벽 3시부터 하루를 시작했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종일 서있기도 했고 종종걸음으로 같은 공간을 왔다 갔다 했으니 발바닥에도 통증과 함께 불이 났다.

그런데 말이다. 신기하게도 손님만 오면 기분이 좋았다.

추석이라 송편(콩, 깨, 동부)은 당연히 있었고 꿀떡, 약식, 증편(술떡), 방울기주(방울 모양의 증편), 찰무리(영양떡) 등을 팔았는데 구경만 하고 가는 손님이 없었다. 맛보기용으로 꿀떡과 송편을 조금씩 내 놓았었는데 맛을 보시고는 맛있다고 우르르 몰려와 사가기도 했다.

대목이라 확실히 회전율이 좋았다. 따끈따끈하게 쪄낸 떡들이 금방금방 나가서 떡이 다 떨어지는 걸 보고 미리 계산을 하고 나중에 찾으러 오시는 분들도 계셨으니까. 인절미를 찾는 손님도 있었는데 인절미는 손놀림도 빨라야 하고 손이 많이 가는 떡이라 대목 장삿날에는 만들 수가 없다.

어떤 손님은 시부모님 떡방앗간의 시그니처인 찰무리(영양떡)를 홍보까지 해주셨다. 타 지역 분이셨는데 맛있어서 명절 때마다 사 가니 믿고 먹어보라는 말씀. 그 덕에 자연스럽게 광고가 되었고 찰무리는 우리 떡방앗간에서 일 년 내내 잘 팔리는 떡이 되었다. 시골 떡방앗간이라 평소 소매는 하지 않고 맞춤떡으로만 나가지만 소매 못지않게 판매율이 좋다. 그 비결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단 쌀농사를 직접 짓는다.

둘째,  농사지은 쌀로 1년 동안 떡방앗간에서 쓸 최고 품질의 쌀을 그때그때 직접 방아를 쪄서 댄다.

셋째, 떡에 들어가는 거의 모든 재료를 직접 준비한다.

봄에는 깨끗한 쑥을 캐와서 직접 다듬고 삶는다. 떡에 들어가는 쑥은 가정집에서 삶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푹 잘 삶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간다. 밤콩, 울타리 강낭콩, 서리태 등도 농사를 지어서 댄다. 밤은 공주 정안밤을 사용하고 직접 까서 준비한다. 늙은 호박은 친정 부모님께서 농사지어 주신 것을 건조기에 말려 호박고지로 준비해 놓는다. 팥 시루떡, 인절미 등에 들어가는 고물은 어머님께서 직접 만드시기 때문에 손이 정말 많이 가지만 맛이 살아있다. 손님들께서 옛날 고물 맛이 난다며 어머니의 정성을 알아보시고 우리 떡을 좋아하고 찾으신다.

넷째, 인공 색소가 들어가는 떡은 지양하고 천연 재료의 색 그대로 나간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과 설 전날에 나는 시부모님 떡방앗간에서 해마다 떡을 판다. 서방님도 떡방앗간 일을 도와야 하니 다른 귀성객들보다도 하루나 이틀 먼저 내려온다. 아가씨도 그렇고. 그러니 나는 그보다 더 먼저 집안을 청소하고 정리 정돈도 해야 한다. 화장실 대청소를 제일 먼저 하고 보리차도 2리터 생수병으로 10병 정도를 끓여서 시원하게 냉장 보관해 놓는다. 이부자리 마련을 하고 수건도 더 많이 내놓는다. 부엌 싱크대 청소와 방 청소도 미리미리 해 놓는 등 식구들이 오기도 전부터 해야 할 게 많으니까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도 때로는 맞이하지 말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각자 환경도 다르고 입장도 다 다르니 명절에 누구는 설레고 즐겁다. 또 누구는 명절이 오기 전부터 불편하고 스트레스가 쌓인다. 결혼 전에 나는 전자에 속했고 결혼하고 나니 후자에 속하더라. ㅎㅎ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고 1년 내내 바쁜 집에서 일을 안 할 수가 없으니 늘 힘들었다. 명절이 되면 식구를 맞이해야 하는 입장에서 긴장과 스트레스가 언제나 나를 짓눌렀다. 그럼에도 명절증후군은 나한테 쉽게 접근하지 못할걸? ᄏᄏ

시부모님께서 떡방앗간을 하시면서 농사도 지으시니 힘든 게 사실이지만 반대로 난 좀 독특한 경우인 덕도 있다.

아버님이 막내라 위로 형님이 두 분 더 계시는데 명절 때마다 훨씬 더 바쁜 떡방앗간 덕분에 난 명절을 쇠러 큰댁에 가본 적이 없다. 이동하느라 고속도로에서 몇 시간씩 꼼짝달싹 못하는 그런 피로를 겪지 않아서 좋다. 명절을 우리 집에서 보내니 명절 음식 또한 내 마음대로다. 식구들 먹을 음식을 간단하게 준비하거나 그냥 그때그때 먹고 싶은 것을 만들어 먹는다. 고칼로리에다 고열량인 명절 음식을 안 해서 좋고 안 먹어서 좋다. 물론 여러 식구들이 먹을 음식을 내가 해야 하는 부담도 어느 정도 갖고는 있지만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해서 먹을 수 있으니 명절에 대한 만족도가 꽤나 괜찮은 편이다. 뭐든 주도적으로 하면 즐겁고 시키면 하던 것도 하기 싫은 법인데, 어머니께서는 요즘 시키시지 않고 “뭐해 먹지?”라고 물어보시니까 이럴 땐 좋은 것 같다.

