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60년 역사 최연소 우승자/임윤찬)
‘반 클라이번 콩쿠르’ 60년 역사상 최연소의 나이(18세)로 우승한(현대곡 연주상, 청중상 포함 3관왕) 임윤찬 소식, 이미 3주 전 이야기라 모두 알고 계시지요? 우승 이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 영상이 유튜브에 게시된 2주 동안, 출구 없는 회전문에 갇힌 기분으로 듣고 또 듣고 있습니다. 영상에 누가 마약을 탔는지, 마법을 걸었는지, 연주 듣기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이 연주 영상은 7월 10일 현재 470만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는데, 반 클라이번 콩쿠르 역사상 가장 높았던 조회 수가 80만이었다고 하니, 저처럼 임윤찬 연주에 사로잡혀 회전문을 돌고 도는 사람들이 아주 많은 것 같습니다.(특별히 캐나다에 사시는 ‘작은나무 작가님’께서 아침에 올리신 글을 읽고 어찌나 반갑던지요. 저와 같은 심각한 ‘임윤찬 앓이’를 하고 계시다니! 그럴 줄 알았습니다. 하하. 작가님과 밤을 새워가며 임윤찬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많이 알려진 반면, 완벽한 연주를 위해서는 악마적 기교가 필요할 만큼 악보가 무자비하다는 3번은, 연주가 어려워서 인지 듣기 또한 난해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임윤찬의 연주를 듣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라흐마니노프 3번이 이렇게 다이내믹하고 아름다웠다니! 스킵 없이 1악장 2악장 3악장 전곡을 45분간 듣고 또 듣고 있는 제 자신이 신기할 정도였어요. 제가 그렇게 클래식한? 여인은 절대 아니거든요.
하지만 연주 영상을 보다 보면 곧 설득이 됩니다. 음악을 향한 18세 소년 임윤찬의 순수한 열정과 놀라운 흡입력, 훌륭한 테크닉과 아름다운 서정성은 단번에 청중을 압도하는데, 절정에 이르러 온몸에 퍼지는 전율과 카타르시스는 실로 엄청납니다. 때때로 연주자의 과도한 표정이나 몸짓이 거북해, 귀로는 듣지만 눈으로 보기 힘든 경우가 많았는데, 임윤찬의 연주는 눈과 귀가 모두 즐겁습니다. 삼손처럼 긴 머리를 찰랑거릴 때는 꼭 락스타를 보는 것처럼 행복한데, 이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한 매력이자 재능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이번 콩쿠르는 작년에 열렸어야 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경연이 한 해 미뤄지면서 올해 18세가 된 임윤찬이 극적으로 출전 기회를 얻었다고 하지요? 한 편의 감동 드라마가 만들어지기 전 바로 이런 기가 막힌 시나리오가 쓰이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휘자이자 심사 위원장인 마린 알솝과 임윤찬 이야기만으로도 할 이야기가 차고 넘치지만 오늘은 패스합니다.
임윤찬의 인생 모든 부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는, 마치 종교와도 같다는 손민수 교수님과의 아름다운 사제지간 이야기. 그 내용으로 리뷰를 작성해도 긴 글 하나가 나올 테지만 오늘은 역시 패스합니다.
임윤찬의 모든 인터뷰 내용이 연일 화제가 되었습니다. 정말 18살이 맞느냐, 81살, 108살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을 만큼 임윤찬의 묵직한 한마디 한마디는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었고, 존경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장 어록집을 만들어 소장하고 싶을 만큼 좋았던 임윤찬의 말말말로 글을 써도 긴 글 하나가 또 나올 텐데, 오늘은 이 또한 패스합니다.
