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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성화 Sep 29. 2024

나는 소신과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을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하자!

나는 글씨 쓰기를 좋아한다. 기록하는 것은 더 좋아한다.

코로나 때 한정판으로 나온 10년 다이어리를 나에게 선물했다. 10년을 한 권에 기록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었고 표지가 천연 가죽이라서 시간이 흐를수록 소장 가치도 그만큼 더해질 것이므로 망설이지 않고 들였다.

올해로 4년 차이니 오늘도 글씨를 꾹꾹 눌러 정성스럽게 쓰고 있다.


2030년 12월 31일 화요일, 마지막을 채우는 순간 그 감격을 떠올리며 오늘도 10년의 하루를 감사로 채운다.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이
기록이다.


10년 다이어리는 종이 한쪽에 같은 날의 하루가 10칸으로 나누어져 있다.

2024년, 벌써 네 번째 칸에 나의 역사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으니 매일이 설레고 기쁨이다. 잘 쓰고 못 쓰고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만이 할 수 있는 나의 기록이고 매일매일 쌓여가는 기록들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니 감사가 끝이 없다. 분량상 하루를 온전히 다 기록할 수 없고 나중에 봤을 때도 하루를 다 기억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록되어 있는 순간들이 모여 10년이 되고 자기 역사가 되니 이 한 권은 정말 보물이 아니고서야 뭘로 표현이 될까?


내 기록을 내가 보는 것도 즐겁고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쓴 것들은 이상하게 또 보고 또 보게 되더라. ㅎㅎ

며칠 전 갑작스러운 인사발령으로 예정에 없던 전체 회식이 잡혔다.

적당히 맛있게 먹고 분위기가 달아올랐을 즈음이었다. 자리를 이동해 가며 못다 한 이야기도 나누고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때 다른 팀에 행정도우미로 일하시는 분께서 내게 과한 감사 인사를 하셨다.


고맙습니다.
정~~ 말 고맙습니다.


몇 번을 반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난 진짜 한 게 없는데 이런 인사를 받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큰삼촌뻘 되시는 주사님께서 존댓말로 "고맙습니다. 정~~ 말 고맙습니다."라고 하시면서 고개까지 숙여 인사하시니 그 마음이 내 살을 뚫고 들어가 순식간에 심장에 닿아버렸다.


큰 병원에 가면 의사와 간호사뿐 아니라 여러 가지 직업의 사람들이 다양하게 저마다의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내가 근무하고 있는 행정복지센터도 마찬가지다.


공무원분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공무원이 아닌 기간제로 일하고 있는 나도 있고 행정도우미로 근무하는 분도 계시다. 그리고 사무실 청소를 맡아서 해주시는 분도 계시고 면에서 일자리를 제공해 공공 근로로 일하고 계시는 분들도 있다.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곳이라면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함께 같은 근무지에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행정복지센터에서 3년 차로 근무하고 있는데, 올해 행정도우미로 일하고 계시는 주사님께서는 우리면이 처음이고 행정도우미도 처음이라고 하셨다. 원래는 다른 일을 하셨는데 머리를 다쳐 뇌 수술을 받은 이후로 한쪽 눈이 실명되었고 건강도 예전 같지 않아 장애진단도 받으셨다고 들었다. 어느 날인가 행정도우미로 오게 된 이야기까지 전반적인 얘기를 듣고 주사님을 좀 챙기자 싶었다. 왜냐하면 낯선 근무지에서 같은 공간에 있어도 모두 다 낯선 사람들이고, 행정도우미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보니 혼자만 하루 종일 멀뚱멀뚱 앉아 있다가 집에 가는 날이 잦았다.


얼마나 하루가 지루하고 따분하고 답답할까

말 걸어주는 이도 거의 없고 그렇다고 본인이 다가가서 먼저 말을 거는 성격도 아니신 것 같고, 할 말도 없고... 원래 말씀도 적으시고 말주변도 별로 없으신 것 같았다.

자식보다 더 어린 직원들하고 무슨 할 얘기가 있겠는가? 설사 말을 한다 해도 계속해서 이어질 리도 만무하고...


자리에 앉아서 허공만 바라보다 점심때가 되면 밥은 먹어야 하고 그러고 나서 또 오후 시간을 무미건조하게 보내다 퇴근하고...


