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을 걷은 창밖으로 늦은 오후 햇살이 가늘게 비치고 있었다.
눈을 떴을 때, 커튼을 걷은 창밖으로 늦은 오후 햇살이 가늘게 비치고 있었다. 희미한 빛의 결이 창문을 타고 흘러들어와, 병실 특유의 하얀 벽을 부드럽게 물들이고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아니 어쩌면 훨씬 더 긴 시간일지도 모르는 동안 나는 정신과 육체가 고갈된 채로 여기에 있었다. 처음에 눈을 떴을 땐, 팔이 침대 레일에 묶여 있고 목이 바싹 말라서 입술이 갈라졌었다. 간호사가 나타나 “한동안 위험했으니 제지를 했어요. 일단 안정을 찾을 때까지 움직이면 안 돼요”라고 했을 때, 무력감이 온몸을 휩쓸었다.
[주의] 아래 이야기는 극단적 선택 및 자해 시도를 다룹니다. 읽는 분들 중 불편함이나 트라우마를 느낄 수 있는 분들은 충분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위기 상황에 있거나 자살을 고려 중이라면,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주시길 바랍니다.
엄마는 날 보러 올 때마다, 울먹이는 얼굴로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내 손만 살짝 쥐었다 놓았다. 내가 큰 수술을 받을 때도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스스로 지른 화마에서 살아남았다는 점이 달랐으리라. 오랜 시간 만에 의식을 되찾았을 때,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만나서… 고마워”라고 말했을 땐, 말문이 막혀 고개만 끄덕였다. 정말로 마지막이 될 수도 있던 순간이 무산되었다는 사실이 서로에게 이상한 안도감과, 동시에 더 큰 혼란을 가져다주는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 정신과 선생님이 한 번 병실을 찾아와 내 상태를 짧게 점검했다. 살짝 언짢은 표정으로 “왜 그리 많은 약물을? 환자는 잘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요?”라고 묻는 말이 날 현타 오게 했다. 나는 대답 대신 침묵했다. 말하자면 길고 복잡한데, 머릿속엔 “어차피 마지막이라 믿었으니까요”라는 말이 아스라이 떠올랐지만, 도저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선생님은 내 침묵을 한참 지켜보다가, “이후엔 좀 더 안전한 병동으로 옮길 수도 있어요. 지금은 안정을 취하세요”라고만 짧게 말하고 병실을 나갔다.
사실 긴 시간 동안 무의식 상태였기 때문에, 병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병원의 기록으로는, 나는 여러 번 저산소증에 빠지고, 호흡이 약해져 인공호흡기를 설치했다 떼길 반복했다고 한다. 해독제를 여러 차례 투여하는 과정에서 발작 비슷한 증세도 있었다고. 모두 내가 의식이 없을 때 일어난 일이니,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러나 그 모든 고비를 넘기고, 이렇게 눈을 뜨게 된 이상 내 의지는 무의미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생을 끝내려 했다는 사실조차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몸은 여전히 노곤했고, 가슴이 답답했다. 폐가 약간 상처 입은 듯한 느낌으로 숨을 쉴 때마다 따끔거렸다. 아마 구급대가 도착했을 때 이미 호흡 부전 상태였으니, 그 과정에서 손상을 입었을 수도 있다. 링거 줄에 담긴 약물은 아직도 내 핏속에 공급 중이었고,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아픈 몸을 지탱해 주었다. 문득 창밖을 바라보니, 억새처럼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원래라면 그 흔들림조차 감상하지 않았을 내가, 지금은 한가롭게 바라보고 있다. ‘죽음 직전엔 이런 사소한 장면도 못 보았겠지’라는 생각에 잠시 섬뜩하면서도 묘한 안도감이 스쳐갔다.
머릿속을 채우는 또 다른 질문은, ‘어쩌다 살아남았을까?’ 하는 것이다. 병원 측에서 “정말 순식간에 신고가 들어와 목숨을 건지셨다”고 했다. 경찰과 구급대가 호텔 문을 열고 들어와 날 발견해 주지 않았더라면, 해독제와 인공호흡기로도 어쩌지 못했을 거라니. 그러나 내게 그 구조 신호를 보냈던 건 누굴까? 본능적 생존욕이었을까, 아니면 전화 한 통을 걸었던 충동적인 마음이었을까. 연락을 받은 친구는 내 위치를 알아내고, 호텔 측에 바로 신고를 넣었다고 들었다. 결국 나를 여기로 데려온 건, 잘 끊겨 있던 인연을 억지로 이어 낸 몇 글자의 메시지, 그리고 잠깐의 전화 때문이었다.
정말 그 전화가, 그 짧은 망설임이 모든 걸 바꾼 건지도 몰랐다. 그 순간 “어차피 받지 않을 거라” 믿었던 친구가 통화를 받았고, 내가 체념한 듯 아무 감정 없이 “마지막”이란 단어를 뱉은 뒤 호텔 위치를 실토해버렸으니까. 이후엔 속수무책이었다. 이미 몸이 저릿저릿 약기운에 잠식당했고, 마음조차 ‘여기까지가 끝이구나’라는 허탈감이 우세했다. 그래서 초인종이 울렸을 때 문까지 열어준 게 아닐까. 굳이 막을 힘도, 의지도 그때는 없었다.
