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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성화 Nov 26. 2024

김장이 끝나야 긴장도 풀린다. 과연 즐길 수 있을까?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2024. 11. 24(일요일)


한 해 마지막 큰 행사인 김장이 드디어 끝났다.

정확하게 세지는 않았지만 올해도 대략 150 포기 정도는 한 거 같다.

흔히 사람들이 김장을 했다고 하면 15~20 포기, 많게는 30 포기를 했다고 말한다. 나는 친정과 시가가 모두 시골이고 직접 키운 배추를 밭에서 가져오는 것부터 시작을 하며 배추 포기도 기본 100단위 이다 보니 많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결혼 전에 엄마가 식당을 하셨는데 기본 200~300 포기를 했었고 어떤 해는 400 포기 김장도 해봤다. 남들도 다 이렇게 하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어서 오히려 내가 더 어벙벙했었다.


그런데 좀 웃긴 게 친정 김장은 아무리 많이 해도 스트레스가 거의 없는데 왜 시가에서 하는 김장은 해마다 중압감이 상당할까? 10년 넘게 같이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어쩔 수 없는 걸까? 나도 마음을 비우고 편안하게 하고 싶은데 그동안 잘되지 않았다.


오늘 김장이 끝나서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 좋다.


해마다 집안에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큰며느리로서 느끼는 압박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큰데 올 한 해 마지막 행사가 끝났으니 얼마나 좋겠는가?

역시 김장이 끝나야 긴장도 풀린다.

오죽하면 이 말을 일주일 전부터 되뇌었을까?


그런데 신기했다.

주문처럼 계속해서 중얼중얼 대다 주말이 딱 왔는데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나를 발견했다. 묘했다.


안방마님이신 어머니께서는 모든 것을 총괄해야 하니 틈을 안 주고 다급하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막 시키신다. 한 번에 하나씩 차근차근하는 게 편안한 나는 순간 멘붕이 온다. 욱하고 속에서 불이 올라오는데 참고하는 게 많이 힘들었었다.

그랬는데 어제와 오늘은 달랐다. 확실히 누그러져 있는 내가 보였다.

"오잉?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순간 어리둥절했다.

나 맞아?

생각하기 나름이고 마음먹기에 달렸다더니 진짜네??

이런 감정 나쁘지 않았다.


우리가 느끼는 기분이나 감정이 타인이나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는 것을 또 한 번 느꼈다. 반복해서 경험하면 좋겠다. 머리로만 아는 게 아니라 피부로 더 확실히 느낄 수 있도록.

2021년 「보도 섀퍼의 돈」을 재독 할 당시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크나큰 깨달음이 있었다.


"모든 책임은 항상 나 자신에게 있다."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까지 나는 40년이 넘게 걸렸다.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내 차를 누가 박았을 때, 원치 않는 병에 걸렸을 때, 비 피해로 한 해 농사를 다 망쳤을 때 등등 이런 상황에서도 즉시 내 책임으로 받아들일 사람이 과연 있을까?

당연히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아니면 시간이 흘러 감정이 누그러지면 내 책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생길까? 나는 절대로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도 그렇고 주위에도 자기 책임이라고 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보도 섀퍼는 나의 이런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주었다.

다른 사람이 저지른 행동과 처한 상황, 자연재해에 대한 책임이 오롯이 나에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에 따른 대응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모든 사건에 대한 책임이 나에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하느냐에 대해선 항상 책임이 있다는 얘기


<2장> 이 부분을 읽고 또 읽은 후 잠시 책을 덮어버렸다. 그만큼 충격이 컸다. 한참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어떤 상황에 처해지면 그 순간을 피하려 하거나 아니면 잘못을 알면서도 그 순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핑계를 대거나 억지를 부렸다. 어른답지 못한 행동을 했던 지난날이 너무 부끄러웠다. 마흔이 넘어서야 깨달았다. 생각의 전환이 얼마나 중요하고 깨달음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몸으로 느꼈다. 돈공부 하려고 다시 읽은 책이지만 돈 공부에 앞서 인생책이 되었다.