이렇게 반복되는 나날들을 보내다 보면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사람이 우울하고 자괴감(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마음)에 빠지는 건 한순간이다. 물론 똑같은 상황에서도 열등감 없이 스스로 자기 할 일을 찾아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성향에 따라 그렇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변하고 싶으나 현재 갖고 있는 에너지가 바닥이라 조금도 치고 올라갈 힘이 없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아주 조금이라도 끌어 줄 수 있는 그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하다.


행정도우미로 계시는 주사님이 나는 안쓰러웠다. 만약에 우리 아빠가 저런 상황에 놓여있는다면 아빠는 얼마나 하루하루가 괴로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뛰쳐나가고 싶을 것이다. 컴퓨터도 잘 다루지 못하고 한쪽 눈이 실명이라 책을 보고 싶어도 오래 집중해서 볼 수가 없다.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을 상황이, 공간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면 사람은 점점 더 자존감이 무너지게 되어 있다. 안 하면 안 했지 나 자신이 부끄럽고 바보 같게 느껴지는 곳에서 계속 있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틈틈이 주사님을 관찰했다. 저분이 계속 저렇게 다니실 수 있을까? 다음에 또 행정도우미를 한다고 하실까? 표정도 전혀 즐거워 보이지 않고 과연 무슨 낙으로 하루를 보내실까 궁금했다. 그래서 자주는 아니지만 일부러 말을 걸었다.

주말에는 어떻게 보내시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등등. 그리고 내가 점심 약속이 있거나 쉬는 날에는 점심을 같이 먹을 수 없으니 미리 말씀을 드렸고 꼭 식사하시라고 당부도 드렸다. 한 번은 혼자만 남겨져서 식사를 못하신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고 팀끼리나 아니면 그 밖의 이유로 따로 먹게 되는 날에는 뭘 드셨냐고 여쭤보기도 했다. 또한 두 달에 한 번씩 병원을 가시는데 언제 가시냐고 여쭙고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도 드리고 최근에는 틈틈이 한글타자도 익히시라고 방법도 알려드렸다. 그랬더니 아주 가끔이기는 하지만 궁금한 게 있으시면 내 자리로 오셔서 물어보시는 날도 생겼다. 그러면서 표정이 밝아지셨고 목소리에도 미세한 차이이기는 하지만 힘이 생기셨다. 적극적으로 인사하셨고 요즘 행동을 뵈면 올해 말까지 전보다는 즐겁게 잘 다니실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게 다다. 그냥 조금 챙겨드린 게 다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을 그냥 했을 뿐이다.


갑작스러운 회식이기는 했지만 전체 회식이므로 행정도우미 주사님께도 말씀드렸다. 같이 가시자고. 존재감이 없다고 느끼니 이런 자리에 가지 않으려고 하시는데 그럴수록 가야 한다고 설득했다. 지난 7월 회식 때에도 그랬고 이번 회식에도 꼭 같이 가자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내 차로 모시고 갔다. 막상 가시니 식사도 잘하셨고 술도 곧잘 드셨고 노래방에서 노래도 3곡이나 시원하게 부르셨다. 마음고생도 많으셨을 테고 말 못 할 스트레스도 많이 받으셨을 텐데 이렇게라도 푸셔서 다행이었다. 주사님을 바라보고 있으니 함께 가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행정도우미 주사님의 "고맙습니다. 정~~ 말 고맙습니다."라는 표현이 어떤 마음인지 아니까 앞으로 더 잘 대해드리고 더 따뜻하게 대해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고마움을 느끼고 진짜로 고맙다고 표현하는 그 마음에 내가 더 감사했고 감동 먹었다. 표현이 서툰 사람이 의외로 많은데... 행정도우미 주사님도 한참 어린 나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기가 많이 어려우실 수도 있었을 텐데 "고맙습니다."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셨으니 진짜로 정말로 감사했다.

주사님 덕분에 나도 힘이 더 생겼다.

너무 좋다. 기분이 정말 좋다. 이런 순수한 마음과 수수함이 감동과 감탄을 하게 한다.


나는 거창하게 미래를 계획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내 삶에 소신과 원칙을 지켜며 살고 싶다. 그중 하나로 사회에서 약자로 불리는 사람들이 아무런 잘못 없이 소외당하고 소외를 받을 때 그것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이 되려면 내가 약자 편에 서서 강한 사람에게 더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가능하겠기에 사소한 것일지라도 뭐든 하고 있는 것이다. 멈추지 않고 무슨 일이 생겨도 그저 묵묵히 겸손하게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해서 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끝까지 될 때까지 할 거니까. 포기하지 않는 것은 나의 무기다.



#소신

#원칙

#에세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해서 하는 것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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