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들기 전까지만 해도, 난 모든 게 완벽하게 마무리될 거라 믿었다.
잠이 들기 전까지만 해도, 난 모든 게 완벽하게 마무리될 거라 믿었다.
버섯수프에 녹인 약들은 내 몸을 조용히 마비시키고, 호흡은 서서히 잦아들어, 예상했던 시간 안에 영원히 눈을 감을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런데 몸이 반쯤 마비된 상태에서 휴대전화를 습관처럼 들여다봤을 때, 난 결국 누구도 예상치 못한 ‘변수’ 하나를 불러들이고 말았다.
[주의] 아래 이야기는 극단적 선택 및 자해 시도를 다룹니다. 읽는 분들 중 불편함이나 트라우마를 느낄 수 있는 분들은 충분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위기 상황에 있거나 자살을 고려 중이라면,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주시길 바랍니다.
갑자기 휴대전화 화면이 번쩍였다. 카톡 알림. 뜨거운 불길을 만진 듯, 순식간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진짜 답장이 온 건가?’ 정신이 혼미해져 가는 와중에도, 손을 뻗어 화면을 확인해 본 내가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다. 상대방의 아이디 옆에 뜬 말풍선은 생각 외로 반가움과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 이게 누구야… 진짜 너 맞아?”
아마 이 짧은 문장 안에 담긴 감정들은, 오랜만에 재회하는 사람 특유의 설렘과 놀라움이 섞여 있었을 것이다. 그 순간, 난 이미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생각지도 못한 안도감이 스쳤다. ‘마지막에 누군가는 내 목소리를 듣고 반가워해주네.’ 그렇게 허무하게 지나갈 뻔한 죽음이, 의도치 않게 조금은 인간적인 대화를 낳게 된 것이다.
그 친구는 일상의 이야기를 ‘쉽게’ 꺼냈다. 어렴풋이 카톡 창이 드문드문 떠오르며, 내게 “요즘 뭐 해? 한국에는 있는 거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점차 헤드폰을 쓴 것처럼 귀가 멍해지고, 메시지에서 한두 단어씩만 인지하는 정도였지만, 친구의 말투가 당황하거나 울먹이는 게 아니라 아주 편안하고 차분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너도 알잖아, 나도 병원 생활 오래 했지만… 어찌어찌 잘 지내고 있어. 근데 갑자기 연락이라니, 너무 반갑네.”
나는 횡설수설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친구가 내 혼란스러운 상태를 알아채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텍스트를 길게 남기려 애썼던 것 같다.
그러나 내 상태는 그리 오래 버티지 못했다. 전화 통화보다는 느슨하지만, 카톡 메시지도 점차 쓰기 힘들어졌다. 눈앞에서 키보드 자판이 흐릿해지고, 손가락이 둔해지며 오타가 자꾸 쌓였다. 그 와중에 내가 무심코 던진 말이 있었다.
“나… 오늘이 마지막이야.”
딱 그 한 줄이었다. 아마 감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건조한 문장. 그렇지만 그 말이 채 전송되자마자, 친구는 바로 되물었다. “무슨 말이야… 마지막이라니?” 난 미지근한 시선으로 휴대전화 화면을 바라봤다. 이젠 더 숨길 것도 없기에, 차분하게(?) 답했다. “나는 이제 계획대로 끝내기로 했어. 여기 서울 한복판인데, 10시쯤이면 아마 숨이 끊길 거야.”
친구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예상과 달리, 친구는 굉장히 침착한 말투였다. “알겠어, 너 지금 어디 호텔이야? 고급스러운 곳에 있다면서. 그래도 위치는 알려줄 수 있지?”
나는 몽롱한 상태에서 별 생각 없이 “○○호텔…”이라고 내뱉었다. 어차피 ‘그렇다고 찾아올 리 없을 텐데’라는 허무한 믿음이 깔려 있었고, 약 기운에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는 상태였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지푸라기 잡듯이 묻는지 몰라’라는 생각조차 들었다. 분명 이미 약을 다 삼켰으니, 손쓸 도리가 없을 거라는 자괴적 확신도 있었다.
