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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맑음 Nov 03. 2022

살아남는 중입니다, 이 결혼에서

박진서 작가 신간

이 책은 제 옆의 단 한 사람, 그의 곁에 머물러 있기 위한 저의 다짐이며, ‘힘겹지만 소소한 행복을 찾아나가는 기록’입니다. 그리고 그를 더 사랑하기 위해 애썼던 저의 ‘오랜 흔적들’을 담고 있습니다. -프롤로그 중-

결혼 생활을 해본 사람은 알 거예요. 삶이 그렇게 녹록지 않다는 것을. 시댁, 친정, 남편, 자식, 건강, 경제적 어려움, 정신적 어려움 등등.. 저마다 크고 작은 아픔과 고민을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하나의 아픔만 삶을 덮쳐도 몇 날 며칠 불면의 밤을 보내는 것이 인간인데, 이 책의 저자인 박진서 작가의 삶에는 '불행'이라는 이름의 사건들이 끊임없이 휘몰아칩니다.

돈키호테처럼 두꺼운 책도 아닌, 겨우 200페이지 정도의 얇은 책의 리뷰를 쓰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이 될 줄 몰랐습니다. 저자가 제 친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단어 사이사이, 문장 사이사이, 책장 사이사이에 생략된 저자의 깊은 한숨과 눈물이 보였기 때문이에요.



 “불임”

저자는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임신 불가능’이라는 진단을 받습니다. 그래도 절망감보다 희망을 가졌답니다. 인공수정도 하고 시험관 시술도 하면서 노력하다 보면 분명 예쁜 아기가 찾아올 줄 알았다고. 온갖 시술로 몸과 마음이 황폐해진 저자는 나이 마흔이 넘어갈 무렵 아기에 대한 미련을 깨끗하게 접고, 결혼 8년 만에 “까꿍이”라는 반려견을 키우게 됩니다.

“내 사랑 까꿍아, 무조건 적인 사랑, 그게 너에게만은 된다는 게 어떤 때는 정말 신기해. 오롯이 사랑만을 줄 수 있는 네가 있어서 난 참 고마워. 자식이 있는 부모 마음을 십 분의 일이라도 헤아려볼 수 있는 기회를 줘서 정말 감사하단다.” ​

나는 까꿍이를 통해 갈 곳 잃은 모성애를 맘껏 발산할 수 있었다.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가 시나브로 달래 졌다. 132p

저도 아기가 생기지 않아 불임이 아닐까 의심하며 산부인과 진료를 받고 처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결혼 2년 만에 기다리던 첫딸을 임신했지만, 홀로 가슴 졸였던 그 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기억을 빗대어 저자의 아픔 1000분의 1 정도 가늠해 보았습니다만, 어찌 감히 비교를 할 수 있을까요.

8년 만에 내 삶에 아기는 없음을 체념하고 반려견 까꿍이를 받아들였을 때 "갈 곳 잃은 모성애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었다"라는 저자의 말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건 여자만이 알 수 있는 슬픔일 거예요.

​​


 “예기치 않은 빚더미, 사기”

저자의 남편은 친한 지인에게, 많은 빚을 지며 울며 겨자 먹기로 땅을 넘겨받았다고 합니다. (최근 명백한 사기임이 밝혀짐) 땅을 떠넘긴 그 지인은 호의를 베푼다며 자기 소유의 상가에 학원을 열라고 제안했고, 한 달 동안 몸으로 뛰며 준비한 학원은 끝내 허가가 나지 않았습니다.


​유흥업종 시설 지역이라 원래 학원 허가가 어려운 곳이었다는데, 이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지.. 결국 저자 부부는 그로 인해 더 많은 빚을 지게 되고, 10년간 고생 고생하여 빚을 청산하고 나니 수중에 남은 돈은 거의 없었다고 하네요.

 남들과 비교하는 삶, 가난을 비관하는 삶, 주어진 현실을 부정하는 삶은 결국 독으로 다가온다. 더 내려놓는 삶, 겸허히 받아들이는 삶, 작은 것에 감사할 줄 하는 삶이야말로 행복으로 이끌어줄 마음의 자세일지도 모른다. 85P

갚아야 할 빚이 삶을 짓누른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숨 못 쉬게 하고, 피폐하게 하는지 정확히 압니다. 빚 때문에 결국 세상을 등지고 아프게 떠나신 아빠를 아주 가까이에서 보았기 때문이에요. 예기치 않게 빚을 지게 된 사연을 읽는 동안 제 옛 기억들이 떠올라, 속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저자는 가난을 비관하는 삶이 독이라는 걸 미리 알고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망막색소 변성증”

저자는 틴틴파이브의 이동우 씨가 ‘망막색소 변성증’이란 희귀병으로 시력을 잃었다는 사연을 티브이를 통해 보게 됩니다. 그런데 남편의 증상과 너무 흡사해 무서운 예감이 들었고, 찾아간 병원에서 똑같은 진단을 받게 됩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동우 씨처럼 급성이 아니라는 것. 산과 같은 존재인 남편이 미래에 실명을 하게 될 거라니, 도대체 이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나 그냥 콱 죽어버릴까?"

