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한 달 살기 2일 차
제주도 한 달 살기 2일 차의 기록
청보리로 유명한 가파도를 갔다.
겨울에 접어드는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일 테지만,
그냥 ‘가파도’라는 이름이 마음에 끌렸다.
가파도, 가고프다........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언어유희에 그냥 마음이, 그곳에 가야 할 것만 같다고 결정한 것이다.
보통 2시간 이면 다 돌아본다고는 하지만
천천히, 느긋이 둘러볼 생각에 3시간 20분 텀의
왕복 배 티켓을 예약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키 작은 섬. 가파도.
우리나라 섬 중 가장 평평하고 평탄해서,
자전거를 타기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우선 자전거를 빌리기로 했다.
자전거를 탈 때 면,
나는 아빠도 엄마도 아닌 언니가 떠오른다.
흔들거리는 자전거의 중심을 잡는 법을 가르쳐주고,
그 흔들거림을 잡아주신 건 부모님의 역할이 컷 겠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두 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 건
다 언니를 향한 질투심 때문이었다.
두 살 터울의 언니는 일명 골목대장이었다.
다소 까무잡잡하고 통통한 체형을 가진 나와는 달리
뽀얀 피부에 투명한 갈색 빛을 띠는 ‘독수리 눈동자’를 가진 언니는
그 어여쁜 얼굴만으로도 사람을 따르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았다.
언니 덕분에, 아니 언니 때문에.
나는 초등학교에 올라가면 누구나 반장이 되는 줄 알았고.
체육대회에서 계주를 해서 팀을 승리를 이끄는 역할을
‘나도 당연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언니는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도 알아주는 ‘재능’을 가진
학생으로 명성이 자자했고 결국 예중 진학을 준비하기도 했다.
유년 시절엔
그런 언니의 그늘에 가려 산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언니의 동생이란 것이 자랑스러웠고,
‘네가 00이 동생이구나?’ 란 질문에 괜히 어깨를 한 번 더
활짝 열어젖히곤 하였다.
아마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그랬던 것 같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첫 반장선거에서 단 한 표차로 낙선한 순간을
기점으로 나는 언니와 나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바보 같은 나는 반장선거 기표 종이에 내 이름이 아닌
‘김민정’이라는 친구의 이름을 적었고,
그 단 한 표 차로 친구가 반장에 당선됐다.
억울하고, 창피했다.
내 이름을 적을걸. 왜 아무도 내게 자기 이름을
적어도 된다는 걸 이야기해주지 않았지?
나도 ‘당연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의 좌절감이란...................
‘나는 언니보다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
그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피아노도, 미술도, 심지어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검도도.
나는 늘 언니보다 한걸음도 아닌 꼭 두세 걸음씩 뒤쳐졌다.
언니는 학원을 갈 때면 늘 두 발 자전거를 휘휘 저으며
동네를 누볐다.
그 모습이 못 내 부러웠고,
자전거 위에 올라타 다리를 펴고 폐달 위에 섰을 때
한참을 우러러봐야만 하는 그 모습이 평소보다 배는 커 보였다.
“나도 두 발 자전거 타고 싶어!!”
원래 막내딸은 부모님 눈엔 뭘 해도 불안한 법이다.
조금, 천천히 배우라는.
언니도 두 발 자전거 타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는 엄마 아빠의
설득 아닌 설득이 이어졌지만
싫어 싫어. 알려줘. 나도 두 발 자전거 탈거야!!!!! 를 외친 끝에
겨우 겨우 2발 자전거 뒤에 달려 있던 작은 보조 바퀴 두 개를
떼어 낼 수 있었다.
아파트 옆 공원 산책길을 따라 덜덜덜 떨며 자전거를 배웠다.
아빠가 손을 놓아주시고 겨우 두세 번 정도 페달을 움직였을 뿐인데
이내 철퍼덕 넘어졌다. 종아리가 긁히고, 손 바닥에 잘잘한 상처가 났다.
그 날 밤 얼얼함에 혼자 얼마나 끙끙 앐았는지.
하지만 아픈 것보다는 창피함이 더 컸다.
왜 나는 언니처럼 멋지게 타지 못할까.
기를 쓰고 자전거 중심 잡는 법을 익히겠다고
자전거 위에 올랐다.
당시 아파트 앞 주차장 줄을 기준 삼아 앞으로 똑바로 나아가는 연습을 했다.
