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에서 돌아온 자: 정신병동에서의 한 달

정신병동 복도엔 희미한 소독약 냄새가 감돌았다.

by Youhan Kim

처음 그곳에 발을 디딜 때만 해도, “여기서 내가 무슨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불신이 컸다. 이미 한 차례 해독제와 인공호흡기로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 뒤라, 몸도 정신도 거의 바닥을 치고 있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모든 걸 무감각으로 흘려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정신병동에 머물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내키지 않지만 ‘그래, 그냥 받아들이자’는 체념 섞인 결정을 했다.


[주의] 아래 이야기는 극단적 선택 및 자해 시도를 다룹니다. 읽는 분들 중 불편함이나 트라우마를 느낄 수 있는 분들은 충분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위기 상황에 있거나 자살을 고려 중이라면,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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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막상 병동에 들어서자, 내 상상과는 조금 달랐다. 분명 문마다 보안이 철저하고, 면회 시간과 휴대전화 사용이 제한되긴 했지만, 그것 말고는 의외로 조용한 복도와 간호사들의 부드러운 태도가 눈에 띄었다. 나를 반기는 대신, 차분하게 건네는 말들이 뭔가 기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아, 이 안에서는 적어도 생사의 위기는 없겠구나’라는 약간의 안심을 느끼게 됐다.


처음 며칠 동안은 기력이 바닥나서 거의 누워 지냈다. 팔에 꽂힌 수액과 진정제 탓에 잠이 쏟아졌고, 매번 짧은 꿈을 꾸다 깨다를 반복했다. “집에 가고 싶지도 않고, 여기가 딱히 좋지도 않다”는 허무감이 컸지만, 간호사들이 가끔 병실에 들러 “지금은 잠을 충분히 자는 게 좋아요”라며 토닥이고 가면,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편안해졌다. 그들의 말투나 표정이 한결같이 차분하고 무심하지 않게 느껴져서, 내가 응급실에서 막 실려 왔을 때와 달리 ‘여긴 나를 부드럽게 보살펴 주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차 생활 리듬에 익숙해졌다. 아침 7시에 기상, 8시에 식사, 9시에 간단한 체온·혈압 체크를 받고, 10시에 상담이나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식이다. 평소 같으면 ‘군대 같다’며 반감을 가졌을 테지만, 오히려 이렇게 철저한 규칙 안에서 몸을 움직이니 ‘내가 하루를 제대로 버틸 수 있구나’ 하는 의외의 만족이 들었다. 휴대전화 사용 시간이 제한된 것도 처음엔 불편했지만, 덕분에 스마트폰에 쏟던 시간을 줄이고 병동 도서 코너에 있던 책과 잡지를 뒤적이게 됐다. 그러면서 조용히 자신을 돌아볼 틈이 생겼다.




사람들과의 교류도 꽤 큰 비중을 차지했다. 정신병동이니만큼,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조울증, 때론 알코올 문제 등 다양한 사정으로 입원한 환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거의 말하지 않다가도, 밤이 되면 복도 휴게실에 앉아 슬쩍 속마음을 털어놓곤 했다. “나도 한때 끝내려 했는데, 차마 실행은 못 했다”거나, “가족 때문에 더 살고 싶긴 하다”는 식의, 나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결의 고민을 들으면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죽고 싶어 한 건 나뿐만이 아니구나. 그리고 이들조차 여기 와서 다시 살아갈 의지를 찾고 있구나’라는 사실이 희미한 위로가 됐다.




심리 상담도 생각보다 도움이 됐다. 나는 상담사가 “당신은 정말로 죽기를 원했나요, 아니면 고통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건가요?”라고 물었을 때, 즉답을 못 했다. 끝내려 했던 기억은 생생하지만, 정작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애매했다. 상담을 거듭하면서 “내가 원하는 건 완전한 소멸이 아니라, 지금의 지긋지긋한 통증과 막막함에서 벗어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깨달음이 왔다. 상담사는 그걸 놓치지 않고, “본능적 열망은 여전히 삶 쪽에 기울어져 있지 않을까”라며 희망을 심어 줬다. 처음엔 억지로 들렸지만, 마음 한편이 그 말에 반응한 건 사실이었다.


