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태어나 30년간 살았다. 중학생 때부터 우리집엔 차가 없어 엄마는 걸어서 10분 이내면 지하철역에 갈 수 있는 곳으로 집을 구했다. 역세권은 근처에 버스정류장도, 지나가는 버스도 많았다. 덕분에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신촌, 광화문, 강남 등을 자유롭게 쏘다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은 대학에 가기 전 2달 동안 자동차 면허를 딴다고 했다.
"엄마가 면허는 이렇게 시간 있을 때 따놓는 게 좋대."
"서울 시내는 대중교통이 더 빨라. 난 나중에 딸래." 집에도 차가 없는데 내게 차가 생길 일은 전무했다. 언제 탈 지도 모르는 차를 위해 백만원가량 되는 학원비를 부모님께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대학교에 가니 자기 차를 운전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아빠가 뽑아줬어. "
처음 차를 끌고 오는 날엔 강의동 앞 주차장에 동기들이 다 같이 몰려가서 구경을 했다. 남자애들은 차종을 말하며 가격을 기준으로 줄 세웠다. 나는 BMW. 버스(Bus), 메트로(Metro), 걷기(Walking)가 최고야. 혼자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지하철 타러 갈 땐 친구 차를 얻어 탔다.
졸업을 하고 첫 발령지가 의정부였다. 우리 집에선 너어무 먼 곳, 1시간 40분 남짓이 걸렸다. 왕복 3시간이 넘는 거리. 오 마이 갓. 출근시간에 맞춰 가려면 늦어도 오전 6시 50분에 나와야 했다. 하아. 어떻게 다니지. 신규교사 연수에서 만난 전 남친은 발령 소식을 듣고 내게 차를 끌라고 조언해 주었다. 내부순환도로, 의정부 ic 어쩌구. 쓴웃음만 지었다. 대학시절 내내 만나고 내가 운전면허조차 없다는 걸 모르나. 차를 살 형편이 안된다는 걸 모르나. 내 앞에서 열심히 길을 찾아주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정말 내겐 영혼 없는 조언이었다. 뒤쪽에서 현 여친 눈빛을 느끼며 "내가 알아볼게"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2년. 왕복 3시간이 좀 넘는 출퇴근을 가까스로 견뎌내고 부천으로 직장을 옮겼다. 그 사이 내 옆에는 착한 남자 친구가 있었다. 나에게도 그에게도 차는 없었다. 우린 지하철역에서 만났고 우리집 문 앞에서 헤어졌다. 그는 군대 장교 출신이어서 운전을 했다고, 할 줄 안다고 했다.
"그래? 그럼 우리 쏘카로 차 빌려서 데이트하자. "
남자 친구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기다렸다. 약속된 시간은 30분이 훌쩍 지났다. 그냥 가야 하나 하는 순간 저 멀리서 경차 한대가 내 쪽으로 와서 섰다. 옆자리에 앉아 "왜 이리 늦었어?" 하는 순간 차는 덜컹 거리며 멈췄다. 내 몸은 대시보드에 꽝 부딪혔다. 오잉? 승차감이 너무 안좋은데? 그제야 하는 남자 친구의 고백. "나 사실 차 가끔 몰았었어. 그리고 안 한 지 2년 넘었어. " 위에 있던 손잡이를 두손으로 꽉 움켜 잡았다.
