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31 댓글 3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다운 게 뭔데!

타인은 지옥이다

by 이다이구 Mar 22. 2025
아래로

타인은 지옥이다.

L'enfer, c'est les autres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문장입니다. 우리에게는 드라마 혹은 웹툰 제목으로 잘 알려진 문장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인가요? 조금 당황스러운 질문입니다. "나는 나지!"라고 대답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정말 그런가요?


착한 딸, 속 썩이는 아들, 재미있는 친구, 점잖은 옆집 아저씨, 인사성 밝은 청년, 부담스러운 직장 상사, 마음에 안 드는 후임, 나쁜 사람, 착한 사람이지는 않나요?


"뭐 그렇다고 해도 그게 나지!"라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착한 아들 딸, 속 썩이는 아들 딸이 되는 것이 여러분에게 달려있나요? 아닙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효도를 해도 부모님이 속 썩이는 자식이라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불효를 저질러도 부모님이 착한 자식이라고 생각하면 여러분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존재는 여러분이 아닌 온전히 타인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혹시 처음에 제가 "여러분은 누구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어? 내가 누구지?"라며 고민하진 않았나요?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한 일입니다. 내가 누군지 내가 모른다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의 부모님에게 누군가 다가와서 여러분을 가리키며 "저 사람 누구야?"라고 물었다고 생각해 보는 겁니다.


 "어~ 내 아들/딸이야".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바로 나오게 될 겁니다. "우리 회사 OOO 대리야." "매일 오는 단골손님이야." "옆집에 사는 아저씨야." "내 10년 지기 친구야." "내 전여자 친구/남자 친구."이야 "나랑 같은 반친구야." "매주 이 시간대에 오셔서 운동하시는 회원님이야." 누구에게 물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희한한 일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나만 모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다들 각자만의 기준으로 여러분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실 인간은 규정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실존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가능성의 존재입니다. 오늘 착한 사람이 되었다가 내일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무례한 사람이지만 10초 뒤에는 친절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사물이 아닙니다. 의자는 만들어진 순간부터 망가지는 순간까지 쭉 의자로 규정되지만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타인은 우리를 규정합니다. 우리의 가능성을 없애버립니다. 아들, 친구, 남자 친구, 대리, 회원, 단골손님으로 규정합니다. 그 순간 우리는 사물처럼 됩니다. 아들인 우리는 아들로서 행동해야 하며 그 외의 행동을 하면 큰일이 납니다. 친구인 우리는 친구로서 행동해야 하며 그 외의 행동을 하면 큰일이 납니다. "기대"로 우리를 규정하고 "실망"으로 위협하며 우리를 묶어두는 겁니다.


사르트르를 이러한 규정들이 우리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타인은 지옥이다.

L'enfer, c'est les autres

물론 자식 된 도리를 다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아니고 친구의 의리를 저버리라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하지만 타인에게서 우리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으려 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우리 안에 있지 남들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능성의 존재입니다. 실존적 존재입니다. 우리는 규정되지 않는 존재입니다. 오직 사물만이 그 존재가 규정됩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기대에 굳이 맞춰 살 필요도 없음을 이야기합니다. 물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좋은 사람" 무엇인지는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 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규정하는 "좋은 사람"에 굳이 나 자신을 맞출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 존재가 어디에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는 문장입니다.


타인은 지옥이다.

L'enfer, c'est les autres




수, 토 연재
이전 27화 시비 걸렸을 때 가장 좋은 대응 방법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