그리고 명절 전날에 반짝 떡장사를 도와드리고 있는데 그 하루가 난 즐겁다. 떡장사만 끝나면 명절 연휴가 거의 다 끝난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만큼 여유가 찾아온다.


떡을 판매하는 일이 나와 잘 맞는 것 같다.

신기하게도 손님이 오면 기분이 좋다. 힘든 걸 잊는다. 매번 다른 손님을 처음 맞이하는 것처럼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맞이한다. 이것은 나의 무기다. 20대 초중반에 서울에서 편의점 알바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편의점 사장님도, 손님들도 나의 웃는 얼굴에 엄지 척을 해주셨다. 항상 처음인 것처럼 밝고 환하게 사람을 맞이하는 것을 높이 평가해 주셨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기분 좋게 만들어서 단골손님도 많았고 그 덕에 매출이 주변 편의점 중에서 가장 높았다.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편의점 사장님께서 나에게 가게를 맡아서 해보라는 제안도 하셨었다. 취업 준비를 하고 있던 중이라 창업은 생각도 못 해봤지만 제안을 받은 것 자체는 기분이 좋았다.

이상하고 신기할 만큼 장사하는 게 즐겁다. 딱 하루라서 그럴까? 사실 떡방앗간에서 굳은 일은 다른 식구들이 다 하는데 정작 손님을 맞이하고 떡을 팔고 돈을 받는 간단한(?) 일은 내가 주로 하고 있으니 노동의 강도가 세지 않아서 그럴까? 내 돈 버는 것도 아니고 다 아버님 통장으로 들어가는 돈인데, 돈을 만지는 그 순간만큼은 어느 때보다 즐겁고 신난다. 시키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알아서 하는 거라서 재밌고 보람도 넘친다. 떡을 파는 일이 재밌어서 웃게 된다. 재밌어서 친절하게 된다. 아는 사람이 오면 눈치껏 하나를 더 얹어주기도 한다. 아버님께 배웠다. 아버님은 자식들한테는 안 그러시는데 가게에 오는 손님들에게는 막 퍼주시는 스타일이다. 요즘 높은 물가 생각하면 이렇게 하기 어려운데 아버님께서는 본인이 직접 농사지은 쌀로 만든 착한 떡이라 그런지 자부심도 대단하시고 베품도 후하시다. 나는 명절 대목마다 그런 떡을 팔고 있으니 나 또한 기분 좋게, 자신 있게 팔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오늘도 즐거웠다.

종일 서서 손님을 맞이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발바닥도 많이 아프고 화끈거린다. 게다가 오늘은 날씨까지 더웠으니 기운도 더 빠졌고 땀으로 가득 찬 몸이 끈적끈적해서 찝찝한 기분마저 들었다. 빨리 샤워하고 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그러다가도 손님이 오면 나도 모르게 스마일 한 얼굴이 된다. 이하영 원장님의 '아이는'이라고 말했을 때 지어지는 미소가 자동으로 생긴다. 웃음도 미소도 다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이제는 습관이 되었고 자동반사가 되었으니 밥을 먹고 숨을 쉬는 것처럼 편안하다. 그래서 떡을 팔 때마다 신난다. 손님과 눈을 맞추며 인사하고, 친절하게 대하니 손님도 더 예의를 갖추는 느낌이 들었다. 며느리인지 딸인지 물어보기도 하고 “며느리가 참 예쁘네, 웃는 얼굴이 너무 예쁘네.”라고 하실 때 기분이 정말 좋다. 웃으니까 예쁘게 보이나 보다. 환하게 웃는 게 자연스러운 난 그럴수록 두 배로 더 친절하게, 세배로 더 상냥하게 된다. ㅎㅎ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마법을 갖고 있으니까.

ㅎ ㅏ ㅎ ㅏ ㅎ ㅏ

​"복은 웃음을 타고 옵니다"

웃음은 자기 자신은 물론

주변의 에너지를 평화로운

에너지로 변화시키는

강력한 전파력이 있어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싱그러운 바람과 같이

상대를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라도

날마다 웃는 하루를

만들어 봅시다.

 

얼굴에 주름을 지우면 상품이 되고

미소를 더하면 명품이 됩니다.


-좋은글-

마지막까지 떡을 팔고 천막까지 접고 들어왔다.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손님을 대한 나를 칭찬한다. 추석 당일인 내일은 뻗을지언정 집에 와서도 가족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늦은 밤까지 설거지와 뒷정리까지 말끔하게 마무리한 나를 대단하게 여긴다. 잘했어. 홍성화.

오늘 하루도
충실하게 온전히 즐긴
너를 칭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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