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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맑음 May 02. 2022

폭풍우 치는 날에도 기차는 달린다.

디어 라이프- “기차”

불을 끄고 눕는다. 엎드려 방바닥에 귀를 대고 숨을 멈춘다. 그래야 얼마만큼 기차가 가까이 왔는지 알 수 있으니.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무언가를 취소하는 행위다. 몸을 각성시키고 무릎을 준비시키고 다른 공기의 세계로 뛰어든다.

- 디어 라이프/기차 (앨리스 먼로) 232p

이 이야기는 앨리스 먼로 “디어 라이프”의 일부다. 책의 주인공들이 끊임없이 기차를 타고 이동하듯, 우리도 끊임없이 이동하며 끊임없이 용서한다고 앨리스 먼로는 말한다. 이 책은 14개의 단편소설로 묶여있는데, 그중 “기차”라는 단편에 마음이 머물렀다. 주인공 잭슨이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작가는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행동을 무언가 취소하는 행위로 정의했다. 그리고 그건 다른 공기의 세계로 뛰어드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잭슨은 왜 기차에서 뛰어내렸을까. 어쩌면 그건 스스로에게 자유를 선물하는 행위가 아니었을까.


소설 속 벨의 의붓아버지는 아픈 아내를 병간호하다 지친 어느 날 밤에, 샤워하는 의붓딸의 알몸을 눈으로 훑는다. 잠시 마음에 품었던 욕정에 대한 죄책감으로 고뇌하다, 며칠 뒤 기차에 뛰어든다. 나는 이 행동이 비겁한 자살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속죄와 참회의 방법이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스물두 살 어린 나이에 군대에서의 가혹 행위를 이겨내지 못했다. 휴가 나와 제대 복귀하기 전, 잠 못 이루고 번뇌하다, 결국 기차에 몸을 던졌다. 아빠의 행동이 무책임한 자살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지옥 같은 군대로 다시 돌아가지 않기 위한 최선의 해결 방법이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기차로 뛰어든 벨의 의붓아버지는 이후 죄책감에서 해방되었을까. 아빠는 어땠을까. 지옥 같은 군대로 다시 돌아가지 않고 의가사 제대를 하게 되어 자유로웠을까. 그들은 그 대가로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을 잃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기차는 형벌일까. 지난 삶을 취소해주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준 희망일까.


빛이 없는 어두운 곳에 살 때, 똑같은 시간에 울리는 학교 종소리처럼 분단위로 기차 경적이 울리는 기찻길이 있었다. 소란스러운 낮시간에는 잘 들리지 않던 기차소리가, 딸깍 불을 끄고 반쯤 뭉개진 몸을 침대에 눕히면, 마치 확성기를 대고 소리치듯 크고 경쾌하게 들렸다. 저 멀리 기차의 진동이 느껴지고, 선로와의 마찰음이 점점 커질수록 두근두근 나의 심박수도 빨라졌다.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잠시 멈춘 뒤, 가차가 우리 집 옆으로 다가왔을 때 재빨리 올라탔다. 지하에서 지상으로의 이동, 무상 여행이다. 물론 상상으로 말이다.


슬픔과 허기가 깃든 축축한 지하를 벗어나, 신선한 바람이 솔솔 부는 기차 칸에 올라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휙휙 커다란 전봇대가 지나가고 논길 밭길이 악보처럼 줄줄 흘러간다. 탁 트인 풍경에 넋 놓고 있다 보면 어느새 기차는 바다에 멈춘다. 신발과 양말을 훌훌 벗어던지고 맨발로 모래사장을 향해 질주한다. 발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의 감촉이 부드럽고 따뜻하다. 파도가 만들어 낸 하얀 거품 속에 발을 담그고 갈매기의 행복한 비상을 동경하듯 바라본다.


또 어느 날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뻗어 올라간 편백나무 숲에 내린다. 햇살이 가장 따스하게 비추이는 벤치에 앉는다.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소망을 가득 담아, 폐 깊숙한 곳에 박혀있던 회색 가래를 툭툭 뱉어내고, 초록 숨을 훅훅 들이마신다. 새들의 청량한 노랫소리가 햇살과 함께 온몸 구석구석을 관통한다. 곰팡이 냄새가 피톤치드 향기로, 눅눅한 공간이 싱그러움으로 체인지된 곳. 그곳으로 순간 이동하여 포근히 잠이 들었다.


5분만, 3분만, 1분만, 조금 더 자겠다고 알람을 계속 미루게 되는 아침에도,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상상 속에서 아빠는 왼팔이 낫기도 하고, 두 팔로 나를 안아주기도 한다. 간절함이 하늘에 닿은 어느 날엔 미래의 반쪽을 만나기도 한다. 뒷모습을 지나 옆모습,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드디어 앞모습을 보려는 찰나, 눈치 없이 알람이 빽빽거리며 귀를 때린다. 한 번도 앞모습을 허락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좋았다.


교회의 어린 소년들이 작은 목소리로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아침에 그는 카푸스 카싱에서 내렸다. 공장 냄새를 맡았고, 서늘해진 공기에 기운이 솟았다. 그곳에서 일하면 된다. 제재소가 있는 타운에는 틀림없이 일자리가 있을 것이다.

- 디어 라이프/기차 (앨리스 먼로) 279p

잭슨은 작은 새소리조차 자신을 질타하는 소리로 해석하고 위축될 만큼 부정적인 성향이었다. 그랬던 그가 왜 이리 달라진 걸까. 물론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그의 심경에 변화를 주었겠지만, 무엇보다 기차에서 뛰어내린 다른 공기의 세계가, 기차를 타고 찾아온 낯선 장소가, 그에게 희망이 된 것이다. 틀림없이 자신에게 일자리를 줄 거라는 믿음과 긍정의 장소로 바뀐 것이다.


스물두 살, 언제 걷힐지 모르는 짙은 안개로 혼탁했던 시절, 사람들은 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런 환경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감사할 수 있냐고. 물론 천성이 낙천적이고 신앙심이 있었다지만, 아침저녁으로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준 기차가 없었다면 나도 모르게 어두움에 잠식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슬픔에 젖으려 할 때마다 경로를 바꿔준 고마운 기차. 선로를 따라 묵묵히 일하며 멈추지 않고 달리는 기차의 동력은, 부정의 생각, 글썽이는 마음, 어둠의 기운을 몰아내고, 긍정의 생각, 밝은 마음, 선한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다. 기차를 타고 내릴 때마다 손톱만큼씩 행복이 자랐다. 그 시절 기차는 나에게 ‘빛으로 짠 커튼’과 같은 ‘희망’이었다.


기차는 진행형이다. 지금도 달리고 있다. 맑은 날에도 폭풍우가 치는 날에도.



글너머 독서모임, 4월의 책. 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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