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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취 Mar 11. 2022

산불은 남 일인 줄 알았는데


 엄마가 조카들과 오고 있다. 피난이다. 매캐하고 자욱한 연기로부터 도망치고 있다.  



'까톡' 가족 단체 톡방에 사진이 올라왔다.


 

 회색빛 구름이 산 바로 위에 떠있다. 모양이 멋져서 찍어 보냈나. 한쪽에는 푸른 하늘이 반대편엔 회색빛 하늘이 반으로 가른 양 나뉘어 있다. 여름에 놀러 갔던 구수곡 쪽에 산불이  났다고 했다. 차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 계곡 따라 휴양림이 있어 휴가 철마다 클릭 전쟁을 하는 곳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과 멀지 않으니 뭐 금방 진화되겠지.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울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대. 얼른 연락해봐."

올케 인스타에 들어갔더니 아파트 바로 뒷산이 타고 있는 사진이 보인다. 이미 몇 시간 전에 올린 사진. 좀 떨어져 있던 불이 가까운 산까지 내려왔다고. 통신이 끊어졌다 연결됐다가 오락가락한다고 했다. 대피하라고 방송이 나오고 도로에는 사람들이 황급히 도망간다 했다.



 깜짝 놀라 엄마에게 전화하니 온 가족이 강원도로 대피하고 있었다. 동생이 잠깐 밖에 나왔다가 대피하는 사람들을 보고 집으로 뛰어왔. 장롱면허인 올케는 동생 없이 움직일 수 없다. 집에는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연년생 아기 둘과 동생 부부를 도와주러 내려 엄마가 있었. 부리나케 짐을 싸서 차를 탔다.  대피하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산불로 도로가 통제되었고, 통신도 중간에 계속 끊껴 긴급 전화밖엔 되지 않았다. 돌아 돌아 물어물어 펜션에 도착했다. 이재민이라고 더 신경 써주는 펜션 주인 덕에 마음은 따뜻해졌지만 이 다 탈까 걱정돼서 잠을 자지 못했.



 

불길은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강한 바람을 따라 강원도 삼척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강한 바람을 따라 다시 울진으로 남하했다. 피해는 컸다. 지역 사람들과 공유하는 단톡방에는 주인이 대피하다 미처 데리고 가지 못한 동물들이 우리에 갇혀 타 죽은 사진들이 올라왔다. 집이 타 오갈 곳 없는 이재민 수는 점점 늘어났다. 코로나 확산세가 가장 심한 시기에 체육관에만 백여 명이 모였다. 



 동생은 울진에 있는 한수원에 근무한다. 원자력발전소에 붙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돌아가면서 직원들이 비상근무에 돌입했다. 동생은 새벽 2시~6시 근무를 배정됐다. 가족들을 펜션에 두고 혼자 울진으로 다시 돌아갔다. 서울로 아기들을 데리고 가는 게 낫지 않을까. 동해에만 가도 2시간 47분이면 서울에 도착하는 ktx가 있다. 고민하던 중 ktx가 운행이 중지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강릉 옥계에서 시작된 또 다른 산불이 동해에까지 번진 것이다. 몇 시간 후 집으로 간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다행히 소방관분들의 투혼로 집은 타지 않았고, 원자력 발전소도 바깥에 있던 설비에 살짝 불이 붙었었지만 금방 진화하여 일은 없었다고 했다. 주불은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였지만, 집 근처 산불은 소강된 상태였다. 가족들은 펜션에서 이틀 묵고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간 울진은 까맣게 그으르고 탄내가 진동했다. 바깥의 풍경은 검게 그을려 황량함 그 자체였다. 안도 타지 않았을 뿐 커튼, 이불 곳곳에 냄새가 진동했다. 집 안의 공기 청정기는 393을 가리켰다. 쉼 없이 윙하고 돌아갔다. 물을 틀어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 불 끌 물이 부족하여 정수장 물을 이용해야 했다. 주변 호수 물도 끌어다 쓰는데 그걸로 모자라 바닥을 보였. 공기청정기를 풀로 틀고  에어컨 청정 기능을 켜고 베개에 벤 매캐한 냄새를 맡으며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 밖을 보니 바로 앞이 잘 안 보일 정도로 뿌옇다. 미세먼지 어플은 검은색 방독면이 최악임을 알리고 있었다. 덤덤하게 대처하던 엄마는 연기로 앞이 보이지 않자 바 내게 전화를 했다.


