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나는 다음 주까지 준비하라 적혀있길래 안 챙겼죠. 근데 연필이 없어서 울었다고 그러네요. 아 속상해요.
옆동 언니한테 연락이 왔다. 반에연필을 안 가져온 애가 몇 명 더 있었는데 다른 애들은 선생님께 손들어서 얘기했는데 혼자만 뻘쭘하게있다가 엉엉 울어버린 거 같다고.유치원과달리 초등학교는 30명 남짓 되는 아이들이 각자 자리에 앉아 있다. 자기 물건을 어느 정도챙겨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사표현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내성적인 아이라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배우려고 학교에 가는 거니까.
3월 한 달 초등학교 적응기간을 시작했다.9시 등교 12시 40분 하교. 그동안 등원은 남편 몫이었기 때문에 아이가 어떻게 가는지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아빠가 씻는동안 만화를 보다 대충 아침을 먹고 가는 것 같았다. 만화를 보며 밥을 먹는 게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모른 척했다.
이제 내가 싹 고쳐주게쓰~
그런데 이게 웬걸 아이는 8시 40분에 눈을 떴다. 9시에 1교시 시작인데? 일어나 옷만 입고 간다 해도 겨우겨우 9시 도착이었다. 그 시간에 가면 수업 준비는 어떻게 한담? 일찍 재우고 일찍 깨우려 해도 아이는 세상모르고 잤다. 이미 몸에 박힌 신체 시계였다. 늦게 일어나 바쁘게 학교에 가려니 부담스러웠나. 며칠 후 엄마는 학교에 안 가는데 왜 자기만 가냐 하며 학교를 안 간다고 하기 시작했다. 눈을 뜨자마자 하는 첫마디
"학교 안 갈래"
옷장 앞에서도"학교 안 갈래"...처음 몇 번은 학교 앞에 가면 바짝 얼어 들어가더니 점점 교문 앞에서도 학교를 안 간다고 하기 시작했다. 매일 반복되는 상황에교문앞에서 아이들 등교를 도와주는배움터 지킴이 선생님이 우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애처롭게 보는 시선... 아.. 학교 가는 게 이렇게 싫은 거라니. 갑자기 예전 수업시간에 진실 게임 중 학교가 폭파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한 아이가 떠올랐다. 원래 그런 거구나. 다음에 그런 얘기를 들으면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온 아이들을 무한 칭찬해줘야겠다고생각했다.
어쨌든 아이에게 학교 가는 습관을 만들어줘야 한다. 어른들도 회사 가기 싫지만 가지 않나. 해야 하는 건 하는 거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다. 이걸 말해봤자 이해할 수 없으니학교 장점을 생각나는 대로 쭉쭉 나열하기 시작했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도 만날 수 있고 재밌는 것도 배울 수 있고 맛있는 점심도 먹을 수 있지. 함께 살아가는 법과 우리가 사는 사회에 대해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줘."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다음 날은 교문앞에서 심하게 등교 거부를 해 교실 앞까지 같이 갔다. 이미 수업은 시작했다. 그때 옆반에 늦고도 당당히 들어가는 한 아이.
"저거봐 저거봐 괜찮은 거야 저 친구처럼 들어가보자."
아이는 고개를 계속 절레절레 흔들고 내 손을 꽉잡고 밖으로 이끌었다.결국선생님이 나오셨고 아이는 교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아... 뭐가 문제일까... 생각해보면 어린이집이고 유치원이고 늘 적응이 제일 느리다고 한 아이였다. 여전히 새로운 상황에 불안함을 많이 느끼나 보다.
지금 할 수있는 건 격려해주고 기다려주는 거밖엔없다. 아이가 힘들어해도 큰문제가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흔들리지 않고 그러려니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얘는 왜 이러지' 불안해하면 가뜩이나 힘든 애를 부축이는 꼴이 될 테니까. 되든 말든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최대한 일찍 깨우고묵묵히 손을 붙자고 정해진 시간에 꾸준히 학교에갔다. 1년 후 지금 아이는 겨울방학 중이라 방과 후만 하러 학교에 가는데 스스로 확인하고 10분 전에 들어간다. 나는 집 현관에서 인사를 한다. 장족의 발전이다.
아이를학교에데려다주고 오면 아침을 보낸 흔적으로 집안은 난장판이었다. 청소기가 돌아갈 수 있게 대충 치운 후 소파에 털썩 앉으면 거실 창으로 눈부신 햇빛이 얼굴에 드리워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그 순간 살짝 불안감이 엄습했다. 뭔가를 하지 않고 앉아 있어도 되나? 그래도 되나? 자꾸 자신에게 물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일하고 아이 보고 집안일하고 책 읽고 했을 때 몸에 남은 습관이었다. 스스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