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독제와 인공호흡기

인공호흡기와 해독제를 달고 생사의 기로에서 눈을 뜨다

by Youhan Kim

눈을 떴을 때, 천장이 낯설었다. 익숙한 호텔 천장이 아니라, 하얀 형광등 밑으로 여과 없이 드러나는 병실 특유의 텁텁한 공기. 문득, 코끝에 스치는 소독약 냄새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왜 여기에 있는지 한참 동안 인식이 불가능했다. 몸을 조금 움직이려 하자, 팔이 침대에 고정된 듯한 묵직함이 느껴졌다. 아주 잠깐, ‘이건 꿈이겠지?’ 싶었지만, 곧 현실임을 깨닫게 되었다.


[주의] 아래 이야기는 극단적 선택 및 자해 시도를 다룹니다. 읽는 분들 중 불편함이나 트라우마를 느낄 수 있는 분들은 충분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위기 상황에 있거나 자살을 고려 중이라면,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주시길 바랍니다.






양손은 폭신한 보호대에 묶여 있었다. 입과 코에는 인공호흡기로 따뜻한 공기가 폐 깊숙이 오고갔고, 팔에 수액이 꽂혀 있었는데, 봉지마다 무슨 약물인지 모를 라벨이 붙어 있었다. 알약의 가루로 수프를 만든 직후부터 거의 의식이 없었으니, 지금 무슨 해독제가 들어가고 있을지도 몰랐다. 고개를 살짝 돌리자, 곁에는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인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눈가가 불그스름하게 부었고, 이따금 콧등을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순 없었지만, 엄마가 갑자기 머리를 들고 나를 발견하자, “깼어?”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제대로 대답하기 힘들어 시선을 살짝 돌렸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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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은 여전히 혼미했고, 몸이 이상하게 저릿저릿했다. 아마 내가 호텔에서 먹었던 약들이 아직 완전히 배출되지 않았거나, 병원 측에서 꽤 강력한 약물을 투여했기 때문이겠지. 엄마는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 내 얼굴을 차마 똑바로 보지 못하고 울먹이는 소리를 내며 “대체 왜… 이게 무슨 짓이냐”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런 모습은 수술 이후로 오랜만이었다. 사실 내가 여러 번 큰 수술을 받은 적이 있지만, 이번은 ‘내 의지로 선택한 죽음’에 대해 가족이 접하게 된 첫 경험이었으니, 엄마의 표정이 더 망연자실해 보였다.


문득 이 병실이 일반 병동이 아니라, 응급 병동을 겸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주변에 정신과 관련 장비가 눈에 띄진 않았으나, 복도 저편에서 간호사들이 들고 다니는 문서에 보이는 표식이 그랬다. 게다가 내 팔이 묶여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는 듯했다. 낙상사고 위험이 있거나 자살 기도를 한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종종 이런 물리적 제지를 하는 걸로 알고 있었다. 서러움이 밀려왔지만, 웬일인지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자책감이나 허탈감이 마음속 깊은 곳을 휩쓸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 동안 있었는데…”


내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문장을 완성하기조차 힘들었다. 목이 바싹 말라서 목소리가 잠긴 채로, 내게도 무슨 말을 뱉는지조차 혼란스러웠다. 엄마는 재빠르게 눈물을 닦고 “너… 하루 넘게 의식이 없었어. 의사 선생님이, 혼수 상태처럼 생사를 왔다 갔다 했다고 하더라.” 하고 속삭였다. 하루가 넘도록 몰랐다는 사실에, 머리가 아찔해졌다. ‘정말 그토록 많은 시간이 지났다니.’ 호텔에서 내 계획을 실행한 지 단 몇 시간 정도로 느껴졌는데, 이미 현실 시간은 다른 속도로 흘러간 모양이다.