서두가 길어도 너무 길었습니다만, 오늘 제가 소개하고 싶은 글은 바로 음악 평론가 크리스 하틀리의 리뷰입니다. 누군가 지금의 임윤찬 신드롬이 국뽕이라고 폄하하는 걸 봤기 때문에, 더욱 이런 리뷰가 절실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국뽕이 배제된 외국 음악 평론가의 정확한 감상평!(읽어보니 역시 전문가의 필력은 다릅니다. 내용 또한 감동이고요.) 제가 찾고 찾았던 바로 그런 귀한 글이라 꼭 소개하고 싶어 가져왔습니다. 저처럼 임며들고 계신 분들, 악장별 타임라인을 따라가며 즐겁게 연주 영상 감상해 보세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몰랐던 걸 알게 된 기쁨이 너무 크네요. 영어가 많아 옮겨 적느라 애를 좀 먹었습니다. 혹시 오타를 발견하시면 댓글로 꼭좀 알려주세요.
*** 이 글의 출처는 “핑크러브” 님의 블로그입니다. 허락받고 올립니다. 상세한 리뷰를 작성해 주신 크리스 하틀리 님과 이 글을 올려주신 핑크러브님, 긴 글을 번역해 주셨다는 Romeo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원본 글/ https://www.krishartley.com/2022/06/21/musical-review-yunchan-lims-performance-of-rachmaninoffs-third-piano-concerto-16th-van-cliburn-international-piano-competition/
총평
임윤찬의 세이게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가 텍사스주 포트 워시에서 열린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음악대회에서 그에게 금메달을 안겼다는 사실이 지금 여기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다. 사실, 이 대회 메달리스트들이 세계 최고의 피아노 대회 중 하나인 이 대회에서 이룬 업적은 언제나 그들과 함께할 것이다. 이러한 수상의 영예는 흔히 콘서트 프로그램의 이력란 맨 첫 줄에 등장하곤 하는데, 이는 심지어 베테랑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임윤찬의 경우에는 이 연주가 단순히 그에게 상 하나를 안겨주었을 뿐 아니라 그의 음악성을 음악계에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매우 이른 시기의 이정표인데, 그는 앞으로도 많은 이정표를 세울 것이 분명하다. 클라이번 재단은 모든 우승자들을 평생의 가족처럼 대하는데, 임윤찬은 이전의 메달 리스트들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포스트워스시 특별 명예시민권을 소지하게 될 것이다. 비록 그가 이제 곧 전 세계 음악계의 집중 조명을 받게 되겠지만 말이다. 그의 연주는 단지 이번 대회의 우승 만이 아니라, 내 견해에는 지난 20년간의 모든 대회의 통합 우승을 그에게 안겼다.
나는 2001년에 있었던 11회 대회에서 전직 벡스테이지 어머니 Louise Canafax와 현직인 Kathie Cumimns와 함께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었고, 그 대회에서 Olga Kern과 Stanislav loudentich가 공동으로 금메달을 수상하는 것을 목격했다. 관객석에 앉아 Kern의 놀라운 라흐마니노프 3번 연주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베스 홀(Bass Hall)에서 열린 첫 번째 클라이번 대회였다. 나는, 다른 모든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가 오래 기억될 아티스트가 될 거란 걸 직감했다.
2005년에도 같은 자원봉사를 하면서 나는 Alexander Korbin의 소름 돋는 우승을 목격했고 후에는 그가 피닉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것을 보기도 했다. 어렸을 때, 나는 켄터키주 렉싱턴 시에서(1990년쯤) Alexei Sultanov의 우승 기념 투어 리사이틀도 보았다. 이런 면에서, 나는 음악평론가로서 아마추어인 내 부족함을 적게나마 메워줄 몇몇 개인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다.
연주 그 자체만 놓고 보자면, 2017년 제15회 대회에서 대한민국의 선우예권이 그랬던 것처럼, 임윤찬은 라흐마니노프 3번을 연주하는 우승자들의 전통을 이어갔다. 임윤찬은 기념비적이라고 평하는 바로 이 피아노 협주곡의 연주와 해석의 풍성한 역사를 잘 이해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실패했지만 잠시나마 음악계에 직업으로서 발을 들였던 나는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지긋지긋한 요구-뮤지션들은 연주할 때 항상 “새로운 무언가를 내놓아야만 해”라는 요구를 잘 알고 있다. 나는 현재 학문 연구라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이 직업은 어떤 새로운 출판에서나 항상 같은 질문을 던지는 직업이다.