2017년에 똑같이 이 책을 읽고도 전혀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눈뜬장님이었고 깨달음도 마음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2017년에는 깨달을 준비도 여유도 없었던 30대였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40대라서 감사하다.


어제오늘 정말 이런 마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솔직한 나의 감정과 정면으로 마주한 게 성과라면 큰 성과였다.


일곱 식구가 사는 우리집에 다른 식구들이든 손님이든 누가 온다 하면 집을 정리하고 청소부터 하는 게 우선이라 언제나 이게 큰 부담이었다.

누가 오는 게 부담이 아니라 누가 올 때마다 미리 청소를 하고 맞이해야 한다는 그 압박이 나를 짓눌렀다.




지금보다 삼형제가 더 어렸을 때에 있었던 일이다.

가까이에 시고모님께서 사시는데 한번은 어지럽혀 있는 우리집을 보시고는 못마땅하게 한 말씀을 하셨던 게 내내 가슴에 콕 박혀버렸다.


당시 나는 우리 마을 부녀회장을 맡고 있었다.

시골이라 고령의 어르신들만 계시다 보니 몇 년째 공석으로 있던 자리를 메꾸기 위해 이장인 아버님께서 부녀회장 명단에 내 이름을 동의도 없이 올리셨다. 어쩔 수 없이 우리 마을을 대표해 활동이 있을 때마다 불려 나가야 했다. 막내가 백혈병 치료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며느리가 고생고생하며 병원 다니는 것을 두 눈으로 보고도 내린 결정이라 생각하니 아버님이 미치도록 원망스러웠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이해불가였다.

처음 맡은 부녀회 활동은 녹록지 않았다. 마을을 대표해서 참여하는 활동이다 보니 내가 잘못하면 시부모님귀에 바로 들어가는 구조였다.

좁은 시골 바닥에서 떡방앗간을 하시는 아버님, 어머님 얼굴 생각해서 열심히 꾸역꾸역 할 수밖에 없었다. 일곱 식구 살림에, 아이들 육아에, 아픈 막내 케어에, 틈틈이 농사일과 떡방앗간 일도 도와드리면서 부녀회 활동까지.. 정말 몸이 열 개, 스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스트레스가 폭발할 지경이었다.


잠이 부족해도 쪽잠 잘 시간도 없이 살았다. 일곱 명이 사는 집에서 어른이 넷인데 집이 더러운 것에 대해 왜 화살이 나한테만 돌아오는지 도저히 납득을 할 수가 없었고 화만 났다. 세 아이들이 어렸고 치워도 치워도 표가 안 나는 게 집안일인데, 같은 여자로서 이해를 못 해주는 시고모님이 미웠다. 반복되는 육아와 살림만으로도 너무너무 힘든데 주어진 것들을 어떻게든 다 하려니 어느샌가 많이 지쳐버렸다. 그래서 조금씩 내려놓았다. 매일 하지 않으면 밥을 먹을 수가 없고 빨랫감이 산더미 같이 쌓여서 설거지와 빨래는 매일매일 했다. 상대적으로 청소는 보이는 곳만 대충 하다 보니 구석구석에 있는 먼지들에게는 한동안 자유를 허락했다. 깨끗하게만 살다가 먼지가 좀 보이기 시작하니 처음에는 조금 찝찝하기도 했는데 털털한 성격이라 금방 적응이 되었다. 먼지 하나 없이 너무 깔끔 떨면 그것도 병이라고 생각한다. 털털한 성격에 만족한다.


집안에 먼지 좀 있다고 당장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다. 무방비 상태에서 시고모님께 폭격을 당한 그 기분은 매우 찝찝하고 불쾌했다. 친정엄마라면 요즘 같은 세상에 일곱 식구 살림한다고 안쓰러워하시고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실게 뻔하다. 그런데 나도 사람이라 그런지 시가 식구한테 들은 말은 곧이곧대로 뼈에 박히고 열불이 났다. 다행히도 몇 년이 지난 지금은 괜찮아졌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밤마다 독서를 하면서 마음을 다스린 덕분이었다. 홀로 책 읽고 생각하는 밤 시간이 나의 유일한 낙이었는데 이때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도 없을 것이다.

