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이취 Jan 10. 2023

학교 안 갈래

초등교사맘의 육아휴직

까똑 혹시 학교 갈 때 연필 챙겨줬어요?

까똑 안내장에 적힌 준비물 파일 빼고는 다 챙겼는데~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 나는 다음 주까지 준비하라 적혀있길래 안 챙겼죠. 근데 연필이 없어서 울었다고 그러네요. 아 속상해요.



 옆동 언니한테 연락이 왔다. 반에 연필을 안 가져온 애가 몇 명 더 있었는데 다른 애들은 선생님께 손들어서 얘기했는데 혼자만 뻘쭘하게 다가 엉엉 울어버린 거 같다고. 유치원과 달리 초등학교는 30명 남짓 되는 아이들이 각자 자리에 앉아 있다. 자기 물건을 어느 정도 챙겨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사표현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내성적인 아이라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배우려고 학교에 가는 거니까.

 


 3월 한 달 초등학교 적응기간을 시작했다. 9시 등교 12시 40분 하교. 그동안 등원은 남편 몫이었기 때문에 아이가 어떻게 가는지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아빠가 씻는 동안 만화를 보다 대충 아침을 먹고 가는 것 같았다. 만화를 보며 밥을 먹는 게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른 척했다. 

이제 내가 싹 고쳐주게쓰~

 그런데 이게 웬걸 아이는 8시 40분에 눈을 떴다. 9시에 1교시 시작인데? 일어나 옷만 입고 간다 해도 겨우겨우 9시 도착이었다. 그 시간에 가면 수업 준비는 어떻게 한담? 일찍 재우고 일찍 깨우려 해도 아이는 세상모르고 잤다. 이미 몸에 박힌 신체 시계였다. 늦게 일어나 바쁘게 학교에 가려니 부담스러웠나. 며칠 후 엄마는 학교에 안 가는데 왜 자기만 가냐 하며 학교를 안 간다고 하기 시작했다. 눈을 뜨자마자 하는 첫마디


 "학교 안 갈래"  

옷장 앞에서도 "학교 안 갈래"... 처음 몇 번은 학교 앞에 가면 바짝 얼어 들어가더니 점점 교문 앞에서도 학교를 안 간다고 하기 시작했다. 매일 반복되는 상황에 교문앞에서 아이들 등교를 도와주는 배움터 지킴이 선생님이 우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애처롭게 보는 시선... 아..  학교 가는 게 이렇게 싫은 거라니. 갑자기 예전 수업시간에 진실 게임 중 학교가 폭파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한 아이가 떠올랐다. 원래 그런 거구나. 다음에 그런 얘기를 들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온 아이들을 무한 칭찬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아이에게 학교 가는 습관을 만들어 줘야 한다. 어른들도 회사 가기 싫지만 가지 않나. 해야 하는 건 하는 거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다. 이걸 말해봤자 이해할 수 없으니 학교 장점을 생각나는 대로 쭉쭉 나열하기 시작했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도 만날 수 있고 재밌는 것도 배울 수 있고 맛있는 점심도 먹을 수 있지. 함께 살아가는 법과 우리가 사는 사회에 대해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줘."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다음 날은 교문앞에서 심하게 등교 거부를 해 교실 앞까지 같이 갔다. 이미 수업은 시작했다. 그때 옆반에 늦고도 당당히 들어가는 한 아이.

 "저거봐 저거봐 괜찮은 거야 저 친구처럼 들어가보자."


아이는 고개를 계속 절레절레 흔들고 내 손을 꽉잡고 밖으로 이끌었다. 결국 선생님이 나오셨고 아이는 교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아... 뭐가 문제일까...  생각해보면 어린이집이고 유치원이고 적응이 제일 느리다고 한 아이였다. 여전히 새로운 상황에 불안함을 많이 느끼나 보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격려해주고 기다려주는 거밖엔 없다. 아이가 힘들어해도  문제가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흔들리지 않고 그러려니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얘는 왜 이러지' 불안해하면 가뜩이나 힘든 애를 부축이는 꼴이 될 테니까. 되든 말든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 최대한 일찍 깨우고 묵묵히 손을 붙자고 정해진 시간에 꾸준히 학교에 갔다. 1년 후 지금 아이는 겨울방학 중이라 방과 후만 하러 학교에 가는데 스스로 확인하고 10분 전에 들어간다. 나는 집 현관에서 인사를 한다. 장족의 발전이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면 아침을 보낸 흔적으로 집안은 난장판이었다. 청소기가 돌아갈 수 있게 대충 치운 후 소파에 털썩 앉으면 거실 창으로 눈부신 햇빛이 얼굴에 드리워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순간 살짝 불안감이 엄습했다. 뭔가를 하지 않고 앉아 있어도 되나? 그래도 되나? 자꾸 자신에게 물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일하고 아이 보고 집안일하고 책 읽고 했을 때 몸에 남은 습관이었다. 스스로 대답했다.

"그래도 되지."


입꼬리근육이 씰룩거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입학을 축하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