나는 이따금씩 궁금해진다. 왜 피아니스트가 사려 깊고, 개인적이고, 진실한 연주를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걸까? 왜 이전의 그 누구와도 달라야만 하는 걸까? 이것은 부당한 요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윤찬은 연주를 통해 참신함과 역사 모두를 보여주었다. 완성된 연주자는 과거 연주자들의 위대함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다고 본다. 물론,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들은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연주자들이 있고 인터뷰나 일반적 대화에서 그것을 거론하기도 한다. 하지만, 연주하는 내내 청중들을 과거의 세계로 안내하면서도 동시에 그 작품에 자신만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특별한 예술가는 흔치 않다.
임윤찬의 연주에서 호로비츠 Horowitz(New York Philharmonic/Ormandy, 1978)가 떠올랐는데, 내가 지금껏 들었던 그 어느 연주보다도 호로비츠가 잘 들려왔다. (추정컨데 난 지금껏 라흐마니노프 3번을 2000번가량 들었다. 물론 그중 많은 부분은 같은 버전을 반복해서 들은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이 내가 이 후기를 쓰도록 동기를 부여했다. 임윤찬의 연주는 복사판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과 섬세하고 창의적으로 과거에 경의를 표하는 것 사이의 훌륭한 균형점을 찾아냈다.(임윤찬은 실제로 호로비츠를 존경하며 연구했다고 밝혔다)
1악장
대회 참가자들이라면 종종 자신의 기량을 뽐내려고 하기 마련인데 임윤찬은 곡의 분위기마저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의 기술적 역량의 깊이를 즉각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충동을 이겨냈다. 그는 라흐마니노프의 절제된 오프닝(3분 24초까지)에서 거만하지 않으면서도 시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들이 모데라토 전의 첫 솔로 부분을 밀고 나아가는데, 임윤찬은 짐짓 삼가며 마치 “너무 그렇게 오버하지 말자.”라고 말하는 듯하다.
방송 해설가 버디 브레이(Buddy Bray)가 임윤찬이 입장하기 전에 말했듯이, 라흐마니노프 3번은 집중력을 요하는 일종의 연구(a study in concentration)인 것이다. 그 설명에 “자제”(discipline)를 추가하고 싶다. 예를 들어, Rehearsal Mark 10 전에 있는 높은음들(6:41-6:46)을 순식간에 돌파할 테크닉을 지니고 있음에도, 임윤찬은 그 음들을 성찰의 기회로 삼았다. 각 음은 직전의 음보다 조금 더 부드러웠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나이에 비해 훨씬 참을성 있고 성숙한 면모를 초반부터 보여주었다. 많은 연주자들은 지나치게 감상적인 연주를 하려는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데, 임윤찬은 유연한 a tempo espressive 주제를 선보였다. 그러나 동시에, 임윤찬은 다가오는 사나운 폭풍우를 위한 효과적인 장식을 제공하며 살아 숨 쉬는 프레이징을 선보였다.