“내가 먼저 너를 떠나겠다고 말하지 못하는 게 구질구질하다. 네가 무슨 죄냐. 꽃처럼 예뻤던 너인데……”

우리는 그날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손을 잡고 울었다. 서로를 안쓰러워하며 꺼이꺼이 그렇게 목을 놓아 울었다. 44P

저자의 남편은 타고난 초긍정주의 성격으로 이래도 허허, 저래도 실실, 좀처럼 좌절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 저자의 남편 입에서 저런 말이 쏟아졌다니.. 이 대목에서 저는 그만 책을 내려놓고, 저자 부부를 끌어안는 심정으로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향한 남편의 미안함과 진심이 너무 선명하게 다가와 가슴을 후볐기 때문이에요.



 “자율신경 실조증, 헤르페스”

저자는 어느 날 몸속 퓨즈가 뚝하고 끊기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날 이후 정확히 어디 한 군데가 아픈 것이 아닌 복합적인 통증이 찾아왔다고 하네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가, 손발이 덜덜 떨렸다가, 속이 메슥거려 헛구역질을 했다가, 갑자기 기력이 훅 떨어져 정신을 잃을 듯 휘청거려야 했습니다. 찾아간 병원에서 "자율 신경 실조증"이라는 낯선 병을 진단받게 됩니다.

병마와 싸우는 동안 나는 부끄럽게도 죽음에 대해 종종 생각했다. 고통과 좌절, 슬픔으로 점철된 십여 년의 세월 끝에 남은 건 병든 마음과 몸뿐이라는 사실이 삶의 의욕을 모조리 앗아가 버렸다.​

병과 함께한 지 어느새 육 년째다. 앞으로 더 많은 날들을 같이 가야 한다면 이제 초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자. 아플 땐 쉴 것, 아프지 않을 땐 즐겁게 생활할 것. 29P

1년간 병과 사투를 벌인 적이 있습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의 참뜻을 그때 절실히 깨달았어요. 수술과 치료로 지친 몸에 또다시 통증이 찾아들 때면 저는 순간 괴물로 변했습니다. 아이들을 향해 소리치고 울부짖는 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병마와 싸우는 동안 나는 부끄럽게도 죽음에 대해 종종 생각했다."라는 저자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 알 것 같아서 저도 모르게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저는 단 1년으로 털어냈지만, 저자는 평생을 안고 가야 할지 모른다고 합니다. 그 또한 초연하게 받아들이겠다니.. 신에게 따져 묻고 싶습니다. 왜 이토록 가혹하냐고! 저자의 병도 끊어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무시로 기도하며 제가 믿는 신을 졸라볼 작정입니다.


​​

 “밤마다 달님에게 빌었어”

저자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여동생 집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거실 방의 한 귀퉁이, 다닥다닥 붙은 가구들 틈에 이불을 펴고 반려견과 함께 잠을 잡니다. 밤에는 새어 들어오는 달빛에 감사하며 소원을 빌고, 낮에는 베란다에 앉아 명상을 하면서 살아갈 힘을 얻고 의지를 다집니다.

밤마다 온 마음을 다해 빌었다. 검은 밤에도 시리도록 찬란한 빛으로 어둠을 밝히는 달님에게. 내 건강을, 남편의 눈을,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187p

이 욕심 없고 소박한 저자의 소망은 “국민임대 아파트 청약 당첨”이라는 결실을 맺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저도 그만 너무 기뻐 대한민국만세를 외칠 뻔했어요. 부디 이 아름다운 부부에게 앞으로는 기쁨과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친구가 보내준 친필 사인북과 마음이 담긴 엽서 그리고 선물.

 사랑하는 친구에게..

사랑하는 친구야! 너는 말했지. 우아하게 살고 싶다고. 자신이 생각하는 우아함이란 단순히 차림새나 외모, 말투와는 다른 어떤 것이라고. 그건 고요와 같은 맥락일 텐데, 이를테면 ‘겉으로 드러난 고요’라고. 시시각각 흔들리지 않고 한결같은 색깔을 내보일 수 있는 그런 단단함 혹은 유연함이라고. 품격 있는 가난, 진심 어린 마음의 표현, 애쓰지 않는 행위들, 탐욕스럽지 않은 열망이라고.

내 친구라서가 아니라, 넌 이미 그 누구보다 우아하고 고귀한 사람이란 걸 알까? 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전화를 끊고 나면 나는 늘 너에게서 그런 향기를 느꼈어. 그리고 닮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지. 네가 내 친구라는 사실이 얼마나 자랑스럽던지. 세상에 외치고 싶은 거야, 이 작가님이 내 친구다! 아주 큰소리로.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어. 너와 나는 화려한 꽃이 아닌, 수수한 초록 식물을 닮았다고. 짧게 져버리는 꽃이 아닌,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초록 자연. 제일 먼저 사려니 숲이 떠올랐어. 낭창낭창 우거진 초록 숲 속 붉은 융단이 깔린 황톳길. 너와 손을 잡고 맨발로 걷는 상상을 해본다. 우리는 입가에 미소만 띤 채 아무 말이 없어. 그저 걷고 또 걷고, 계속해서 걸을 뿐. 찬란한 햇살을 흠뻑 받으며.

그리고 지난날 우리가 겪었던 모든 아픔들을 훌훌 벗어던지는 거야. 새롭게 태어나는 심정으로. 너와 내가 지나온 고단한 시간들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다는 걸 감사하기로 무언의 다짐을 하지. 그리고 우리는 기도해. 서로의 앞길에 축복만이 가득하기를!

친구야! 그동안 잘 이겨내고 견뎌줘서, 이렇게 씩씩한 모습으로 내 옆에 있어줘서 정말 고마워!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내 친구.


친구야! 너는 꼭! 제2의 조앤 롤링이 될 거야!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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