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지오 Feb 20. 2024

취미 생활

  경주마처럼 살다 보면 나란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곤 한다. 당장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내가 어떤 사람이지’ 따위를 생각할 여유가 있겠는가. 주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얼 먹고 있는지, 어디로 걸어가는지 모른 채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살다 보니 세월은 저 멀리 가 있고, 나는 늙었다.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은 탁하고 몸은 굳어 있으며 머리카락은 푸석하다. 억울한 감정이 밀려왔다. 동시에 ‘내가 좋아한 게 뭐였지?’란 뻔하디 뻔한 질문이 떠올랐다. 그 뻔한 질문에 답을 내리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패션’이다.



  며칠 간격으로 신발, 셔츠, 팬츠, 수트를 구매했다. 6-7년 동안 입은 옷들이 낡기도 했고, 고생한 나를 위해 선물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였다. 신발은 아디다스 스니커즈 3켤레를 장만했다. 각각 삼바, 스페지알, 슈퍼스타라는 모델인데 모양이 날렵해서 무게감 있는 룩에도 어울린다. 전에는 같은 브랜드의 스탠스미스라는 모델을 신었다. 마찬가지로 3켤레. 스탠스미스의 근본인 흰색은 두 켤레, 나머지 한 켤레는 검정이다. 3년 동안 열심히 신었더니 이곳저곳 생채기가 많다. 이제는 새로운 것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할 때이다.


  셔츠는 꼼데가르송이다. 엄밀히 말하면, 나의 연인이 일본에 다녀오면서 선물해 준 옷이다. 스트라이프 패턴에 꼼데가르송 트레이드마크인 하트 심벌이 수 놓여 있다. 꼼데가르송은 관심 브랜드가 아니었다. 꼼데가르송과 컨버스 콜라보 신발의 품질이 형편없음을 알게 된 뒤부터 그랬다. 옷들도 왠지 모르게 연약해 보였다. 이 고정관념이 이번에 깨졌다. 탄탄한 소재, 단추를 풀었을 때 카라부터 셔츠 두 번째 단추까지 풍성하게 이어지는 굴곡감, 주름이 덜 지는 기능성, 마지막으로 검정 하트 로고 감성. 로고 색에 맞추어서 검정 터틀넥, 검정 팬츠를 입으면 볼 만하다. 다음 시즌에 몇 벌 더 경험해볼까 한다.


  마지막은 수트와 팬츠이다. 수트는 짙은 차콜 컬러로 맞추었다. 원단은 영국의 ‘알프레드 브라운(Alfred Brown)’. 영국 근대 왕실의 의복부터 잉글랜드 국가대표 유니폼을 만드는 데까지 사용된 만큼 유수 깊은 원단이다. 습하고 바람 불고 비가 오는 기후에서 입으려면 원단이 강해야 한다. 그래서 영국 원단은 탄탄하다(개인적으로 부드럽고 찰랑거리는 원단은 선호하지 않는다). 아무튼 맞추었고, 팬츠는 짙은 네이비 컬러로 한 벌 했다. 노빌리티(Nobility)라는 원단인데, 알프레드 브라운처럼 내구성이 좋다. 푸른 계열 셔츠가 많아서 네이비 팬츠가 요긴할 듯하다.



  좋아하는 무언가를 누리며 사는 것은 복이다. 나는 그 복을 잠시 잊었다가 찾으려고 애썼다. 오래간만에 숨통이 트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당의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