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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귄 Mar 03. 2021

Set 01. 노래방♪

영어 한 줄, 경찰 한 줄

우리 가족들은 모두가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한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밴드 보컬을 하셨고 어머니도 못지 않게 노래를 잘 부르신다. 동생도 학창시절 합창부 담당 교사가 탐을 낼 만큼 좋은 목소리를 가졌다. 나는 노래를 잘 부르진 않지만 참 좋아한다. 덕분에 아주 꼬맹이 시절부터 가족끼리 노래방을 자주 가곤 했다. 주말 저녁 부모님과 외식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누군가 아쉽다는 말을 하면 노래방을 가서 열심히 놀았다.


# 내 인생 첫 영어 "I love you"


요즘은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들도 영어를 하는 시대지만, 내가 어릴때만 해도 한글을 못 떼고 입학하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당연히 A, B, C도 제대로 몰랐던 내가 처음으로 영어가 있는 가요를 부르게 됐다. 바로 차태현의 <I love you>라는 곡이다.


슈가맨에 출연하셨던데... 벌써 세월이 이렇게ㅠ


2001년도에 발매된 곡이니 아마도 초등학교 2~3학년 때인 걸로 예상한다. 이전까지 동요나 만화 주제곡, 혹은 트로트를 줄곧 열창했던 나에게 이 곡은 새로운 스타일의 노래였다. 게다가 어린 맘에 영어가 들어가 있는 노래를 부른다는 게 여간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른들의 노래 같은 느낌? 지금이야 음방에서 영어가 안 들어가 있는 노래를 찾기가 더 어렵지만.


비록 청소년기에 접어들던 시기에 원더걸스가 등장해 나 역시 아이돌 음악을 소비하게 되었지만 추억의 노래방 18번은 여전히 <I love you>다. 탑골가요라고 해도.


어린 맘에 영어가 들어가 있는 노래를 부른다는 게
여간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노래 부르다가 경찰차 탄 썰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 동네에 작은 오락실이 있었다. 흥이 많은 우리 가족은 오락실 한 켠에 있는 노래방 부스도 자주 이용했었다. 우리 지역에서는 오래방(오락실+노래방)이라고 불렀는데 요즘 코노(코인 노래방)라고 부르는 그것이었다.


그날도 가족끼리 외식한 뒤 밝은 대낮에 집에만 있기 아쉬워서 몇 천원을 쥐고 다같이 오락실로 향했다. 노래방 부스 규모가 작은 탓에 부모님 하나, 동생과 나 하나 따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 3명이 문을 벌컥 열더니 노래방 기계에 쌓아놨던 동전을 가져갔다. 말 한마디 남기고. "이거 가져간다."


당황한 것도 잠시, 나도 모르게 손이 먼저 나갔다.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내 손은 그 여학생의 뒷덜미를 잡았다. (머리채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고 바로 옆 부스에 있던 부모님을 불렀다. "이 언니들이 돈 훔쳐 가요!" 깜짝 놀란 여학생은 날 떨어트리려고 발버둥치다가 내 뺨을 내려치고 말았다. 안경을 끼고 있던 난 떨어진 안경을 보고서 말했다. "엄마, 나 맞았어."


깜짝 놀란 여학생은 날 떨어트리려고
발버둥치다가 내 뺨을 내려치고 말았다.



결국 우리 부모님과 오락실 주인이 학생 3명을 붙잡아 두고 경찰까지 소환됐다. 그 학생들 입장에서 사실 몇 천원 밖에 안되는 소액인데 된통 잘못 걸린 셈이었다. 실제로 그 학생들 모두 파출소로 갔고 우리 가족들도 경찰차를 타고 파출소로 향했다.


파출소 의자에 앉은 세 명의 여학생들은 오락실에서의 표정과 달랐다. 당황과 걱정이 얼굴에 드러났다. 주변 다른 학교의 중3이었다. 겨우 나보다 한 살 많은. 2000년대 유행했던 사자머리를 하고 짙은 화장과 짧게 줄인 교복을 입은, 당시 날라리 학생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16살의 학생일 뿐이었다.


나의 부모님 역시 겨우 몇 천원 가지고 아이들에게 나쁘게 할 생각은 없으셨다. 큰 돈도 아니었고 맞았다곤 하지만 고의가 아니었음을 모두가 알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겁을 좀 주고 혹시나 동네에서 우릴 만났을 때 못 괴롭히게 할 생각이셨다.


경찰관들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훈방 조치하기 위해 그 학생들의 부모님에게 연락을 취했다. 돌아오는 답변은 황당했다. 바빠서 올 수 없다는 말. 어느 분도 와주지 않으셨다. 어린 내가 듣기에도 충격이었다. 사고친 게 한두번이 아니었던 걸까. 곧이어 담임선생님이 파출소로 부리나케 달려왔다. 주말이었는데 사고친 학생 때문에 달려온 선생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담임선생님과 함께 세 학생들은 파출소 문을 나섰다.


그러고 시간이 흐른 뒤, 등굣길에 그 학생들을 마주쳤다. 자전거를 타고 등교를 하고 있었다. 사람이 지나지 않는 길목이었기에 동생과 난 해코지를 할까봐 걱정을 했다. 하지만 놀란 건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릴 보고 흠칫 놀라더니 욕만 내뱉고 그냥 가버렸다.


날라리 학생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16살의 학생일 뿐이었다.


이 일 이후로는 가족들끼리 오락실을 가지 않게 됐다. 가지말자는 말을 누가 한 것도 아니었는데. 하지만 우리가 훌쩍 커서 성인이 된 지금도 종종 부모님과 노래방을 가곤 한다. 서로 좋아하는 곡이 많이 달라졌고,(요즘은 아빠와 듀엣할 곡으로 자자의 <버스 안에서>를 연습해서 부르고 있다) 부모님의 체력도 예전만 못하시고, 연세가 드시니 박자감도 예전같지 않으시지만 여전히 가족끼리 노래를 부르는 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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