올라가야 할 것 같아. 더 이상 아기들을  여기에 둘 수 없어.




 우리는 한나절 후에 만났다.  트렁크를 든 엄마와 올케, 조카들. 이제 말문이 트인 조카는 내게 말했다. 사니 불에 타떠. 불에 다 타떠. 그저 막내는 방긋방긋 웃으며 우리 집 여기저기를 탐색한다. 엄마와 올케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래도 무사히 잘 왔다는 엄마. 이사한 지 3주밖에 안 되는 우리 집. 집들이 온 김 치자고 했다. 밥을 먹고 씻었다. 올케는 씻고 입었던 옷을 다시 입자 탄내가 다고 했다. 냄새가 따라왔다. 울진에 남아 소방대원들에게 부족한 수건, 물품들을 갖다주고 근처 불이 나면 집에 있는 소화기로 끄는 사람들이 있어  빠져나온 것이 미안하다고 했다. 그분들은 매캐한 연기를 며칠째 계속 마셔 목이 따갑고 아프다고 했다.



 동생네 갈 때 들렸던 덕구 온천. 물이 정말 좋아 목욕한 번만 해도 살결이 부드러워졌는데. 주변이 다 탔다고 한다. 다행히 리조트 건물은 타지 않았다고. 근방에 좋아하던 백숙집, 두툼한 파전과 고소한 모두부. 방이 있어 아기들과 가기 좋았는데. 그분들은 무사한가. 괜찮나. 울진의 자랑이자 보물인 200년이 넘은 금강송들이 타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뉴스로 나오기 시작했다. 목재가 단단하고 아름다워 문화재 복구에 주로 쓰이는 소나무다. 금강송 군락지는 일반인 출입도 통제해가며 애지중지 보호하는 곳이다. 거기에 자라는 송이를 채취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산세가 험하고 워낙 오지이다 보니까 소방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 태반이라 헬기로 밖엔 불을 끌 수 없다. 바람은 또 왜 이렇게 강한지. 불이 자꾸 옮겨간다. 하루하루 애가 탔다.




 불이 처음 났다고 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조카들은 엄마 집으로 갔다. 아기들의 걷고 뛰는 소리가 매트를 깔아도 아랫집으로 울리는 모양이다. 피난 시작 이후 벌써 세 번째 다른 집으로 옮겨야 하지만 그게 아기들도 맘껏 걷고 나을 것 같다. 불은 아직 진화되지 못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생하는 사람들도 일주일째다. 어제까지 불에 탄 면적만 대략 2만 ha. 여의도 면적에 68배란다. 전문 소방인력을 비롯해 군인들도 진화에 나섰다. 이미 투입된 헬기만 82대. 거기에 미군헬기 4대가 더 투입된다고 했다. 체육관에  모여있던 이재민들 몇 명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며칠 전 덕구온천 리조트로 이재민들이 희망 여부를 물어 옮겨 갈 수 있게 했다. 오미크론 확산 방지에도 투병생활에도 훨씬  나을 것이다.




 오늘로 산불 9일째다. 아직 불은 진화되지 못했다. 역대 최장기간, 최대 규모 산불이란다. 불을 끄기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시는 분들의 노고가 너무 크다. 내일 예보된 대로 봄비가 재로 뒤덮힌 땅을 촉촉히 적셔주길 간절히 바란다. 다들 집으로 돌아가 지친 몸을 뉘일 수 있길 기도한다. 올케와 조카들은 돌아가는 기차표를 샀다가 취소했다. 첫째 조카가 열이 40도까지 올랐다. 설마했는데,  아니길 바랐는데 소아과에서 받은 신속항원검사에서 코로나 양성판정을 받았다. 집으가는 날이 일주일 미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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