사람은 함부로 미워하지 않는 게 내 신상에도 좋다.


부녀회장으로서 시작은 억지로였으나 3년 동안 최선을 다해 활동한 결과 그 속에서도 배운 게 많았다. 부녀회를 나오고도 괜찮은 분들과 관계를 유지하게 된 거에 감사하다. 게다가 삼형제도 이제는 클 만큼 커서 자기 할 일을 스스로 하고 집안일도 종종 거들어주니 숨통이 트인다. 이런 날이 언제 오나 했는데 어느새 왔다.


고모님도 코로나 때 아들 장가를 보내신 후 많이 달라지셨다.

며느리를 처음 맞이하셨고 손녀도 보셨다. 어느 순간부터 칭찬을 해주신다. 막내 살려내서 장하다고 하셨고 세 아들 키우느라 고생이 많다고도 하셨다. 집안 살림하며 일도 다니고 가끔씩 시부모님 떡방앗간 일도 도와준다며 대단하다고 칭찬하셨다.


딱히 한 게 없는데 바뀌셨다. 시간이 약인가?

시고모님께서 어쩌다 하신 말씀 때문에 서운해서 그랬지 시고모님을 미워하지는 않는다. 결혼하고 나에게 모나게 대하신 적도 없고 그럴 분도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일이 있었던 뒤로는 우리집에 누가 온다고만 하면 청소부터 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긴데 왜 내가 다른 사람 눈치를 보고 사람들의 말에 휘둘려서 기분이 나빠지는지 그게 싫었다. 다시는 그러지 않기로 하고 마음을 내려놓았다. 이게 시작이었다.


지난 금요일, 퇴근을 하면서 또 주문을 외웠다.

"이번 김장은 (진짜) 즐기면서 하자!"라고


이렇게 생각해서인지 화장실 청소가 별로 힘들지 않았다. 깨끗하게 청소하면 오는 식구들이나 살고 있는 우리들이나 모두에게 좋은 거니까 다 했을 때의 기분만 떠올렸다.

아가씨, 서방님, 동서, 세 살 조카 그리고 김장 도와주러 오시는 어머님들까지.. 향기 나고 깨끗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세팅해 놓으니 좋았다.


토요일에 다 같이 밭에서 배추를 다듬고

나르고

절이고

밤늦게까지 김장 준비로 바빴다.

옷을 많이 껴입었는데도 밤이 깊어갈수록 발이 시리고 추워 덜덜덜 떨었다.

우리집에서 김장은 정말 보통 행사가 아니다.


1박 2일의 강행군이 고되고 지치지만 덕분에 경험이 쌓이고 깨달음도 온다.


2021.12.5 / 김장이 끝나야 긴장이 풀린다.

김장 시즌이 돌아오면서 블로그를 시작한 2021년을 돌아봤다. 첫 김장 기록이 있어 열어봤다. 어머나 어머나 웬일~~

오늘과 거의 똑같았다. ㅎㅎ

새로 기록하지 않아도 될 만큼 거의 똑같아서 놀랐다. ㅋ


우리는 이렇게 김장을 한다.


떡국 15인분을 끓이고 수육도 15인분을 준비해 다 먹었다.

김장을 도와주러 오시는 분들이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떡국도 오래 끓이고 수육도 기본 50분에서 10분을 더 삶는다. 그래야 어머님들 식감에 딱 맞다.


입맛이 서로 다르고 간의 기준도 모두 다른데 음식을 대접하는 입장에서 이 또한 부담이 컸다. 새우젓 양념, 묵 위에 끼얹을 양념간장 하나까지도 정성을 들여 만들었다. 떡국과 함께 먹을 김치로는 김치냉장고에 있던 김장김치를 먹기 직전에 꺼내 가지런히 썰어서 내놓았다. 딱 맞게 익은 동치미와 총각김치도 곁들었다. 수육을 먹을 땐 김장 겉절이가 제격이지만 떡국을 먹을 때는 익은 김치와 먹어야 더 맛있다.

