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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이구 Mar 26. 2024

마음 밑바닥을 두드리면 어쩐지 슬픈 소리가 난다

먼 나라에 나 혼자

"캐나다로 유학 가볼래?"


질문 하나에 큰 짐가방을 들고 비행기에 올라타 먼 나라로 슝 날아갔다. 얼마나 멀었던 걸까? 수 천년, 아니 수 만 년간 그 존재도 알지 못했던 대륙이다. 아는 친구도, 가족도, 친척도 없는 곳에 17살이었던 난, 3개월간의 짧은 준비 후 콜럼버스처럼 신대륙을 향해 새로운 인생을 찾으러 떠났다.


작은 방, 아니 내 방은 그나마 큰 편이었다. 집에 비하면 말이다. 10걸음만 걸어도 이 쪽 벽에서 저 쪽 벽 끝까지 닿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집이었다. 필리핀에서 온 이민자가 운영하는 홈스테이였다. 동남아 음식을 잘 못 먹는 탓에 몸무게가 48kg까지 빠지게 되었다. 키는 한 172cm 되었으려나.


3개월. 침묵의 3개월. 학교에 갔다가 집에 돌아온다. 침대에 누워있다가 잠에 든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입에서 단내가 나는지 쓴 내가 나는지 입구멍을 열 질 않아 맡아볼 기회도 없다.


침대에 누워 한국어가 나오는 라디오를 들으며 가만히 누워있었다. 가만히. 고요히. 시체보다 가만히. 미라보다 건조하게. 말라죽어가는 나의 영혼에 간신히 연결된 생명유지장치 같은 라디오 덕에 간신히 숨만 껄떡거리고 있었다.


놀랍게도 힘들다는 생각도, 고통스럽다는 생각도,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신을 원망하기도, 사람을 저주하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히 있었다. 무생물에 가까웠다. 



내 앞에 반에 반쯤 돌아가있는 네 개의 바퀴가 달린 검은 의자. 자신의 무게보다 훨씬 무거운 사람들이 가차 없이 깔고 앉아버린다. 심지어는 몸을 쭉 뒤로 뻗어 의자의 허리를 꺾기도 한다. 그럼에도 의자는 가만히 서있다. 누군가는 그런 의자를 존경하기도 한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미덕을 의자로부터 배운다. 내 생각은 전혀 다르다. 의자는 아무 생각이 없다. 무시무시한 중량의 살덩어리가 짓눌러도 그저 가만히. 그래. 당시 나의 영혼의 상태는 의자의 것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침묵의 3개월 이후, 나의 삶은 어느 정도 정상범주에 도달했다. 어눌한 영어로 이것저것 조잘조잘 말하기 시작했고 친구들도 몇 생겼다. 여자친구도 사귀었다. 나는 괜찮았다. 모든 것이 순탄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침묵의 3개월은 무의식 바다 띄어져 넘실넘실 망각의 수평선으로 사라졌다.


12월, 크리스마스 방학을 맞이해 2주간 한국에서의 휴가를 즐기게 되었다. 어디서 얻게 되었는지 내 손에 한 소설책이 들려있다. 언제, 어디서, 왜 그 책이 내 손에 들려있는지 기억에 전혀 없다. 앞뒤가 끊긴 필름처럼 그냥 그렇게 기억 속의 내 손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생겼다.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은 분명하다. 왜 하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였는지는 불분명하다. 딱히 고양이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나쓰메 소세키가 누군지도 몰랐다. 이때보다 어린 시절, 만화 삼국지를 읽었던 그 둥지 소파에 앉아 책을 읽었다.


이게 뭔 소리인가. 한 문장도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애초에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읽은 책이라곤 만화 삼국지뿐, 이렇게 긴 문학책을 읽은 경험이 없었다. 느릿느릿한 속도로 천천히 몇 번이고 곱씹으면서 시간을 썼다. 언뜻 기억나는 것은 그 감각을 그저 순수히 즐겼던 고등학생이다. 무슨 말인지 몰라도 그 안에서 왜인지 모를 부드러운 위로를 받았다.


기억나는 것은 별로 없다. 무슨 내용이었는지도 솔직히 기억을 못 한다. 아니, 아직까지도 이해를 못 했을 수도 있다. 다만, 한 문장은 깨끗하게 기억한다.


마음 밑바닥을 두드리면 어쩐지 슬픈 소리가 난다.



흐릿한 수평선으로부터 작은 나무배가 파도를 뛰어넘어 다가왔다. 그 안에 17살 소년이 몸을 웅크리고 누워있다. 라디오를 들으며, 들숨, 날숨. 천천히 내뱉는 부스러진 공기에 인상이 찌푸려지는 외로움이 담겨있다. 너무 불쾌한 모습에 나무배에 실어 무의식 바다로 보내버린 모습. 어느 순간 손에 들여진 소설책 한 문장에 신대륙에서 조선땅까지 순식간에 날아왔다.


망각의 수평선으로 넘어간 캐나다의 첫 3개월 간의 기억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 뒤 좋은 부분만을 기억했다. 누군가는 나에게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환경에서도 잘 살아왔고 버텼으니 강한 사람이라고 했다. 전혀 아니다. 의자처럼. 아무런 감각도, 의지도, 생각도, 기억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버틴 것이다. 아니, 그냥 그 자리에 존재한 것이다. 


그렇게 천하태평하게 있는 나에게 저 한 문장이 나의 마음 밑바닥을 두드렸다. 둥둥둥. 어쩐지 슬픈 소리가 났다. 그때 나의 영혼이 울었다. 슬픈 울음이 아니었다. 마치 아이가 태어날 때 우렁차게 울어대듯, 나의 영혼이 힘찬 생명의 힘을 얻음을 세상에 알리는 울음소리였다.


"미안해, 다신 너를 보내지 않을게"


나무배에 실려온 소년에게 손을 내밀어 의식의 땅으로 데려왔다. 그리곤 그 순간을 기억하기로 했다. 한 문장에 하마터면 영원히 무의식에 표류할뻔한 소년이 구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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