Allargando 바로 직후 그리고 a tempo 바로 직전(5:57)의 짧은 포즈에서 나는 처음으로 무언가 특별한 것을 직감하기 시작했다 - 그 포즈는 지휘자 마린 알솝(Marin Alsop과 Fort Worth Symphony Orchestra와의 완벽한 타이밍에 이루어졌다. 임윤찬이 tempo precedente, ma un poco piu mosso를 직감적으로 해석할 때부터 이미 이 연주는 우승을 향한 추구를 넘어서 순수한 음악 제작(musicmaking)의 경지에 이르고 있었다 - 이때 그와 오케스트라는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6:41-7:18)
그가 다시 Tempo 1(7:26)을 연주할 때 나는 의자 가장자리에 앉아 지켜보았고(역주: 일말의 의구심과 걱정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고), 그는 piu vivo(8:36)를 자신감 있게 승화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연주자가 서두르거나 실력이 없을 경우에, 이 악구의 절정은-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동시에 연주한 상승하는 8개의 A-minor 코드들(9:24)-서투르고 난잡하게 들릴 수 있다. 잔뜩 기대를 부풀리고는 그 기대를 저버리는 것보다 더 슬픈 것은 없다. 임윤찬과 알솝은 멋지게 해냈고, 즐거움을 망치지 않았다. 난 좌절된 기대에 대한 변명거리를 생각해 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청중의 하나로서 더 큰 즐거움을 기대하면서 계속 그들(임윤찬과 알솝)의 음악을 들었다.
라흐마니노프 3번 협주곡을 들을 때, 특히나 콩쿠르에서는 더더욱, 우리는 매우 힘이 들어간 장황한 1악장 카덴차를 생각하게 된다. 연주자들은 보통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기량을 뽐내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기 마련이다. 약간 놀랍게도, 임윤찬은 그 유혹을 물리치고 짧은 카덴차를 선택했다(아르헤리치나 호로비츠처럼, 11:10)
힘이 들어가고 장황한 연주들에 비하면, 담백한(snappy) 카덴차는 훨씬 다양한 악흥의 순간들을 (쾌활하고, 명상적이며, 때로는 위엄 있는) 선사한다. 임윤찬의 민첩함은 이 모든 것을 기민하고 말끔하게 해낸다. 코드와 코드 사이를 오가는 그의 연주(11:42)는 또렷하고 균형이 잘 갖춰져 있는데, 이 정도의 기술적 난이도에서 요구되는 전부를 보여줬다. 카덴차의 절정(12:19)에서 보인 임윤찬의 격정적인 모습은 연주 내내 여러 차례 볼 수 있었는데, 나는 이것이 그의 매우 성숙한 접근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다시 한번 생각한다.
절정에 오른 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를 45분 내내 집중해서 듣는 것은 관객에게는 다소 무리한 요구이고 게다가 설득력도 떨어지는데 임윤찬은 그 위험을 잘 피해 갔다. 어느 정도 충분한 집중력을 보여준 관객들만이 발견할 수 있는 사랑스럽고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부분들이 그의 연주에 숨어있다.
한 가지 예는 Come prima(14:20) 전에 왼손으로 하강하는 음들을 연주할 때 보여준 그의 portato(내가 이론 수업에서 배운 것을 기억해 보자면, 그것은 스타카토와 레가토 사이 어디쯤에 존재하는 정확하고 구분된 터치)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내가 다른 연주에서 결코 들어본 적 없는 것이다. 카덴차의 마지막에 양손을 맞붙이고 연주한 트릴은 정밀했고 1악장의 조용한 마무리 전의 무게감 있는 부분들에 위엄을 더해주었다.
2악장
소용돌이치는 듯 신비로운 임윤찬의 2악장 도입부는 곧 나오게 될 극도의 흥분상태(20:12)를 예시한다. 2악장은 마치 플루트의 점증과 같다. 각각의 작은 파동과 악구는 직전의 것보다 점점 더 급박해진다. 임윤찬은 이 구조를 이해하고 음미했다. 즉, 마치 아르헤리치(Rundfunk-Sinfonieorchester Berlin/Chailly, 1982)를 연상케 하는 a tempo piu mosso(23:47)로의 이행에 훨씬 어두운 분위기를 더했다.