둘 다 필요하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닥치기 직전까지는 스트레가 최고조였고, 막상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스트레스가 " 0 "으로 내려가 있었다.

결혼한 지도 10년이 넘었고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여전히 즐기기 못하고 있었다. 부담을 갖지 않으려고 애도 써 봤지만 잘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김장엔 나름 성과가 있었다.


아직도 막 즐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미리미리 마음의 준비를 한 덕분에 어제오늘 편안하게 김장을 했다. 엄마 껌딱지인 조카가 있음에도 동서는 어머니께서 시키신 대로 잡채를 맡아서 했다. 우리 아이들은 조카와 놀아주며 불평불만 안 하고 파김치 할 쪽파도 끝까지 다듬어 줬다. 아가씨와 서방님도 어제와 오늘 쉬지 않고 일했다. 다같이 열일해서 좋았다. 오셨던 분들이 모두 돌아가고 남은 뒷설거지까지 마무리하고 나니 해가 저물고 있었다.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눈꺼풀이 세상 무거웠다.

그렇지만 이대로 멈출 수가 없었다.

김장은 끝나서 신났고 일요일 저녁의 낙인 글쓰기 & 책쓰기 수업이 있기에.

출처 : 네이버

부담 없이 줌으로 하는 #닥치고책쓰기 수업이라 정말로 위급한 일 아니면 무조건 참여할 생각이다.


여유가 있어서, 시간이 남아돌아서 수업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한 분도 없으시다. 나보다 훨씬 더 바쁘신 분들인데도 불구하고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참여하신다. 글쓰기 수업이 아니었다면 내가 감히 만날 수 없는 분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하다. 저절로 겸손해졌다. 수업 소감을 나누면서 피곤했던 몸에 다시 에너지가 가득 채워진 느낌이었다. 순간 졸린 눈이 "뿅" 하고 떠졌다.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마음 깊이 새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4주간의 수업이 반복이 되는데 반복 수업이라 더 좋다. 저절로 암기가 되고 계속 듣다 보니 적용을 꼭 해봐야겠다고 결심이 서는 내용이 하나둘씩 늘어난다. 수업에 참여하는 마땅한 이유와 명분이 생겨서 참여할 수밖에 없다.


나답게, 그림이 그려지듯 구체적으로 계속 쓰면 된다고 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어도 전부 다 기억할 수는 없다. 하나라도 가슴에 남는 게 있다면 그걸 붙들어 글을 써보려 한다.


글쓰기 & 책쓰기 수업 덕분에도 이번 김장은 편안하게 지나갔다.

'즐기자'라고 마음을 먹었더니 즐기기까지는 아니어도 김장 준비와 본 김장하는 내내 감정이 널뛰기하지 않았다.

아침부터 해가 저물 때까지 글쓰기와 책쓰기 수업을 기대하는 맛에 의욕이 넘쳐 일했다. 오늘은 어머니께서 명령조로 말씀을 하셨어도 발끈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가장 힘든 사람이 어머니이지 않은가?

고된 떡방앗간 일로 50대부터 꼬부랑 할머니처럼 허리가 구부러지고 뒤틀어진 우리 어머니. 나는 시키는 일 위주로 하면 되지만 어머님은 김장을 진두지휘(陣頭指揮) 하시는 입장이다 보니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뿐이랴?

보면 알게 되니 "네" 하고 그냥 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마음을 고쳐먹었더니 애쓰지 않고도 이렇게 편안하게 지나가는 것을 결혼 10년 동안은 잘 몰랐다. 나이는 괜히 먹는 게 아닌가 보다. 20대보다는 30대가 좋았는데 인생을 되돌아볼 시기로 적당한 40대인 지금은 더 좋다. 50대가 기대되고 60대~90대, 100세가 기다려진다. 해마다 똑같은 김장이라 생각했는데 김장하는 방식은 변하지 않겠지만 사유의 시선은 옮겨갔다. 고명한 작가님이 얘기했던 정신과 철학으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내가 어떻게 성장하고 성숙해 갈지 기대가 된다. 그러니 하루하루가 즐거울 수밖에. ㅎ ㅏ ㅎ ㅏ ㅎ 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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