그 뒤 몇 차례 더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사실 내용은 기억이 희미하다. 내가 쓴 문장도, 친구가 답한 문장도, 마치 스쳐 가는 그림자처럼 자꾸 흐릿해졌다. 손가락이 제대로 자판을 눌러주지 않아, 오타가 뒤섞인 문장들이 전송된 듯했고, 친구는 끊임없이 내 상태를 물으며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숨은 잘 쉬어져?” 같은 질문을 던졌던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정신은 급속도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거의 의식을 잃어가려는 순간, 호텔 방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가 댕그르르 울렸다. 고요하고 어두운 방안,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중에 들려온 벨소리는 이질적일 정도로 선명했다. 원래라면 ‘무시하고 그냥 누워 있으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겠지만, 이상하게도 그 시점에 “누가 왔나?” 싶어 문을 열어주고 싶었다.
아마도 숨이 이미 가빠지고, 의식이 희미해진 상태에서마저, 마음 한구석은 사람의 기척을 원했던 모양이다. 망설임 없이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다리가 휘청거려 벽을 짚으며 문 앞까지 갔다. 기이하게도 전혀 경계심이 들지 않았다.
문을 열자, 예상대로 호텔 직원이나 룸서비스가 아니라 경찰과 소방관들이 서 있었다. 눈에 보이는 건 반짝이는 경찰 제복, 그리고 구급대원들이 들고 있는 긴급 의료장비. 난 황당하다기보다, ‘아, 이런 식으로 이어졌구나. 내 정보가 어떻게 넘어갔지?’ 하는 망연한 감정이 먼저 들었다. 그중 한 사람이 “○○님 맞으시죠? 지금 안전 확인이 필요하다는 신고가 들어와서…”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뒤편에 다른 사람은 큰 들것 같은 걸 들고 있었고, 누군가는 휴대전화 화면을 손에 쥔 채 무엇인가 확인하며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가세요, 괜찮아요”라고 주장해볼까 하다가도, 숨이 벅차 헐떡거리는 내 모습이 거울에 비치는 걸 봤다. 정장은 그대로 입고 있었지만, 얼굴은 창백했고,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전 괜찮습니다, 응급실 같은 데 안 가도 돼요.”
몽롱한 상태지만, 한 번쯤 그 말을 내뱉었음은 확실하다. 경찰은 “혹시 약이라도 드셨어요? 호텔 측에 협조 요청이 들어와서 왔는데, 자세히 얘기 좀…” 하고 차분히 물었다. 내가 어떻게 답변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그저 한두 마디 얼버무리고, “괜찮다니까요” 정도로 마무리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내 목소리와 몸 상태가 ‘괜찮지 않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구급대원들이 “그래도 의식을 완전히 잃기 전에 빨리 이동하셔야 합니다”라며 부축해 왔고, 나는 순간적으로 “싫다, 필요 없어요”라고 고개를 저었다. “약 먹었다 해도 충분히 버틸 수 있다”며 마지막까지 황당한 설득을 했으리라. 하지만 내 말로는 설득력이 없었다. 몸이 휘청거려 벽에 다시 부딪혔고, 호흡은 점점 얕아지며 어지럼증이 휩쓸었다.
“도와드릴게요. 정신 잃으면 큰일 납니다.”
구급대원이 내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넣어 부축하는데, 누군가가 즉시 실내 조명을 더 밝히고, 내 눈앞에 손전등 같은 걸 비춰 왔다. “눈동자 반응 이상해요. 빨리 스트레처 준비하자.” 그 소리에 드디어 내가 약해졌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다리도 제대로 지탱이 안 되고, 숨을 깊게 들이쉬려 해도 가슴이 답답했다. 그렇게 별다른 저항을 못 하고, 이질적인 상황이 벌어지듯, 나는 순식간에 긴급 침대 위로 실려 갔다.