1년 후 우리는 결혼을 했다. 아기가 바로 찾아왔다. 입덧은 나날로 심해졌다. 집에서 역에 가기 위해선 시장을 가로질러 가야 했다. 시장은 파는 물건만큼이나 다양한 냄새의 집합소였다. 생닭을 파는 곳에선 차갑고 샬짝 비릿한 냄새. 국수집 앞에서는 북어를 오래 끓여 구수한 냄새. 구운 김을 파는 곳에선 고소한 기름내. 예전엔 나를 유혹하던 냄새들이 그렇게 구역질 날 수가 없었다. 남편을 꼬셨다. 우리 각자 축의금 받은 돈 합치고 몇 달 월급 모으면 차 살 수 있을 거야. 그 길로 동네 차 대리점에 갔고 바로 계약을 했다. SM3, 옵션은 카탈로그 맨 위에서 하나 아래. 거의 옵션이 없는 차였다. 하지만 내게는 첫차. 그것도 스스로 모은 돈으로 구입한 자랑스러운 차. 우리 아기를 편히 데리고 다닐 수 있는 차였다. 아기 태명인 조조에서 본따 '카조'라고 이름을 붙였다. 다이소에서 'Baby in car'라고 쓰여있는 스티커를 사 뒷 유리에 붙였다.
옆반 선생님 차도 sm3였다.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었다. "선생님. 저랑 차 똑같아요. 작년에 샀어요."
"그래? 나는 십 년 탔어. 이거 고속도로 가면 엄청 많잖아. 그래서 서민 3호라고 불리지. 하하."
"네? 서민 3호?"
카조가 서민 3호라니. 갑자기 초라하게 느껴졌다.
남편은 초보였다. 게다가 후방카메라가 없었다. 주차 실수를 거듭하며 차에 흠집이 생겼다. 그가 운전에 적응이 됐을 때 내가 면허를 땄다. 마트에 갔다. 그날따라 주차공간이 없었다. 돌다 돌다 이중 주차된 차 사이로 빈 공간이 보였다. 야무지게 들어갔는데 공간이 살짝 부족했다. 다시 나와야 하는데 뒤에는 기다리는 차들이 줄지어 있었다.
"띠 띠 띠 띠띠 띠띠 띠띠띠띠띠띠 띠이이이이이잉 퍽"
긴장한 마음에 무리하게 주차하다 그대로 박았다. 그 이후로도 남편과 나는 번갈아가며 차에 흔적을 남겼다. 주로 주차된 상황에서 일이 생겨 사람이 다치는 일이 없었던 건 정말 다행이었지만 카조는 점점 헌 차가 되고 있었다.
아기가 태어나고 뒷좌석에 카시트를 설치하고 아기를 태웠다. 카시트가 천으로 3면을 둘러싸는 식이다 보니 아기는 봄, 여름, 가을 땀을 흠뻑 흘렸다. 옵션에서 뒷좌석 에어컨을 선택하지 않은 탓이었다. 서비스로 받은 틴팅은 열차단율이 낮아 여름이면 에어컨이 바로 나오는 앞자리도 더웠다. 같이 받은 블랙박스도 성능이 떨어져 주차 중 뺑소니 문콕을 당해도 남아있는 기록이 없었다. 무력감을 느낄 수록 카조는 마음에서 멀어졌다. 그러자 점점 세차하는 주기가 길어졌다. 트렁크에는 캠핑용품부터 세차용품까지 정리하지 않은 상태로 꽉 찼다. 뒷자석은 아이가 먹고 흘린 과자부스러기, 장난감, 흙 모래 등으로 뒤덮혔다.
그렇게 7년, 벼르고 별러 전기차를 구입했다. BMW족에서 시작한 내가 '차는 필수품이지'가 되고. '차는 이동수단일 뿐 기본 사양만 있음 되지' 하던 내가 '옵션은 많을수록 좋지.'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세차를 한 후 바르려고 물왁스도 주문했다. 물왁스는 차에겐 로션이라고 세차 후 발라주면 흠집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책자를 읽고 유튜브 영상을 찾아 본다. 새 차에는 카조의 흠집들이 마음에 걸려 PPF 필름을 남편과 셀프로 붙였다. 기포를 헤라로 밀고 있는데 남편의 한숨이 들려온다.
"하기싫구나?"
"그냥 좀 힘드네. 여보는?"
"난 얘를 사랑하나봐. 아껴주는 거 같아 좋아."
7년간 서툰 운전에 온갖 수난을 당하며 여기저기로 데려다주던 카조였는데. 사랑이 변했다. 아니 사람이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