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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가 당신을 걷어찼다고 해서 당신도 당나귀를 발로 차겠는가?

by 이다이구 Mar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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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가 당신을 걷어찼다고 해서 당신도 당나귀를 발로 차겠는가?


흔히 세계 4대 성인이라고 하면 공자, 예수, 부처, 그리고 소크라테스를 이야기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세상에 아주 큰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 말고도 하나가 더 있습니다. 바로 자신 본인들은 책을 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제자가 대신 그들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도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저 위의 대사가 나온 이야기도 그러합니다. 어느 날 소크라테스가 길을 지나가고 있는데 한 청년이 갑자기 소크라테스를 때리고 도망갔다고 합니다. 누구는 욕을 했다고 하기도 하고, 발길질을 했다고도 하고, 누구는 막대기로 소크라테스의 어깨를 때렸다고도 합니다. 아무튼 소크라테스가 갑자기 모르는 사람에게 봉변을 당한 것은 확실합니다. 이에 제자가 "찾아가서 고소를 합시다!" 혹은 "왜 그냥 맞고만 계십니까?" 하고 따졌다거나, "따라가서 똑같이 때리고 오십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당나귀가 당신을 걷어찼다고 해서 당신도 당나귀를 발로 차겠는가? 혹은

당나귀가 나를 걷어찼다고 해서 나도 당나귀를 발로 차야하나? 혹은

당나귀가 나를 걷어찼다고 해서 내가 화를 내어야 하는가? 혹은

당나귀가 나를 걷어찼다고 해서 내가 그 당나귀를 상대로 소송을 해야겠는가?라고 말입니다.


굳이 당나귀를 똑같이 걷어찼다고 해서 나에게 오는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당나귀를 상대로 소송까지 한다며 오히려 내 꼴이 더 우스워집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제자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역시 선생님! 멋있습니다! 지당하신 말이죠!"라고 했을 것입니다. 애초에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거랑 이건 다르죠!"라고 했다면 이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것은 과연 이 같은 상황과 이야기를 현대인에게 한다면 어떨까?입니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나도 걷어차야죠!" "당나귀는 몰라도 그 주인이라도 찾아서 소송을 걸어야죠!" 하진 않을까요?


현대인들이 동물에 대한 감수성이 고대 그리스인들보다 낮기 때문일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현대인들에게는 내 감정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내 감정이 상했으니 뭐라도 해서 보상을 받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나귀 같은 사람에게 갑자기 봉변을 당하면 우리는 똑같이 화를 내거나,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얼어붙거나, 아니면 집에 돌아와서 "어떻게든 보복할걸!"하고 후회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우리의 감정이 소중하기 때문에 우리는 "초연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당나귀 같은 사람에게 봉변을 당했을 때 멋지게 한마디 해주고 사이다 같은 결말을 맞이하는 이야기는 오직 드라마에서만 존재합니다. 대부분, 아무리 우리가 그 자리에서 난리를 피워도 분이 다 가시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는 당나귀 두 명으로 보일 겁니다.


개가 짖는다고 맞서 짖으며 개 두 마리가 되는 것입니다. 당나귀가 걷어 찾다고 똑같이 걷어차면 똑같이 당나귀가 되는 것입니다. 개에게 짖는다고 내 놀란 가슴이 진정되는 것이 아니고, 당나귀를 걷어찬다고 내가 맞은 곳이 괜찮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주 높은 확률로 그 개가 더욱 흥분해서 당신에게 덤벼들 거고, 당나귀가 화가 나서 당신을 한번 더 걷어찰 겁니다.


여러분의 감정이 당나귀를 다시 걷어찬다고 해서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 당나귀가 그냥 가만히 맞고만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가만히 맞고만 있어도 오히려 더 짜증이 날 겁니다. 뭘 어떻게 해도 감정은 더욱 상하고 분해질 겁니다.


용서가 힘들면, 이해라도, 이해도 힘드면, 그냥 무시라도, 무시마저도 힘들면 그냥 참는 것이 상책입니다. 병아리가 여러분의 발을 쫀다고 해서 그 병아리를 밟아 죽이진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병아리에 비해 아주 거대하고 강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우리에 비해 병아리는 너무나 연약한 존재입니다.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자신이 받은 피해에 아랑곳 하지 않는 것은 위대한 정신의 징표다. 상대를 복수할 가치도 없는 존재로 보는 것이야말로 상대에 대한 가장 모욕적인 복수다.


내면이 강한 사람, 위대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당나귀의 걷어참에도 태연하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당나귀가 당신을 걷어찼다고 해서 당신도 당나귀를 발로 차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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