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지 못하는, 사랑할 수도 없는.
아빠의 아버지. 우리 할아버지는 전형적인 옛날 분이다. 요즘이야 많이 사라졌다지만 여전히 아들이 최고인 그런 옛날 분. 세 아들 중 차남인 우리 아버지는 장남이 집안의 기둥이라는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 그 당시 인서울이 가능한 성적에도 대학을 가지 못하셨다고 하셨다.
당연히 딸만 낳은 둘째 며느리인 우리 어머니는 '시'자 소리에 참 많이도 우셨다. 어머니는 4남매 중 늦둥이 막내 딸로 태어나 집안의 온갖 이쁨을 받고 자라셨는데 20대 중반에 시집 가서 처음으로 그런 대접을 받아보셨을 거다. 어릴적 나와 동생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지 않던 부모님.. 하지만 명절만 되면 아빠에게 설움을 토해내는 엄마를 보는 게 일상이었다. 시댁만 가면 아들 없는 설움을 크게 느끼셨던 것 같다.
우리 어머니는 '시'자 소리에 참 많이도 우셨다
난 지금도 할아버지는 손녀들에게 애정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겨우 한살 많은 사촌오빠에게 용돈을 더 주시는 건 불만이 없었다. 명절날 친가에 방문해도 할아버지는 나와 동생을 반가워하거나 안아주신 적이 없고 머리카락 떨어진다고 매번 궁시렁하신다. 할아버지의 그런 행동이 어린 맘에 상처였고 스트레스였다. 뭐, 내 돌잔치에도 안 오셨다는 얘길 들었을때 '역시나'라는 생각마저 들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줄 알았지만 한참 어린 사촌동생에게도 별반 다르지 않으셨다.
신기하게도 30년간의 세월 동안 할아버지와는 좋은 기억 한 조각조차도 없다. 그렇다고 머리를 쥐어 박거나 욕을 하시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부모님과 할아버지와의 갈등도 당사자가 아닌 나까지 나쁜 맘을 먹을 생각이 없다. 상처가 아닌 건 아니라도. 다만 할아버지에게서 그냥 아무 애정을 느낄 수 없었고 어느덧 그저 불편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할아버지 앞에서 난 사랑 받을 수 없는 존재였고 자연스럽게 살가운 손녀 역할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할아버지'와 '손녀'라는 관계는 변함이 없었고 그게 가장 불편했다. 어릴적에는 여자애라고 껴주지도 않던 명절 차례에 요근래 들어서 "여자들도 절 하라"는 말씀 때문에 따르고 있는데 그조차도 어색할 뿐이다.
할아버지와는 좋은 기억 한 조각조차도 없다
부모님은 그렇게 상처 받으시면서도 '도리'라는 단어를 말하며 할아버지와의 관계를 유지 중이다. 도리... 자식된 도리... 가족이라는 게 참 묘하다. 친구나 애인 관계는 한쪽에서만 노력하면 결국 깨지기 마련인데 가족 관계는 그렇지 않다. 한쪽만 애쓰고 다른 한쪽은 평생 그 사실을 모르기도 한다. 애쓰는 한쪽이 내 부모님이라는 사실이 마음 아프다.
어머니는 눈가가 짓무르도록 울어놓고 할아버지 생신, 시댁 제사를 다 챙긴다. 그러고서 또 할아버지가 나와 동생을 홀대하면 또 우신다. 아버지는 세 식구에게 상처를 주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다 알면서도 부모의, 형제의 사랑을 갈구한다. 그걸 30년간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얼마나 스트레스일지 아실까?
가족이란 게 뭘까.
사랑하기엔 상처가 여전하고
미워하기엔 피를 나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