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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쿠쌤 Nov 06. 2023

여왕개미, 일개미도 아닌 수개미를 생각하다

운명론이 아니라 창조론적 감수성

엄마, 문제집 푼 것 봐주세요.


평일 늦은 오후다. 초등학교 2학년 큰 아이는 하루 정해진 학습을 꾸준히 해내는 습관을 몇 달간 실천하는 중이다. 사교육에 진심인 것도, 엄격한 엄마인 것도 전혀 아니지만 루틴을 정해 매일 꾸준히 자기 일을 해내는 힘을 길러주고 싶어 시작하게 된 홈스쿨링 시간. 그날도 습관적으로 빨간펜을 들고 아이의 국어 문제집을 채점하려 답을 확인하고는 순간 멈칫했다.


창의력 문항이라 표기되어 있는 그 문제는 정확히 이랬다.

여러분이 만약 수개미라면 수개미로 태어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여러분의 생각을 선택하고 그 이유를 써 보세요


그리고 이어진 아이의 답안.


문제집 뒤의 답지속 모범답안에도 선택은 '불만스럽게'로 되어있다. 평생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다가 여왕개미와 짝짓기를 한 후 땅에 떨어져 죽는 수개미의 삶이란 번식을 위한 도구로만 비치기 쉽기 때문이리라. 문제에 해당하는 지문 자체에도 어떠한 감정이나 의견 없이 수개미에 대해 적어놨지만 왠지 측은하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문제 지문 속 수개미에 대한 내용을 참고로 올려본다. 




과연, 상식적인 판단이란 무엇일까?


만약 내가 이 문제를 접했다면, 모범답안처럼 수개미의 삶을 불쌍하리만큼 연민을 갖고 보며 불만족스럽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소위말해 상식적인 선의 판단이다. 그렇지만 아이의 답안은 그런 나의 편견과 삶에 대한 인식을 단숨에 깨버렸다. 물론 '창의력 문제'라고 적혀있기에 얼마든지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겠지만 틀에 박힌 사고를 넘기엔 한계가 있었을 것 같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문제 속 특별함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상식선에서 판단을 내리는 극히 일반적인 사람이자, 지극히 평범한 어른이므로. 물론 그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아이의 답안이 내겐 특별히 다가왔을 뿐이라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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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론이 아닌 창조론적 감수성


수개미는 여왕개미처럼 덩치도 크지 않고 혼자서 먹이를 잡지도 못한다. 게다가 여왕개미와의 결혼비행이 끝나면 그대로 죽는다. 결혼비행이 끝난 후 교접하지 못하고 살아남은 수개미들은 많은 수가 잡아먹히거나 굶어 죽기도 한다. 운이 좋게 집으로 돌아가더라도 문지기 개미가 쫓아낸다고 한다니 실로 기구한 운명이 아닐 수 없다. 


우리말 속담에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갈잎을 먹으면 죽는다'라는 말이 있다. 자기 분수, 위치 혹은 역할을 잘 알아야 한다는 의미로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고 있다. 어찌 보면 수개미의 일생을 살피며 충분히 운명론적인 발상을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아이가 떠올린 '창조론적 감수성'을 발견했다. 수개미로 태어난 것을 그저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서 만족을 찾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닌 다른 접근인 것이다. 여기서 창조론적 감수성이란 '일상생활 속에서 창조론적 요소를 민감하게 찾고 인지하는 능력'이다. 더 나아가 기독교인으로서 이러한 창조론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창조주의 위대한 계획과 희망 속에서 내가 태어난 것을 기쁘게 인정하고 나의 나됨과 목적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겠다. (좋은 나무성품학교 정의 참고)


크리스천으로 살아간다고 해서 갑자기 승승장구를 한다거나 만사가 형통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이전의 삶과 분명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나의 삶의 우선순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무엇이 가장 중요하며 의미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하며 순종하는 믿음의 삶이 되어간다고나 할까. 이런 맥락에서 창조주를 인정하고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소위 '소명'의식을 인지하는 것이 기독교적 가치관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집 속 고작 수개미 이야기가 발단이 되었지만 나는 며칠간 삶의 이유와 소명에 대한 묵상을 할 수 있어 감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아이에게 건강한 창조론적 가치관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 같아서 무척 뿌듯했다. 바라기는 아이 자신의 소명도 명확히 발견하여 목적이 이끄는 삶이 되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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