문이 반강제로 열리고, 구급대가 달려 들어온 다음부터의 기억은 온통 파편적이다. 팔에 꽂힌 주삿바늘이나 들것에 실려 나갈 때 보았던 호텔 복도의 칙칙한 조명이 스쳐가기도 하고,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귓가에서 울리기도 했다. 그러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병원이었고, 팔에는 해독제가 대롱대롱 꽂혀 있었다. 그렇게 한밤중에 숨이 끊어질 뻔한 내가, 다행히(?) 이 틈을 타 생존자가 돼 버렸다.
의사가 다시 회진을 돌며, “이제 많이 좋아지셨네요. 아직 안심하긴 이르지만, 경과가 나쁘지 않아요. 정신적인 부분은 추후 상담으로 풀어가야 할 겁니다”라고 얘기했다. 그 말이 경쾌하게 들리진 않았다. 그래도 “목숨을 건졌으니 이젠 살길을 찾아보자”는 식의 말투였다. 그게 내 마음을 안심시키거나 불편하게 하거나 둘 중 어느 쪽이라 확신하기도 힘들었다. 나는 자꾸만 ‘어차피 망가져 버릴 거였는데, 왜 굳이’ 하는 불신과 ‘이렇게라도 살아 있다는 게 그나마 나은 걸까?’ 하는 이중적 감정에 휩싸였다.
그러나 확실한 건 하나 있었다. 한 끗의 망설임이, 내 삶에 엄청난 갈래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다. 그 망설임은 곧 우연히 연결된 전화 한 통이 되었고, 도움을 부르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도움을 청했거나, 적어도 도움을 수락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그 작은 흔들림이 없었다면, 호텔 방에서 이미 숨이 막혀 의식 없이 발견됐을지도 모른다. 계산한 용량과 방법도 완벽하다고 믿었지만, 결국 빈틈은 내 안에 있었다는 결론일까. 한 끗의 흔들림이었다 해도, 분명 그것은 내 의지 안에 존재했던 셈이다.
병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어느새 저녁 빛이 사위어 가는 걸 볼 수 있었다. 병원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잦아들고, 간호사는 다른 환자를 돌보는 중인지 한참 동안 방문이 열리지 않았다. 문득, 내가 호텔에서 죽으려 했던 이유들이 주마등처럼 흩어졌다. 통증과 우울감, 후유증, 그리고 끝없는 불안. 여전히 해결된 건 아니지만, 지금은 그런 문제들을 뒤로 한 채, 이 병실 침대에 묶인 상태로 존재한다. 세상은 여전히 빠르게 돌아가고, 나는 한 걸음도 뗄 수 없지만, 시간은 분명히 흐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한 끗’이 만든 균열은 어디로 향할까. 내가 지금 얻은 건, 다시 살아볼 기회라는 거창한 표현일지, 아니면 또 다른 시련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누군가의 말처럼, “망설임은 때로 삶을 바꾸는 가장 큰 힘이 되기도 한다.” 내 이야기가 완벽한 실패로 끝난 죽음의 계획이었음에도, 그걸 듣는 누군가는 의외로 희망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혹은 절망 속에서 ‘그래도 한 번 더 망설여 보자’는 의지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내가 직접 겪어 봤으니까—단 몇 초의 흔들림조차, 인생을 완전히 다른 길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것을.
물론 ‘살아남았으니 다행이다’는 식의 단순함으로 정리하기엔, 내 상태가 아직 너무나 허무하다. 퇴원 후에 다시 우울감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육체적 고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이 병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단 호흡을 유지하고 조금씩 신체를 회복하는 것이다. 정신도 함께 돌아온다면, 그때야 비로소 삶을 다시 설계하는 게 가능할지 모른다.
밤이 깊어지자, 복도 불빛이 약간 어두워졌고, 간호사가 들어와 “주무세요. 혹시 새벽에 힘들면 호출 벨 누르세요”라고 말했다. 이젠 묶였던 보호대를 조금 풀어주겠단다. 역시나 완전 해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몸을 조금 돌릴 수 있을 정도는 됐다. 그게 불과 얼마 전까지 죽음조차 불사하려 했던 나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라는 사실이 여전히 어색하지만, 어쩌면 안전망이란 게 원래 이렇게 고리타분한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도 모르겠다.
머리를 살짝 돌리고, 가슴 깊숙이 숨을 들이마셨다. 아직은 답답하지만, 그래도 폐로 공기가 들어왔다. 밤공기가 차가워지면 열이 올라갈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간호사의 말이 들렸다. 나는 이 말을 흘려들으며 마음속으로 곱씹었다. ‘끝이라고 믿었던 그날 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 그 짧은 망설임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구나.’ 친구가 어떤 심정으로 신고했고, 또 어떤 경로를 통해 구급대가 그 호텔을 찾아왔는지 아직 잘 모르지만, 내 목숨은 그렇게 구원되어 이 병실에 갇혀 버렸다.
이미 이런 결론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으니,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죽음이라도, 작은 망설임 하나가 갈림길을 만든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하나의 메시지, 한 줄의 말, 혹은 1초의 주저함—그게 결정적 순간에 우리를 전혀 다른 길로 데려갈 수 있다. 나도 사실 내가 왜 그 길을 택했는지 100% 설명할 순 없지만, 결과적으로 살아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해졌다. 그리고 그 사실 자체가,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게 만들 테니까.
(마침)
"사람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죽음이 아니라, 아직 살기 시작도 못 하는 상태임을 두려워해야 한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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