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하게 외치는 8살 아이의 목소리. 이번엔 도움 없이 혼자서 수영을 해보시겠단다. 형형색색 튜브와 구명조끼까지 풀장착해서 챙겨 와도 유아풀에서 물장구만 치다가 돌아가곤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혼자서 자유형과 배영을 시도하다니 감개무량하다.
단연코 이번 호캉스의 백미는 수영장이다. 1박 2일 막간을 이용해 급하게 잡은 가족여행인데 이틀 연속 각 3시간씩 물놀이를 즐기는 두 아이다. 아이들은 체력 회복속도도 국가대표급이라던데 이번에 제대로 증명했다.
수영을 포함해서 엄마 없이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이 커진다. 그리고 자라면서 관심사도 변한다.
장난감 정리하던 날
그래서일까? 바로 며칠 전, 그동안 아이가 아끼던 장난감을 대거 처분했다. 장난감을 정리해서 집안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야말로 깔끔쟁이인 나의 숙원사업이긴 했지만, 막상 장난감 처분을 하니 왠지 모를 서운하고 아련한 감정이 몰려왔다.
둘째이자 막내의 장난감이어서, 더는 이런 어린아이를 기를 수 없다는 사실에 서운한 마음에 그랬던 것일까? 미묘하고 알 수 없는 감정에 당황스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아이의 성장 시기별로 필요한 여러 장난감을 다 사기에는 부담스러워서 그다지 많이 구비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알뜰하게 장난감도서관도 종종 이용했었다. 하지만, 장난감 박스를 정리하니 뭐가 이다지 많은지 유물을 발굴하는 느낌이다.길어봤자 고작 6년 정도 된 장난감 컬렉션인데 시기별로 참 다양하다. 반짝 유행을 탄 장난감도 눈에 띄어 웃음이 난다. 엄마인 내가 보기엔 아직 버리기 아까운 고가의 장난감도 이제 아이는 시시한지 서슴없이 이제 필요 없다고 한다.
색이 바랬거나 낡은 정도가 심한 것은 버리고, 아직 쓸만하고 거의 사용하지 않은 장난감은 따로 분류해서 깨끗하게 닦았다. 당근마켓에 중고로 팔까도 했지만 필요한 주변 지인에게 나눔을 하기로 했다. 가장 필요한 곳에 간다고 생각하니 심심한 위로가 된다.
육아의 한 챕터가 끝나다
그럼 이제 아이는 장난감 말고 무엇에 관심이 있을까? 초1 둘째는 방과 후 수업 때 배우는 큐브블록과 바둑, 그리고 모터 달린 로봇 만들기에 부쩍 관심이 생겼다. (아이의 새로운 관심사 덕분에 생긴 나의 취미에 관한 이야기는 '밤마다 큐브 퍼즐을 맞추는 엄마'를 참고하시길)
비용면에서 아주 가성비 좋은 선택임엔 틀림없다. 게다가 놀면서 창의력도 발달하고 두뇌훈련도 된다고 하니 어찌 아니 좋을 소냐.
아이의 의식주에 온 신경을 쓰며 오감발달을 위해 각종 전문서적과 교육법을 찾아다니던 유아유치기가 지나며 육아의 한 챕터가 끝난 시원섭섭한 느낌이란! 이제는 부모로서 또 다른 차원의 낯선 상황들과 마주하게 되겠지. 그리곤 아이는 언젠가는 엄마의 손길을 거부하며 방황하는 사춘기를 겪기도 할 것이다.
수영장에서 엄마 손을 놓으라고 소리치던 너, 이제 공룡과 자동차 장난감과는 쿨한 굿바이를 하던 아이를 보니이 모든 게 나를 조금씩 떠나는 것 같다. 돌이켜보니 내 뱃속에서 아이가 나올 때부터 조금씩 나를 떠나는 연습을 하나보다. 사실 연습이 필요한 건 아이보다 엄마인 내가 아닐까 싶다. 언젠간 내 품을 완전히 떠나 독립적인 멋진 어른이 되겠지. 코끌 찡한 일이다. 고작 아이의 장난감 정리를 하다가 이런 감상을 한다는게 지나친 비약일까.
너의 앞날을 함께할 우리를 응원해
장난감이 비워진 공간에 아이의 다른 물건이 채워지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시간이 흘러갈 것이고 아이는 자라날 것이다. 더이상 내 품에 안겨만 있는 아이는 아니지만 엄마의 손길과 기도가 여전히 필요할 테고 나는 아이의 든든한 지원자로 곁을 지켜내리라 다짐을 해본다. 자녀를 맡은 청지기의 마음으로 내게 주어진 선물같은 이 시간들을 잘 지키며 누리길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