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이취 Jul 16. 2021

우리는 자라고(잘하고) 있어요

오후 2시. 온라인 플랫폼에 아이들이 제출한 과제와 영상 청취율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과제 현황을 눌렀다. 아이들 이름 옆에 과제 제출 여부가 표시되어 있다. 과제를 냈다는 파란색 표시를 눈으로 따라가다 빨간색 엑스에서 멈춘다. 이미 오전 10시, 12시에도 학습을 시작하라고 연락을 했는데. 여전히 빨간색. 다시 문자를 보낸다. ‘오늘 제출하지 않은 과제는 내일 등교해서 다 하고 갑니다.’ 설마 애들이 남는 거 제일 싫어하는 데 안 할까. 다음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역시나 올라온 건 없다.




문 앞에서 어떻게 아이를 맞이 해야 할까? 선생님과의 약속을 안 지켜서 화가 났다는 표정을 보여줄까? 그래도 학교 왔는데 웃는 얼굴로 맞이 해야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동안 아이가 책가방을 매고 걸어온다. 어색한 표정. 눈을 보지 않는다. 아직은 아니다. 서로를 알아갈 시간이 필요하다.

"안녕. 5층 걸어 올라오느라 고생했어." 

"안녕하세요. "

인사를 하고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수업을 마치고 점심 먹으려고 줄을 서는데 한 아이가 말한다.

“선생님 얘 작년에 1년 동안 한 과제가 총 5개래요.”

5개면 보통 하루에 있는 과제 개수다. 작년에 아이를 가르쳤던 선생님에게 물으니 원격 수업을 거의 듣지 않았다고 했다. 학교에 와서도 학습 활동을 어렵다고 하며 잘 안 했다고 했다.  아버지와 통화를 하아이가 어렸을 때 방황을 많이 해 지금 잘 커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했다. 핸드폰 게임을 많이 하는 걸 알고 있지만 잔소리는 하지 않으신다고. 흠. 나는 아이를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아이는 작년부터 원격 수업시간에 학습을 하지 않는 게 이미 습관이 돼버렸다. 그렇다고 올해도 그냥 둘 순 없다. 정해진 시간에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먼저 하고 그다음 다른 걸 해야 한단 걸 가르쳐야 한다. 교실에서 보니 작년처럼 학습활동을 아예 안 하지는 않는다. "몰라요" 하며 가만히 있긴 하지만 옆에 가서 설명해주면 나름 꼼꼼히 문제를 해결한다. 말을 걸면 자기 이야기도 잘한다. 올해만 핸드폰을 세 번 바꿨다고 했다. 아이쿠야.

      



 학교에 오면 다들 이렇게 잘하는데. 집에 가면 잘 안되지? 스스로 학습을 하기  위해선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이  필요해. 근데 이건 쉽게 길러지지 않아. 어른들도 잘 안 되는 경우가 많거든. 규칙적인 습관으로 어느 정도 몸에 배어 있어야 해. 스스로 원격학습을 완벽하게 하는 게 어렵다면 우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학습을 시작하는 것부터 하면되. 온라인 학습 3일, 혼자 해보고 잘 안되면 학교에 와서 선생님이랑 하자. 선생님은 너희의 성장을 도와주기 위해 여기 있는 거니까 매일 조금이라도 꾸준히 학습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줄게.  대신 너희가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면 언제든지 집에서 해도 돼. 너희가 판단하고 조절하는 거야.”     




 그렇게 우리 반에는 원격학습 날도 학교에 와서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 3명이 생겼다. 아이들은 서로 다른 이유로 학교에 왔다. 학교에 오면 성공이었다. 집에서는 연락도 잘 받지 않던 아이들이 학교에선 스스로 해야 하는 분량을 챙겨 다 하고 돌아갔다. 학습이 빨리 끝난 날은 보드게임도 하고 갔다. 작년에 전학을 와서 늘 혼자 있던 다른 아이에겐 친구가 생겼다.

  



 스승의 날. 자기 주변을 둘러보고 스승이라 생각되는 사람에게 편지 쓰는 것을 과제로 냈다. 학교에 온 아이들은 내 책상 위에 살포시 편지를 올려놓았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올해 선생님을 만나서 너무 기뻐요. 제가 선생님 화나게 해도 그게 진심이 아닌 걸 알아주세요. 그리고 올해 잘 지내요.’