a tempo piu mosso에서의 주제를 요약하는 낮은 B-flat에서 임윤찬은 호로비츠의 비범하고 위엄 있는 연주를 떠올리게 했다. 임윤찬은 어떻게 베스 홀의 피아노를 정확히 바로 그 순간에 호로비츠의 유명한 개인 피아노의 소리(역주:호로비츠는 본인만이 쓰는 특제 포르테피아노가 있다는 루머가 많았고 임윤찬의 타건이 명징했다는 뜻)처럼 들리게 했을까? 나는 임윤찬이 음을 하나 추가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히 그것은 단순히 음을 하나 추가시킨 것 이상이었고, 그 터치 하나로 이 무대는 매우 특별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믿기 힘든 순간이었고, 그 지점에서 임윤찬은 돋보이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Rhearsal Mark 29 (24:14) 직전의 왼손 상승 코드 진행은 대가의 솜씨였다. 나 역시 비록 서투르게나마 이 곡을 연주해 본 적이 있기에 그 왼손의 코드 진행을 오른손 연주에 정확히 맞추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알고 있다. 넘실대는 그의 리듬감은 연주의 완벽한 정합성을 만들어냈고, 듣고 있던 우리는 모두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내 후기의 핵심 요지를 밝힐 차례다. 임윤찬이 위대한 D-major 직전의 low A(24:20)를 칠 때 (콘서트가 유튜브에서 생중계되는 한밤중 부다페스트 호텔방에서) 나는 “호로비츠!!!”라고 크게 외쳤다. 그의 전체 연주, 어쩌면 콩쿠르 전체를 통틀어 내가 가장 좋아한 음이었다. 번개가 치듯, 임윤찬은 오른손으로 순식간에 건반을 내리쳤다. 또 한 번 이 동작은 몹시도 아름답고 신비로운 호로비츠적 사운드를 만들어 냈다-두 연주자 모두 악흥의 순간에 완전히 몰입함과 동시에 완벽히 안정적이고 자신감이 넘쳤다.
마침내, 임윤찬의 최대치의 격정이 가장 최적의 순간에 정확히 분출됐다. 삶 속의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 맥락이 없이는 음 자체로는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한다. 임윤찬이 낮은 A로 시작하는 악구를 연주해 내는 방식은 전체 내러티브를 하나로 엮어내는데, 이것을 할 수 있는 연주자는 거의 없다. 라흐마니노프 자신이 그 달콤한 순간에 필요했을 모든 장중함을 지닌 채, 임윤찬은 그 장엄하고 소름 돋는 D-major(24:22)와 D-flat major(24:44) 악구들을 연주해냈다. 그는 그동안 스스로를 자제시키던 속박에서 벗어나 풍부하고 감미로운 화음 속으로 완전히 몰입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D-flat 악구의 낮은 음역은 호로비츠 음반과 놀랄 만큼 닮아 있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이때부터 다음 30분간 난 내가 역사를 목격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연주의 초월적인 아름다움은 이런 식으로 생겨난다. 이러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스스로를 즉각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 아니 애초에 그럴 수 없고- 점진적으로 계시한다. 무언가 특별한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에 이르면, 그 경험은 순전한 황홀경의 순간이 된다. 다만, D-major 악구에서 현악기가 바닥을 조금 더 폭신폭신하게 다져주지 못했다는 점이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대한 내 유일한 아쉬움이다. 간절하고 감정 표현에 솔직한 현악 연주를 듣고 싶다면, 내가 들으며 자랐던 Leonard Slatkin이 피아니스트 Abbey Simon과 St. Louis Symphony Orchestra와 녹음한 음반을 참고하라.
2악장 중간지점부터, 임윤찬의 연주는 기본적으로 대관 행진이었다. 선글라스를 쓴 채 세단을 타고 지나가는 군중을 향해 미소 짓는 이미지를 떠올려보라.(전혀 상상이 되진 않습니다만..)