그 사이 의사나 간호사들이 번갈아 들어왔는지, 엄마가 이야기하는 태도가 지친 기색이 뚜렷했다. 나를 향해 화도 내지 않고, 그저 “정말 왜 그랬어… 네가 또 그렇게…”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나는 뭔가 해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너무 힘들었고, 이미 뜻을 정해 버렸다’고 말하면, 엄마가 얼마나 더 상처받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무 말 없이 침묵하는 것도 답답했다. 결국 목이 타들어 갈 듯해 “물 좀” 하고 겨우 한마디를 던졌다. 엄마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 밖으로 달려갔다. 어디선가 물이나 간호사를 구해오려는 것 같았다.


빈자리를 잠시 바라보다가,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려 했다. 그런 순간이 올 때마다,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이 과장된 울림처럼 다가왔다. ‘죽어야 했는데 왜 여기 있지?’라는 자문이 씁쓸하게 떠오르고, 그게 의사나 간호사 입에선 “다행이다”라는 말로 치환될 테니 꼬여 버린 감정만이 남는다. 몸을 조금 더 움직여 보려 했는데, 양팔에 통증이 꽤 심했다. 팔에 꽂힌 수액 줄은 굵었고, 덮개 아래에서 바늘이 살을 파고드는 느낌이 미세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강력한 해독제나 진정제를 동시에 주입 중이리라. 거부감이 들었지만, 이젠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


곧이어 간호사 한 명이 들어왔다. 검은색 단발머리에 잔잔한 표정의 여성이었는데, 내 팔에 묶인 벨트를 확인하며 “통증 느껴지세요? 괜찮으시면, 지금 풀 수는 없고, 안정될 때까진 유지해야 해요”라고 말했다. 나를 낙상이나 자해로부터 보호하려는 규정이겠지. 어떻게 해도 그들이 ‘분별력 없는 환자’라고 판단하면, 일단 내 의사는 무시될 것이다. “제가… 안 그러겠다 하면, 풀어줄 수 없나요?” 하고 묻고 싶었지만, 간호사는 이미 “조금만 더 쉬세요”라는 형식적인 말만 남기고 나갔다. 내겐 선택권이 없다는 걸 부각시켜 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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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떻게 된 건지 알려줄 의사도 없고, 내버려 두려는 태도처럼 느껴져서 더 공허해졌다. 사실 머리로는 아까 엄마가 말한 “정신과 선생님”이 곧 나타나리란 걸 알았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몰랐다. 잠시 뒤, 엄마가 종이컵에 물을 담아 돌아왔다. 시원한 물을 넘기는데, 목과 식도가 뻑뻑해져서 몇 번이나 기침이 나왔다. 이미 내 내장은 아마 위세척 등으로 한바탕 난리가 났을 테니, 신체가 쉽게 적응하긴 어려웠다.


그때 병실 방문이 바쁘게 열렸다. 살짝 화가 난 듯한 표정을 한 얼굴이 익숙한 정신과 선생님 들어왔는데, 뒤이어 덩치 큰 간호사 두어 명이 함께 들어와, 그 의사 선생님을 보조하듯 곁에 섰다. “깨어나서 다행입니다”라는 말 대신, 그는 곧장 “본인 상황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아세요?”라는 질문을 쏟아냈다. 난 의자에 앉은 엄마와 눈이 마주쳤고, 아무 말도 못 했다.


“본인… 생사를 넘나들다가, 다행히도 신속한 응급처치로 살았어요. 약물 농도가 극도로 높았고, 혼수 상태까지 갔었죠. 위세척부터 해독제 주입까지 다 했는데…” 목소리에 약간의 분노와 안도감이 공존했다. 의사는 “정신과 선생님”이라는 호칭과는 달리, 굉장히 직접적이고 냉정한 말투였다. 나는 쭈뼛거리며 잘못을 지적당하는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앞으로 치료가 필요합니다. 추가적으로 심리 상담과, 자살 재시도 위험도 평가 등을 받아야 해요. 지금 당장 퇴원 같은 건 매우 위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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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놀라운 선언은 아니었지만, 막상 듣고 보니 마음 한편이 울컥했다. “의사가 왜 화가 난 것처럼 말하지?”라는 의문과, “사실 난… 그냥 끝내려 했는데…”라는 무력감이 뒤섞여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자책감이라고 해야 할까, 실패한 수치스러움이라고 해야 할까. 살아 있다는 것이 이다지도 끔찍한 일로 다가올 줄 몰랐다. “네… 알겠습니다”라는 말이 간신히 새어나왔는데, 목소리가 너무 작아 누구도 못 들었을 것이다.