약물은 항우울제와 안정제를 병행했다. 초반엔 어지럼증과 졸음에 시달렸지만, 점차 몸이 적응하면서 극도로 요동치는 우울과 절망이 어느 정도 ‘평준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감정이 너무 깊은 골짜기까지 빠지지 않고, 한 단계 얕은 곳에서 멈추는 식이었다. 스스로 “이게 내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닌데” 하면서도, 불면증이나 극단 충동이 줄어드는 게 꽤 편안했다. 의사는 “감정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화학물질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라며 꾸준히 복용을 권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몸이 회복되자, 의사는 “이제 어느 정도 안정됐으니 퇴원을 고려해 봅시다”라고 권유했다.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심하게 동요했다. ‘어, 이 병동을 나가도 괜찮을까? 다시는 이런 관리와 보호를 받지 못하면 어떡하지?’ 호텔에서 죽음 직전까지 간 이후, 이 병동 생활은 내게 일종의 ‘피난처’ 같은 구실을 했다. 아무리 불편해도 적어도 죽음의 위협은 없고, 무슨 일이 생기면 간호사나 의사가 즉시 달려와 주니 말이다. 그렇게 의존적이 될 줄은 몰랐는데, 막상 떠나려니 ‘안전지대를 잃어버리는 느낌’이 밀려와 솔직히 불안했다.


하지만 이미 살얼음판을 건너온 이상, 여기서 오래 머무르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됐고, 약물과 상담으로 ‘지금은 괜찮다’는 결론이 났으니, 밖에서 자립적인 삶을 시도해야 했다. 퇴원날 아침, 내 짐을 챙기며 “이곳이 나에게 생각보다 큰 안식처가 되었구나”를 실감했다. 그 안식처를 떠난다는 게 적잖이 무서웠지만, 병동 내부 규칙에 더 오래 갇혀 있고 싶지도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삶을 다시 이어 보려면 이곳을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퇴원 절차는 예상보다 간단했다. 의사는 마지막 면담에서 “가슴 깊은 곳에서 다시 그런 충동이 생기면 바로 연락하라”고 여러 번 당부했다. “주 1회 심리 상담, 약은 절대 임의로 끊지 말고, 갑자기 기분 폭주가 오면 주치의에게 알려라”는 지침이었다. 집에 돌아가면 일상의 자잘한 자극에 노출될 텐데, 그게 생각만큼 만만치 않을 거라고도 말했다. 그러나 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이 한 달 동안을 통해, ‘지금 생을 지속해 보는 편도 나쁘진 않다’는 감각이 싹튼 것 같다.


밖으로 나서니 햇볕이 눈부셨다. 확실히 병동에서 지낼 때와 완전히 다른 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왔다. 옆에서 엄마가 안도하는 얼굴을 지으며 “이제 집에서 푹 쉬자, 다시 돌아가긴 싫잖아”라며 웃었다. 나도 따라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 차라리 다시 응급실이나 정신병동을 가야 할 일 없이, 바깥에서 일상을 영위하고 싶다. 또 한편으론, 병동이라는 ‘피난처’를 벗어나니 얼마나 더 막막할지도 조금 무섭지만, 그래도 조금씩 살아낼 용기가 생겼다.




결국, 정신병동으로의 입원은 내게 긍정적인 선택이었다. 아무리 “끝을 낼 사람”이라 생각해 왔어도, 이 과정을 통해 “다시 살아볼 수 있겠다”는 작고 묘한 가능성을 확인했으니까. 그리고 그 결과, 나는 아직 세상 밖에서 걸어 다니고 있다. 이전 같으면 상상하지도 못했을 장면이다. 때론 흑백 영화처럼 감정이 흐릿해도, 중요한 건 삶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그걸 깨닫게 해 준 것이 정신병동에서의 한 달이었다. 그리고 병동을 떠날 때 느껴진 불안감마저, 오히려 내가 ‘다시 나아가야 한다’는 당연한 진보의 신호처럼 보였다. 결국, “이곳에서 벗어나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에 “그렇지만 더 이상 여기에 머무르는 건 네가 원치 않잖아”라고 스스로 답하게 된 셈이니까.



"유한한 실망은 받아들이되, 무한한 희망을 절대 잃지 말아야 한다." -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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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호주 등 해외 거주자의 경우, 지역별 자살예방 또는 정신건강 지원 센터를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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