3악장
임윤찬은 3악장의 격정적 서두인 L’istesso tempo(28:29)를 시작했고 백열 상태와 같은 강렬함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거의 대부분의 연주자들이 해낼 수 없는 엄청난 테크닉을 요하는 일이다. Argerich 뿐만 아니라 독특한- 특히 하강하는 모티브- Grigory Sokolov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음반들이 떠오르게 되는 지점이다.(Swedish Radio Symphony Orchestra/Ollila, 1998) 마지막 악장 내내, 임윤찬은 전체를 아우르는 시야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디테일도 챙겼다. 예를 들어, A-major로 전개된 이 악장의 두 번째 주제(나중에 E-flat-major로 반복되는)를 연주하면서 왼손 도약(29:48)을 훌륭히 수행했는데, 이 왼손 도약은 이 주제 악구들을 특징짓는 대위법을 유지함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임윤찬은 오케스트라와의 완벽한 조화 속에서 세 번째 주제의 클라이맥스(31:05)를 능수능란하게 연주했다. 그는 가운데 섹션(32:02)의 시작 부분-molto leggiero-를 allegro처럼 연주했는데, 이것은 취향의 문제다. 나는 이 전반부 악구들을 좀 더 숨 가쁘게 연주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이것은 그의 연주였으니, 누가 그에게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임윤찬은 memo mosso(33:41)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돌아보는 쪽을 택했다(매끈한 음에 관해서는 논외로 하고, 이 악구의 대위법의 놀라움이 다시금 아르헤리치를 가리키고 있다는 점에서 임윤찬의 연주는 마스터 클래스를 위한 수업자료가 된다. 임윤찬과 아르헤리치 모두 이 악구의 모멘텀을 나중 단계에 가서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임윤찬의 lento 부분의 연주는 다시금 그의 나이를 무색게 하는 성숙한 음악성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플롯 솔로에게 신호를 주기 위해 임윤찬이 어떻게 개인적 책임감을 갖고 임하는지 보라. Francis Poulenc(역주:프랑스의 20세기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실내악 작곡에 능했음)의 플롯 소나타를 반주하는 임윤찬의 모습이 보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솔로 파트 직후에 이어지는 조바꿈(35:32)은 음색과 플레이징의 측면에서 녹아내린 버터와 같은 부드러운 만족감으로 넘치고, 간결하지만 결코 나약하지 않은 늘임표는 그저 대단할 뿐이다. 이 순간 나는 임윤찬이 조각가로서 그 악구에 형태를 부여하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 그 악구는 내게 단순히 들리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기 시작한다. 네 개의 작은 악절로 구성된 거장의 품격이 느껴지는 두 개의 큰악절의 대조, 그러니까 C-major로 시작하는 첫 번째 큰악절(30:11)과 B-flat-major로 시작하는 두 번째 큰악절(38:50) 사이의 대조는 3악장에 대한 임윤찬의 거대한 구상 중 하나다. 보통 선행하는 악절은 다음 악절의 스타일에 대한 힌트를 제공하기 마련이지만, 임윤찬은 청중을 놀라게 한다. 아무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후행 악절을 질주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이제 우리는 이 협주곡의 종결부에 이르는데, 임윤찬의 연주는 내가 나의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어휘를 찾도록 강제한다. 마치 옛 서부의 피아노 결투에서의 아르헤리치(역주:아르헤리치는 정말 싸우는 듯이 칩니다)처럼, 임윤찬의 piu vivo(37:49)에서 비상한다. 하지만 결코 자신의 스타일을 벗어나지 않는데, 이는 임윤찬 정도의 능력을 가진 연주자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때쯤 청중은 이 부분에서 이 연주가 금메달을 수상하기에 충분하겠지만 너무 흥분하고 조급한 마무리로 끝난 수많은 연주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앞서 말한 바 있는 B-flat-major의 큰악절(38:50)에서의 초인적인 무언가를 들을 때에야 비로소 임윤찬의 진가를 확인하게 된다.