요즘에야 아파트 주차장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꽤 위험한 일 같지만,
당시엔 아파트 주차장 칸 하나하나가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주차선 한 칸 한 칸마다 분필로 그려 넣은 다양한 모양의
땅따먹기나 사방치기가 그려져 있었다.
베란다 창문을 통해 엄마들은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았고
밥 먹을 시간이 되면 “밥 먹자!!”라고 고개를 내밀고 외치곤 했다.
뉘엿뉘엿 해 질 녘이 되어서 아이들이 다 빠져나간 후에야
주차장은 본분을 찾았다.
아무튼, 나는 계속해서 주차장 3칸을 채 넘어가지 못해
중심을 잃고 넘어졌고, '왜 앞으로 똑바로 안 나가는 거지?'
또 누가 볼 새라 후다닥 일어났다.
“엄마 얘 넘어져도 바로바로 일어나!”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언니는 신기한 듯 외쳤다.
그 웃음기 어린 목소리엔
왜 저걸 못하지? 라는 약간의 조롱이 뒤섞여 있다고,
생각했었다.
남의 말을 '고깝게' 듣는 것. 말을 문장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비꼬아 듣는 못난 버릇이 그 때 부터 시작 된 듯 하다.
딱히 승부욕이나 끈기도 없어서
뭘 해도 어설픈 사람이었던 내가.
자전거 하나 잘 타 보겠다고 무릎팍이 다 깨지는
무려 유혈 사태를 감수 했다.
결국, 자유롭게 두 발 자전거를 굴릴 수 있게 되었을 때
엄마는 종종 “애가 넘어져도 벌떡! 벌떡! 잘 일어서더라고” 라며
나의 끈기를 칭찬하곤 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언니가 두 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 나이보다
1살 어린 나이에 나는 두 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됐다.
두 발 자전거 타기는
내 기억 속에 있는 내 생에 첫 질투였고
첫 승부욕이 발휘된 순간이다.
아무도 몰랐겠지만,
내가 처음으로 언니와의 승부에서
이겼다며 속으로 100:1 쯤의 카운팅을 한 날이기도 했다.
누군가에겐 이동수단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운동기구 일 뿐일 텐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자전거면 보면
철없던 질투와 승부욕이 떠오른다.
고요함 속에 힘차게 페달을 밟아 가파도를 누비며,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라 가엾어졌다.
왜 그렇게 기를 쓰고 빨리 자전거를 타고 싶어 했을까.
낮은 자존감에 꼭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던 못난이.
그런 못난이가 이제는 씩씩하게 혼자
여행을 떠나와 사색을 즐기고 그 시절의 나를
위로할 수 있게 됐다니.
지금의 나는 이렇게 자전거를 잘 타는 걸?
어쩌면 그때 그렇게 애쓰지 않았어도
좀 더 나이가 들면, 언니 나이가 되면 저절로
자전거를 잘 타게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잊고 있었던 기억들을 새삼 떠올리고,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제주도 여행 2일 차,
자전거와 함께
그 시절의 나를 토닥토닥 안아주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테라스 분위기에 끌려
먹게 된 청보리 아이스크림.
혼자 왔냐고 물어보시던 주인아주머니는,
“ 아이고~ 혼자 왔으면 밥 먹는 게 퍽 고생이지!”
라며 사람 좋게 말을 건네 오셨다.
가파도는 1인 식사 고객을 잘 안 받아주는 데다가,
정식 메뉴들이 13000원 정도 하니
여간 비싼 게 아니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말이 해물라면이지 그냥 짬뽕이라며 라면집을 강력 추천해주셨는데..
아쉽게도 시간이 모자라 방문하지 못했다.
먹고 올걸, 못 내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다시 한번 가파도에 갈 이유가 있어서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청보리로 섬이 파랗게 물드는 날 다시 한번 가파도에 가고 싶다.
<정보>
가파도 가는 배는 운진항에서 탑승한다.
인터넷을 통해 사전 예약을 할 경우
1,000원 할인받을 수 있다.
도착까지 소요시간 약 10분.
성인 기준 편도 6,100 (왕복 시 12,100원)
해상공원 입장료 1,000
총 13,100원
자전거의 경우 대여 시간 상관없이
1인용 자전거 5,000원. 2인용 10,000원
한 달 동안 제주도에 머물면서 떠오른 생각들,
여행일지들을 기록합니다.
한 달 살기를 지켜보고 싶으시다면 구독과 라이킷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