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지오 Dec 30. 2022

연필로 마무리하는 올해

긍정과 부정


이 글은 연필로 쓰는 글이다. 작년 이맘때쯤 손으로 쓴 글을 브런치에 올린 적이 있다. 공책에 연필이나 펜을 쥐고 지난날을 기록하는 것은 한 해를 마무리하기에 괜찮은 행위인 듯하다. 이번에도 2022년을 흰 공책과 나무 연필과 지우개로 들여다본다.



2022년은 나에게 미로처럼 복잡했던 해였다. 이 '복잡'에는 이중 의미가 담겨 있다. 긍정의 복잡과 부정의 복잡인데 긍정부터 말하자면, 올해 1월부터 일이 계속 들어왔다. 파트너의 소개가 소개로 이어졌고, 새로운 소개는 내가 브랜딩 작업에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 개인 사이트나 브런치에 올리지 못한 작업물이 있는데, 중간부터는 포트폴리오를 정리할 새가 없을 만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상반기를 보냈다. 어느 때보다 글을 많이 썼고, 많은 책을 읽었고, 많은 사람을 만났다.


친구들이 나보고 잘 나가는 작가님이라고 추켜 세웠다. 그러나 이 시기에 나의 속은 평온하지 않았다. 브랜딩 일에서 한계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미지 매체가 득세하면서 글의 가치는 글 쓰는 자들만의 전유물로 전락된 지 오래다. 이로 인하여 글로 브랜드 이야기를 제작하고자 하는 브랜드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브랜딩 수단으로 글을 선택할 여력이 있는 브랜드는 더욱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나는 현실을 돌파하고자 디자이너와 브랜드 특허 관련 변리사와 협업을 해볼까 고민했다. 곧 이런 형태가 널리고 널린 브랜딩 마케팅 에이전시와 다른 것이 뭐가 있나 싶었다. 일을 따오기 위해 작업 결과물은 높이고 비용은 낮춰야 할 터인데, 이는 자멸하는 길이다. 프리미엄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단가를 높일까도 고려했다. 지금 가격도 비싸서 고민하는 브랜드가 발에 치이는데, 높은 단가 놀음은 '최고급·고급스러운 수작업' 따위의 수식어를 써가며 별 것 아닌 제품을 곱절에 팔아재끼는 어느 기업의 마케팅 전략과 또 뭐가 다른지 싶었다.


난고가 정신을 휘저어 놓는 시기에 마침 제10회 브런치북 공모전이 열렸다. 숨을 돌리기 위해서 두 달 가까이 집필했다. 결과는 낙방이다. 수상작을 읽어보았다. 작년과 재작년 수상작들도 읽었다. 그리고 내가 쓰는 글은 브런치가 추구하는 결과 어쩌면 영원히 맞지 않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정 책을 내고 싶으면 따로 출판사에 기고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감히 말하지만 응모작들 중에서 수상작보다 뛰어난 필력과 구조를 지닌 글들이 즐비하다. 어느 기준으로 그 작품의 작가들이 떨어졌는지 의아할 뿐이다.


다시 브랜딩 이야기로 돌아오면, 좋아서 한 일이지만 갈수록 신기루를 좇는 기분에 공모전이 끝나도 한동안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매너리즘 때문인 듯해서 패션 업계에서 식음료 업계로 협업 분야를 넓혔다. 이곳은 상상한 것보다 기본이 안 된 대표들이 많았다. 나름 명성이 있는 어느 카페 대표는 내가 보낸 메일에 '공짜로 해주면 협업을 고려하겠다'라고 답장했다. 이 정도는 약한 편에 속한다. 사업가 예의를 모르는 생명체들을 마주하며 나는 고민을 거듭했다. 내가 마주한 것은 가상이 아니었다. 내가 숨을 쉬면서 살아가는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이들의 훌륭한 언행에 나는 '일부' 브랜드 관계자들 사이에서 글을 업신 여기는 태도나 갑질을 하려는 심보는 기본 소양일 수도 있겠다는 추측을 하게 되었다.



이 짓을 평생 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나는 부업을 물색했다. 그렇게 해서 찾은 직업이 영어 강사이다. 가르치는 일은 글보다 금전 보상과 피드백이 즉각적이다. 수업을 깊게 다룰수록 아이들의 실력은 물론, 나의 실력도 향상했다. 전에는 흘렸던 문장 구조나 문법이 선명하게 보였다. 며칠 전에 애제자가 내신 영어 시험에서 98점을 받았다. 그 친구가 나에게 초콜릿을 선물로 주며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그때 모처럼 기뻤다. 그날의 감정을 일기로 적었다. 그날의 문장은 밝고 가볍다.


그러나 학원에서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아이들은 가정교육을 받지 못했다. 괜한 반항, 상습적인 거짓말, 예의 없는 행동(이를테면 숙제 검사받을 책을 던지듯이 놓거나, 수업 중 휴대폰 게임을 하는 것)등, 가정교육을 받지 못해서 나타나는 결과는 다양하다. 볼 때마다 저 아이들의 부모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원장에 의하면, 그런 아이들의 부모의 언행은 아이들이 보여준 언행과 같다고 한다. 난데없이 밤에 전화해서 아이가 받은 수업 내용을 묻고,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알려주려고 연락하면 심드렁하게 반응하고, 아이가 숙제를 안 하는 이유를 강사의 자질 부족으로 몰아세운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으면 반드시 예의 바르게 키워야겠다는 마음이 짙어지는 요즘이다. 인성은 지식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올해는 이렇게 살았다. 세세한 일들까지 기술하려고 했는데 낯짝이 부끄러워서 그만두었다. 지금 이 글도 감정이 가득해서 겸연쩍다. 부정의 복잡함으로 가득한 일이 70이었다면 긍정의 복잠함을 머금은 일은 30이었다. 그 30이 70을 감쌀 만큼 달콤하고 보람차고 아름다웠기에 2022년을 걸어 나갔다.


내가 애정하는 브런치 작가님이신 '달숲' 작가님께서 소박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셨다. 공감했다. 나는 내년을 소박하게 보낼 예정이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복잡함에 얽매이지 않고 할 일에만 집중하면서 노를 저어갈 요량이다. 그러하길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