추정컨데, 나는 수백 개의 다른 연주들을 레코드판으로, 카세트테이프로,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의 연주를 포함) 연주 실황으로 들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연주는 결코 들어본 적이 없다. 비르투오소의 자기 과시였을까? 물론이다! 그러나 임윤찬은 이미 자신의 음악적 다재다능함을 증명해냈기 때문에 그러한 과시도 수긍할만했다. 이것은 순전히 “나는 할 수 있다, 고로 나는 하겠다(“I can, therefore I will”)는 식이다. 그는 가공할 만한 능력으로 그것을 해냈다. 임윤찬이 왕으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기술적 요소의 측면에서, 이 악장은 특별히 어려운 악장이라서 많은 연주자들이 오른손으로 옥타브만 연주하는 식으로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간다. 사실, 그 옥타브들은 옥타브가 아니라 화음이고, 그 화음들의 숨겨진 작용들 없이는 온전한 효과를 누릴 수 없다. 그래야만 놀라운 대위법에 있어서 반음으로 하강하는 스케일을 강조할 수 있을 것이다.(Abbey Simon을 참고하라) 임윤찬은 그 부분에서도 너무도 빠르게 연주했기 때문에 나는 녹화 영상을 보며 그가 그 화음들을 정확히 짚었는지를 확인해야만 했고 그렇게 내적인 화음의 작용들을 감지할 수 있었다.
임윤찬은 적당히 꼼수를 쓰지 않는다- 찬사를 받을 일이다. 다시 한번, 나는 이 부분이 그가 호로비츠를 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이 부분 호로비츠는 속도뿐만 아니라 강렬함에 있어서 완전한 몰입을 보여주었고, 엄청난 섬세함을 보여주진 못했다 하더라도 대위법을 표현해 내는 데 성공했다)
악보를 볼 줄 아는 청중이라면, 그 D-minor 음형(figure)을 연주할 때, 임윤찬이 F-major에 접근했을 때 왼손 B-natural을 정확히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39:16) 많은 경우에 이 음은 주목받지 못하지만 실제로는 이 큰악절에서 중대한 터닝포인트가 된다. 어두움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움직임 속에서 그 음이 확실한 회복(redemption)을 알리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종류의 디테일 때문에 라흐마니노프가 작곡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이 음을 정확하게 연주하는 것이 얼마나 흔치 않은 일인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 정도로 맹렬한 속도의 연주 중에서 내가 들었던 베스트는 Yefim Bronfman(Vienna Philharmonic/Gergiev)이다.
라흐마니노프 3번을 들을 때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마지막 요소는 연주자가 비바체 “행진(march)”에서 반복되는 왼손 옥타브를 어떻게 연주하는가 하는 점이다.(40:15) 통찰력 있는 청중은 이 부분에서의 화성 진행이 1악장 카덴차에서의 화성 진행과 동일하다는 것을, 그래서 이 곡에 통일성이 부여된다는 점을 알아차릴 것이다.
나는 임윤찬이 마치 일요일 아침에 느껴질 법한 편안함 속에서 이 부분을 연주할 것을 기대했고, 그는 정확히 그렇게 했다. 깊이를 결여한 기준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 큰악절이야말로 연주자가 라흐마니노프의 모든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자신의 기술적 역량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라고 본다. 놀랍게도, 이 부분에서의 실패를 제외한다면 훌륭하다고 평가받을 수도 있었을 많은 연주자들은 이 부분에서 그저 크게 칠 뿐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음들에 상처를 입히며, 청중이 알아채지 못하기를 바랐을 뿐이다.
임윤찬과 같은 수준의 다른 연주자들은 더 계산된 해석을 보여준다. 내가 아는 최고의 예는 Lazar Berman의 연주인데, 그 연주는 기계적 해석으로 들릴지 몰라도 아름다운 균형감을 보여준다. (London Symphony Orchestra/Abbado) 그렇다고 무턱대고 기교 그 자체에만 주목해선 안될 일이다. 음악성과 서정성만으로도 청중의 마음을 훔치기에 충분하다. (‘간혹’ 대회 수상까지도 가능하다) 물론 기교가 무시되어서도 안될 일이다.
