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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이구 Oct 23. 2024

인간의 기준

신에게 묻습니다. 신뢰는 죄가 됩니까?

신에게 묻습니다. 무저항은 죄가 됩니까?

神に問う。無抵抗は罪なりや?


1948년, 잡지 <전망>에 연재된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 인간실격의 문장입니다.

직역하면, "신에게 묻습니다. 무저항은 죄가 됩니까?"이 되지만 번역본에 따라서 무저항이 신뢰로 번역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신뢰(혹은 무저항)는 죄가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는 일명 '신뢰의 천재' 요시코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요시코는 말 그대로 신뢰의 천재, 순수한 그녀는 어떤 사람이던지 그들의 말을 덥석 믿어버리기도 하고 낯선 사람이라도 경계를 하지 않고 자신의 집에 들이기도 합니다.


요조는 요시코의 이러한 순수한 신뢰에 빠져 그녀와 결혼하게 됩니다.


나름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내던 중, 요시코는 요조에게 일거리를 가져다주는 상인에게 강간을 당하게 됩니다. 요시코가 그 상인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그 뒤로 요시코의 순수한 신뢰는 더럽혀졌고 남편의 눈치를 보며 살게 됩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유부녀가 겁탈당한 것은 남편이 용서해주어야 하는 '죄'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조는 이것이 요시코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이 용서를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요시코는 남편이 자신을 용서해주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눈치를 보며 살게 됩니다.


그리고 요조는 외치게 됩니다.


신에게 묻습니다. 신뢰는 죄가 됩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요시코의 신뢰는 죄가 아니라고 대답할 겁니다. 요조도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요시코에게 "너한테는 죄가 없어"라고 말했을 겁니다. 그런데 왜 요조는 신뢰가 죄가 되는지 신에게 물은 걸까요? 


요시코가 강간당하기 전 요조는 자신의 친구 호리키와 반의어 찾기 게임을 합니다. 호리키는 죄의 반대말이 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요조는 그것에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렇다면 죄를 지은 사람이 벌을 받는 것이고, 반대로 벌 받은 사람은 전부 죄를 지은 사람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시코의 신뢰는 분명 죄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요시코는 벌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강간당했고, 그걸로도 모자라 계속 남편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합니다. 


신에게 묻습니다. 신뢰는 죄가 됩니까? 는 사실

신에게 묻습니다. 왜 죄 없는 요리코에게 벌을 내렸습니까?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조의 물음은 허무주의적인 절망입니다.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지나가다가 벼락 맞을 확률은 악인의 것과 똑같습니다. 열심히 살아도 병에 걸리면 죽고, 나태하게 살아도 로또 당첨되면 떵떵거리며 사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요조는 이런 잔혹한 세상의 진실을 깨닫고 절망에 빠집니다. 술을 마시고 괴팍해지고 결국은 약에 의존을 하다가 정신병원에 입원합니다. 그리곤 최종적으로 인간실격 선고를 받습니다. 무엇이 요조를 인간실격을 당하게 만들었을까요? 술? 절망? 약?


자,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요리코는 상인에게 겁탈을 당하고 있습니다. 요조의 친구 호리키가 이를 먼저 발견하고 다급히 요조를 불러옵니다. 요조는 요리코가 겁탈당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럼 당연히 달려가 상인으로부터 아내를 지켜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요조는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술을 마십니다. 그리고 웁니다.


요조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가지고 싶은 것 없느냐?"라는 물음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닌 아버지가 원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려줍니다. 나중에는 자살기도한 요조에게 넙치의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고 학교를 다니라는 제안도 거절합니다. 


요조는 자신의 앞 길을 자신이 선택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삶에 저항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결정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아내가 겁탈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적극적으로 상황을 바꾸려는 의지가 전혀 없습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자신의 존재를 문제 삼을 수 있는 존재라고 정의합니다. 자신이 다르게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인간입니다. 동물은 그러지 않습니다. 자신의 본능대로, 주어진 환경대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인간의 본질은 실존하는 인간이 결정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현재에 저항하는 존재입니다. 주어진 환경에, 유전자에, 본능에 저항하여 자신이 원하는 미래의 가능성을 꿈꾸고 그대로 살아가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하지만 요조의 인생은 무저항 그 자체입니다. 아무것도 선택하지도 않고 주어진 상황에서 관성적으로 움직입니다. 그가 인간실격을 당한 이유입니다.



신에게 묻습니다. 무저항은 죄가 됩니까?

神に問う。無抵抗は罪なりや?


신뢰는 죄가 아니지만 무저항은 죄가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허무주의적 세상에 절망하고 그 상황에 관성적으로 살아가고 계시진 않은가요? 


허무주의적인 세상에서 순수한 요리코는 상인에게 겁탈당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요? 현재에 저항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방으로 올라가 술을 마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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