머리를 들자, 호텔 방이 아수라장이 된 듯 보였다. 경찰은 방 안을 둘러보며 뭔가를 확인하고, 한쪽 구급대원은 나에게 기본적인 체크를 하며 질문했다. “어떤 약을 얼마나 드셨나요? 기침은 괜찮으세요? 두통은요?” 나는 세세히 답할 힘이 없었다. 숨이 턱턱 막히고, 정신이 또다시 가물거렸다. 오직 희미한 의식으로, “날 살려달라고 한 적은 없는데…”라는 허무한 생각이 스쳤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적극적으로 나를 구하려 하고 있었고, 이미 나는 그 의지를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약해져 있었다. ‘이럴 거면 문 열지 말 걸 그랬나?’라고 툭 내뱉고 싶었지만, 입이 따라주지 않았다. 식어버린 버섯수프의 쓴맛이 다시 혀 위에서 되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끝내 두 눈이 스르륵 감기려 할 때, 한 경찰이 휴대전화를 들고 외쳤다. “이 전화, 혹시 아시는 분인가요? 방금까지 통화하셨다고…”
아마 내가 카톡으로 대화하던 그 친구가, 위치나 정보를 파악해 호텔 측에 연락을 넣었을 것이다. 그리고 호텔은 즉시 경찰과 구급대로 연결해, 이렇게나 신속하게 방을 찾아온 셈이었다. 한 치의 오차 없이 스스로를 끝내겠다고 믿었던 내 계획이, 이 ‘한 통의 전화’와 이어진 일련의 연쇄반응으로 뒤엎어지고 있었다.
나는 침대 위에서 고개를 떨군 채, 작은 숨을 몰아쉬었다. “괜찮다니까… 병원 안 가요.” 마지막 호언장담이었지만, 내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곧장 구급대원들이 “시간이 없어요, 더 두면 위험합니다”라며 들것에 나를 고정하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비로소 격렬하게 반항하고 싶었지만, 이미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시야가 어지럽게 흔들리며, 경찰과 소방관들의 그림자가 겹쳐 보였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장면은, 들것에 실린 채로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이었다. 호텔 복도를 따라 이동하며 보았던 복도 벽지의 문양, 고급스러운 조명이 계속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 같았다. 구급대원이 끊임없이 “잠깐만 버티세요, 곧 도착합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는데, 머릿속에선 ‘도착’이란 단어가 무의미하게 울렸다. 난 이미 여행을 끝마친 몸이었으니까.
시간이 더 흐르기 전, 나의 의식은 완전히 끊어졌다. 경찰과 구급대가 방에 들이닥치던 그 긴박한 상황이나, 내가 한 차례 맹렬하게 “안 간다”고 우겼던 장면들도 이제 희미해졌다. 어렴풋이, 휴대전화에 새겨졌던 카톡 기록이나 울고 있던 친구의 목소리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이 모든 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그저 확실한 건, 내가 완벽하다고 믿었던 죽음의 프로젝트가, 순식간에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굳이 자초하지 않아도 되는 대화가, 나를 이렇게까지 다른 길로 끌어당겼다. ‘설마 받을 리 없겠지’ 했던 메시지 하나로 인해, 한 통의 전화와 신고, 그리고 예측 불가했던 방문객들까지 나타난 셈이다. 그리고 그 변수는 내가 상상조차 못한 방식으로, 내 목숨을 붙잡고 늘어지려 하고 있었다.
분명 10분 전까지만 해도 이 방에서는 아무런 소란 없이, 계획대로 모든 게 마무리될 줄 알았다. 그러나 운명은 그 밤, 예정에 없던 변수를 가차 없이 내던졌다. 그리고 나는 한없이 나약해진 몸을 들것에 누인 채, 차가운 복도를 가로질러 긴급출구처럼 끌려 나갔다. ‘버섯수프 한 그릇’으로부터 이어진 죽음의 길이, 생각지 못한 마침표를 찍으려는 순간, 이상한 필체로 쓰인 ‘삶’이라는 낯선 각본이 내가 모르는 새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삶이 놓아주지 않는 이유는 때로 죽음보다 더 모호하다.” - 프란츠 카프카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위해]
• 자살 예방 핫라인(한국) 1393 / 정신건강 상담 전화 1577-0199
• 베트남, 호주 등 해외 거주자의 경우, 지역별 자살예방 또는 정신건강 지원 센터를 확인
• 주변에 믿을 만한 친구, 가족, 전문가에게 심정을 솔직히 털어놓길 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