이 시점부터 임윤찬은 베스 홀(Bass Hall)의 모든 청중들은 물론이고 아마도 피아노계 전체를 석권했다. 감정이 고조되며 이 협주곡의 클라이맥스에 도달했을 때, (41:44) 대부분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역사가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곡이 마무리되며 지휘자 알솝이 눈물을 훔치는 장면을 많은 이들이 목격했다. 그녀는 나보다 눈물을 잘 참았다.
글을 마치며
많은 피아노 팬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위대한 라흐마니노프 3번 연주자들과 함께 성장해왔다. Lazar Berman, Van Cliburn, Byron Janis, Martha Argerich, 그리고 물론 Vladimir Horowitz. 기민한 청중들은 나의 취향에 비추어 내가 왜 임윤찬을 이토록 좋게 평가하는지 아마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사운드와 분위기는 당당하고 침착하다. 나는 비록 피아노계를 잘 모르지만 새로운 세대의 연주자들 중 몇몇은 약간 신중한 연주 스타일에 가까울 것이다. 그들은 과도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장식적이기만 하고 취향은 없어 보이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임윤찬에게서 그러한 모습들은 보이지 않지만, 그러한 모습들을 보이지 않으려고 집착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솔직 담백한 연주를 할 뿐이고, 테크닉이 그 연주를 사실상 무결하게 만들어줄 뿐이다. 열정적이고 신중한 버디 브레이가 마무리 멘트에서 말했듯, 임윤찬의 연주는 기적, 믿기지 않을 정도였고 훌륭하다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다른 누군가로부터 임윤찬이 얼마나 잘했는지를 들을 필요가 없었다. 연주를 들으면서 우리는 바로 알 수 있으니까. 객석의 함성소리가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Fort Worth의 관객들은 언제나 열성적이지만, 내가 보기에 이렇게나 폭발적인 환희에 찬 반응은 흔치 않은 일이다. 1989년의 Alexei Sultanov와 2001년의 Olga Kern 이후로는 이와 같은 반응은 없었다.
지휘자 Alsop은 Fort Worth Symphony Orchestra와 함께 이 연주를 위한 최상의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악기 편성이 복잡한 구간에서 대체로 급하고 호방한 현악 사운드에 의해 가려졌지만 목관 소리는 섬세하고 아름다웠다.(1악장 카덴차의 목관 솔로 파트는 특히나 즐겁다.)
이 연주의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까지 해야 할 말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지만, 간결함을 위해 몇 가지 커다란 줄기에만 주목했다. 임윤찬이 이 연주를 위해 기울인 노력은 분명히 수년간 반복해서 들으며 연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으며 오랫동안 기억될 음악적 경험이었다. 앞으로 수십 년간 임윤찬의 연주에 감동받을 것이 기대된다.
아무리 좋은 글, 좋은 책도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면 의미가 없듯, 아무리 좋은 음악, 좋은 연주도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면 결국 그들만의 리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인들도 쉽게, 감동하며 클래식을 듣고 즐길 수 있도록 모든 부분에서 설득시킨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3번 마지막 파이널 무대는 - 미국 시차와 음식으로 인한 고통, 극도의 스트레스와 여러 번의 예선전, 리허설이 부족한 오케스트라와 3번의 협연을 해야 하는 살인적 스케줄, 이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더욱더 - 기적입니다. 매 라운드마다 임윤찬은 영혼을 갈아 넣고 혼신을 다했습니다. 라흐마니노프 3 외에도 그가 보여준 모든 무대가 훌륭하고 매력적입니다. 청중들로 하여금, 같은 피아노 다른 느낌, 같은 오케스트라 다른 느낌, 같은 곡 다른 느낌이라는 찬사를 받는 이유, 전 세계가 극찬하는 이유가 궁금하시다면 그의 연주를 직접 들어보세요. 바로 납득이 되실 겁니다.
https://youtu.be/DPJL488cfRw
한 번도 안 들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들은 사람은 없다는 그 전설의 영상! 오늘부터 저와 함께 빠져보실래요? 각오 단단히 하세요. 출구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