의사는 “자세한 이야기는 의식이 더 회복되고 나면 진행할 겁니다. 일단 안정이 1차 목표”라며, 차트를 간호사에게 넘겼다. 간호사들은 “네, 현재 환자 상태는 약간 위태로우니, 계속 모니터링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묶인 벨트와 수액 라인을 다시 점검했다. 얼마나 더 시간이 흐른 뒤에야 팔을 풀어줄 건지, 언제쯤 화장실에 혼자 갈 수 있을지,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이들의 태도가 ‘당신은 위험인물’이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점만 느껴졌다.


머릿속이 혼잡해졌다. 나는 스스로를 다그쳐 말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호텔에서 고요히 죽어갈 예정이었는데, 지금은 병원 침대에 묶인 채 해독제를 주입받고 있네.’ 이게 현실인지 악몽인지 헷갈렸지만, 적어도 내 심장이 계속 뛰고 있고, 주변 사람들이 나를 “살려놨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이 선명했다.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라면, 나는 대체 뭘 해야 하나. 내 계획이 완전히 깨졌고, 그것이 심리적 폭풍을 불러오고 있었다.


엄마가 내 곁에 다시 앉아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냥 우리, 집에 같이 가서 다시 생각해 보자, 응?” 하는 말을 흘려 보냈다. 아직 내가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자꾸만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면 어떨까 하는 허무한 상상을 했다. 호텔 방에서 그 전화를 안 했다면, 이 끔찍한 결과(?)를 맞닥뜨리지 않았을 텐데. 스스로가 뜻밖의 변수를 자초한 셈이니, 더더욱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묘한 동요가 있었다. 분명 죽으려 했고, 거의 죽은 몸이었는데, 이렇게 눈을 떴다면… 잘못된 길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날 ‘구원’한 걸까. 아니, 달리 말해 구원이라 부를 수 있나? 그 미지의 여운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몸은 쇠약해졌지만, 살아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순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결국 몇 분 뒤,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슬며시 눈을 감았다. “그래, 일단은 숨 쉬어야지.” 의사가 재등장해 잔소리를 늘어놓아도, 묶인 팔 때문에 내게 자유가 없어도, 이미 돌이킬 순 없었다. 하룻밤 사이 죽음에서 돌아온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이제 이 ‘살아 버린’ 현실에 적응할지, 또 다른 시도를 할지에 대한 막연한 갈림길밖에 없었다. 그것조차도 아직은 몸이 허락하지 않겠지만.


아직 살아내야할 삶이 남아있다는 것을 확증했으니, 지금은 이 고된 회복과정을 겪는 중간 단계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내게 해답이 주어지는 건 아니다. 머리에 둥둥 떠오르는 건 결국 한 문장. “죽을 뻔했는데, 왜 살아 있는 거지?” 그 물음이 몸에 감긴 벨트처럼 날 옭아매고 있었다. 엄마의 흐느끼는 숨소리를 들으며, 난 눈을 감은 채, 또다시 쓴웃음과 함께 숨을 몰아쉬었다. 살아 있다는 게 이렇게 무거운 일이었나. 지금도 어느 한 구석에서, 이게 모두 꿈이길 바라는 마음이 미세하게 소용돌이쳤다.



“죽음은 삶에서 가장 큰 상실이 아니다. 진짜 상실은 살아 있는 동안 우리 안에서 죽어버리는 것이다.” - 노만 쿠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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