짧은 문장을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계속 곱씹었. 과제를 안 한다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내가 화가 났던 걸 아이는 아는 걸. 혼자 있는 집에서 놀고 싶어  것이었을 뿐 선생님을 화나게 하려는 게 아녔다고 아이는 말하고 있었다. 선생님과 잘 지내고 싶다고도 다. 마음을 표현해 준 아이에게 무척 고마웠고 아이를 이해할 수 있어 기뻤다.



 편지의 감동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는 학교에 늦게 오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아예 오지 않았다. 연락도 받지 않고 줌 수업도 들어오지 않았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친한 친구에게 연락하니 오후에 같이 자전거를 탔다고 했다. 다시 시작인가. 등교날 아이는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에 왔다. 뭐했냐고 물어보니 아팠다고 했다. 연락을 왜 안 받았냐고 하니 몰랐다고 했다.

"그럼 선생님 문자는 확인했어?"

"..."

"답장이 없어 선생님이 걱정했어. 무슨 일이 있으면 다음에는 꼭 선생님에게 연락을 해줘." 

"네."  

아이와 어느 정도 관계가 생긴줄 알았.  전화를 받지 않다니.. 실망했다. 무시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 선생님이다. 내 연락을 받으면 과제를 하겠다는 대답을 해야만 한다. 공부를 하지 않으려면 연락을 안 받아야 한다. 대답했다가 지키지 않음 더 혼난다. 지금은 뒤로 물러설 때. 아이에 대한 기대가 독이 된다. 스스로 힘을 기를 때까지 조금 기다려 주는 게 필요하나보다. 관심을 거두고 뒤로 물러나 기다렸다.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을 몇 번 더 반복하고 아이는 이틀은 학교에 오고 하루는 집에서 하겠다고 말했다.

"당연히 그래도 되지. 스스로 하는 힘을 키우는 거니까 직접 정한 대로 조절하면서 해보자."  




6월에는 아이들이 구강검진을 받는 달이었다. 일찍이 부모님과 치과를 다녀온 아이들도 있었지만, 말일이 다가와도  계획을 잡지 않은 아이들도 있었다. 

너희끼리 학교 끝나고 구강검진 가는 건 어때? 선생님 생각에 갈 수 있을 거 같은데” 

“좋아요. 평일은 안되니까 토요일에 만날게요” 

교실 멤버들은 편한 시간대에 약속을 잡았고 다음 주에 모두 결과지를 제출했다. 




2주 후. 동네 팥빙수 가게에 방문한 사람은 모두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지역 문자가 왔다.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저희 구강검진받고 거기 갔었어요"

정말? 그럼 코로나 검사받아야겠다.” 

“제가 친구들에게 이야기할게요.”

“선생님이 부모님들하고 통화해볼게”

눈앞이 깜깜했다. 전화를 해보니 지금 바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가 어렵다고 하셨다. 선별 검사소는 거리가 좀 있는데. 아이들 처음 겪는 상황이라 무서울 수 있는데. 내가 데리고 가야 하나.   아이 유치원 하원 시간인데.. 그러다 한 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저희 지금 바로 만나기로 했어요. 저희끼리 검사받으러 갈 거예요." 




 다음날 오전 9시. 아이들이 모두 음성 결과를 받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스스로 자기 할 일을 못한다 했던 아이들은 용감하고 침착하게 선별 진료소를 찾아가 검사를 받았다. 요즘 애들이 문제라고 하지만, 나라에 위기가 오면 이 아이들이 나와 앞장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독립운동, 민주화 시위 현장에는 우리 반 아이들  나이와 같은 13세 학생들이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에서 아이들은 전염의 위험을 알고 즉각적으로 대처했다. 그날 다 같이 만난 줌 화면에서 나는 쌍 엄지를 치켜세웠고 아이들은 환하게 웃으며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우리 반에 불어닥친 일은 코로나19 4차 유행의 서막이었다. 며칠 뒤 작년에 이어 다시 전면 원격이 시작되었다. 불과 방학이 2주일 남짓 남았. 오늘도 아이 이름 옆 빨간 엑스가 보인다. 아이들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과제 다 해야 줌 나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혼을 일주일 앞둔 너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