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이취 Jan 14. 2023

4월이 얼른 오면 좋겠어

3월 적응기간

 3월 둘째 주 아이의 방과후 수업이 시작되었다. 연달아 수업이 2개 있는 목요일 4시 40분에 아이를 정문에서 만난다. 크하 자...유시간?




 1월 초 학교 돌봄교실 추첨에서 떨어졌다.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하나. 1학년 하교는 1시, 퇴근하고 브레이크 안 밟고 달려오면 5시 . 교실에서 아이들 간 다툼이라도 생겨 상담을 하다 보면 이마저도 시간을 지키기 어려울 텐데... 몇 년 전 어린이집 버스가 하원시간에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다 오지 않자 다시 원으로 돌아간 적이 있었다. 어린이집 문 앞에서 엉엉 울던 아이를 마주했다. 미안하고 서글펐.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할게..."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은 생기기 마련.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비슷한 일이 있었다. 원래 육아휴직을 6개월 하고 복직하려 마음먹었는데 돌봄에 아이를 맡길 수 없게  고민하다 1년 휴직을 결정했다. 주변에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내게 돌봄은 의미가 컸다.


 


 2월 중순 방과후 신청 안내장이 앱 알리미를 통해 발송되었다. 축구, 농구, 컴퓨터, 마술, 미술, 요리, 바둑, 탁구, 영어, 클레이 등등 얼핏 봐도 재밌어 보이는 게 많았다. 컴퓨터는 꼭 시키고 싶었다. 전에 가르쳤던 학생이 수업시간에 코딩으로 뚝딱 게임을 만들어 냈다. 혼자 속성으로 배워 겨우겨우 가르치던 내게  실력은 엄청나 보였다. (내가 대학다닐 때만 해도 코딩은 수업 내용에 없었다.) 비결을 물어보니 몇 년간 방과 후로 컴퓨터강좌에서 코딩수업을 들었다고 했다. '아이가 학교에 가면 학교 방과후에서 꼭 듣게 해야지.' 생각했다.


"이거 봐바. 어떤 수업 들을까? 듣고 싶은 거 다 골라봐"  


 아예 신청하지 않겠다는 아이를 잘 설득해 6개를 골랐다. 게임을 할 수도 있다는 말로 꼬셔 '컴퓨터' 넣었다. 그런데 오 마이갓! 방과후도 추첨이네? 또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선생님들은 추첨 영상을 보내왔다. 태어나서 이벤트 당첨 운이 나쁜 편이 아니었다. 중학생 연예인보러 <SBS 인기가요> 방청을 갔다가 행운권 추첨으로 10만 원 상당 문화상품권을 받은 적이 있었다. 결혼할  카드사에서 주최하는 웨딩파티서 1등에 뽑혀 스튜디오 사진도 찍었다. 물론 화장과 드레스도 포함이었다. 진심 결혼식  보다 이날 받은 화장과 입었던 웨딩드레스가 더 고급스럽고 예뻤다.




 이때 운을 다 썼던 것일까? 결과는 6개 중 단 1개 당첨.... 내 손은 왜 이리 똥손일까. 그나마 다행인 건 예전부터 아이가 배우고 싶어 하던 탁구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 인터넷으로 탁구채를 주문했다. 옆동 언니는 몇 개에 당첨이 됐으려나. 궁금해하던 중 연락이 왔다.


 나 지금 모든 방과 후 선생님한테 연락해서 빈자리 찾아 채워 넣고 있어. 8개 완성했지~

 

 그렇게 해도 되는구나. 나도 부랴부랴 연락해서 탁구 뒤에 정원이 다 차지 않은 바둑수업을 붙였다. 그러자 일주일 중 하루, 방과후 수업이 있는 날은 하교 시간이 4시 40분까지 늦춰졌다. 주변을 돌아보니 돌봄에 떨어진 맞벌이 가정들은 대부분  방과후를 10개 가까이 신청해 스케줄을 세팅하고 있었다. 이후 태권도, 미술학원 등을 등록해서 퇴근시간까지 시간을 맞췄다.  나름 방법이 있구나. 갑자기 많은 시간을 새로운 곳에서 보내야 해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안쓰럽지만...




 어느덧 등교를 시작했다. 학교 정문 앞에서 급식순서가 빠른 날은 12 30분, 늦은 날은 50분쯤 만났다. 12시가 조금 넘으면 학교 앞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와 다같이 입구만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월드컵 경기 후 국가대표 축구단을 공항 귀국장에서 기자들이 기다리는 느낌?눈빠져라 쳐다보다보면 아이가 나왔다. 정문 앞에 계신 야구르트 판매원분께 샤인머스캣맛 야구르트를 사서 입에 빨대를 물고 함께 놀이터에 갔다. 그네도 타고 미끄럼틀을 타고 또래로 보이는 애들에게 말을 붙이고.... 많은 것을 했다.  여전히 해는 중천에 떠있지. 점점 방과후가 시작하는 둘째주 목요일이 기다려졌다.




 3월은 5교시가 없는 적응기간이라 4교시 정규수업이 끝난 시각부터 방과후 수업이 시작하는 1시 50분까진 한 시간 정도가 떴다. 아이를 정문 앞에서 만나 놀이터에 갔다가 다시 학교에 데려다주며 말했다. "탁구 수업은 2층 체육관이고, 바둑 수업은 3층 컴퓨터실이야. 잘 찾아갈 수 있겠지?" 3월에 복도에서 길 잃고 방황하는 1학년 학생들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모르겠으면 주변에 보이는 선생님들한테 여쭤봐. 데려다주실 거야. 수업 끝나고 엄마랑 여기서 만나는 거다. 잊지 말고 여기로 와."




  3시간 후, 아이는 정문 앞에 앉아있는 내게 터벅터벅 걸어와 바둑은 안 다니고 싶다고 취소해 달라고 했다. 일 학년, 정말 간단해 보이는 제시간에 등교하기도, 하교 후 장소를 정해 만나는 것도, 방과후 교실을 찾아가는 것도, 다양한 선생님에 적응하는 것도 뭐하나 쉬운 게 없다. 이번엔 뭐가 문제려나.  선생님이 무섭고 계속 앉아 있는게 힘들어. 무작정 그만두고 싶단다. 바둑 선생님에게 전화해 상담을 해봐야겠다. 에효 기대에 부풀었던 4시 40분까지 혼자 뭐 할지 계획 세우는 건 한 달이 지나고 벚꽃이 팝콘처럼 피는 4월이 되서야 될랑가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학교 안 갈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