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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아 Mar 05. 2022

"내 복수엔 쓸모가 있을 거요."

<일리아스><베니스의 상인><대부>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호메로스 <일리아스> (천병희 역)


기원전 8세기에 쓰인 이 위대한 서사시는 한 남자의 분노로 시작합니다. 단테에 따르면 죽어서 지옥에 갔다고도 전해지는 이 남자는 잔혹한 영웅, 아킬레우스이며, 이 서사시는 <일리아스>입니다. 아킬레우스가 분노하는 대상은 아카이아인들의 왕 아가멤논입니다. 트로이 전쟁에서 이기려면 아킬레우스의 무공이 꼭 필요한데, 아킬레우스는 왕에게 항의하며 전투에 나가지를 않습니다. 아킬레우스가 복수하는 방법입니다. <일리아스>는 내내 원한과 복수의 오르내림이기도 합니다. 열 받으면, 되갚아 줘야죠. 베니스의 샤일록이 그랬듯이요.


To bait fish withal: if it will feed nothing else, it will feed my revenge. He hath disgraced me, and hindered me half a million; laughed at my losses, mocked at my gains, scorned my nation, thwarted my bargains, cooled my friends, heated mine enemies; and what’s his reason? I am a Jew. Hath not a Jew eyes? hath not a Jew hands, organs, dimensions, senses, affections, passions? fed with the same food, hurt with the same weapons, subject to the same diseases, healed by the same means, warmed and cooled by the same winter and summer, as a Christian is? If you prick us, do we not bleed? if you tickle us, do we not laugh? if you poison us, do we not die? and if you wrong us, shall we not revenge? If we are like you in the rest, we will resemble you in that. If a Jew wrong a Christian, what is his humility? Revenge. If a Christian wrong a Jew, what should his sufferance be by Christian example? Why, revenge. The villany you teach me, I will execute, and it shall go hard but I will better the instruction.

"낚싯밥 하지요. 그게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도 내 복수엔 쓸모가 있을 거요. 그는 날 망신시켰고 내가 오십만 정도를 못 벌게 했으며, 내 손실을 비웃고 이득을 조롱했으며, 내 나라를 모욕하고 내 거래에 훼방을 놓았으며, 내 친구들은 냉담하게 적들은 흥분하게 만들었소. 이유가 뭐냐고요? 내가 유대인이란 겁니다. 유대인은 눈 없어요? 유대인은 손도 기관도 신체도 감각도 감정도 정열도 없냐고요? 기독교인과 같은 음식 먹고 같은 무기로 상처를 입으며, 같은 병에 걸리고 같은 방법으로 치유되며, 여름과 겨울에도 같이 덥고 같이 춥지 않느냐고요? 당신들이 우리를 찌르면 피 안 나요? 간지럼을 태우면 안 웃어요? 독약을 먹이면 안 죽어요? 그런데 당신들이 우리에게 잘못하면 우리가 복수를 안 해요? 우리가 나머지 부분에서 당신들과 같다면 그 점도 닮을 거요. 유대인이 기독교인에게 잘못하면 그는 겸손하게 뭘 하지요? 복수하죠. 기독교인이 유대인에게 잘못하면 그는 기독교인을 본받아 인내하며 뭘 해야 하지요? 그야, 복수해야죠. 당신들이 준 비열한 짓을 난 실행할 겁니다. 그리고 어렵긴 하겠지만 교육받은 것보다 더 잘할 겁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 (최종철 역)


샤일록의 대사에서 불편한 매력을 느낍니다. 지긋지긋한 원한, 그리고 복수에 대한 열망을 이렇게 잘 표현할 수가 있을까요. 나는 당신이 미워서 복수합니다. 게다가 당신 역시 같은 상황에서 복수할 것을 알기에 내 복수는 정당합니다. 그러니 나는 당신이 죽어줬으면 합니다. 1 파운드 살점을 떼어내며, 피와 비명에 젖어 죽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복수심을 느낄 줄 아는 사람들이며, 복수극에서 쾌감을 느끼는 비정한 사람들입니다. 복수의 모티프는 영원히 유효합니다. 다만 <햄릿>이 <라이온킹>이 될 뿐입니다.




영화 <대부>

잠깐 영화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대부>에서, 마이클이 살인을 저지르지 않길 바라며 이 장면을 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온갖 불법과 기행을 저지르는 꼴레오네 패밀리이지만, 우리는 저 유약한 막내아들 마이클이, 원수의 이마에 총탄을 박기를 바라며 영화를 봅니다. 꼴레오네 패밀리를 위협하는 두 인물과 막내아들 마이클의 대화가 나아갈수록, 상대방의 제안은 괘씸하게까지 여겨집니다. 아버지의 생명을 위협해놓고 화해하자고요? 아무리 고민해도 수지가 맞지 않거든요.


마이클은 통쾌하고 아슬아슬한 복수에 성공합니다. 꼭 기차가 달려와서 자기를 칠 것 같은 불안에 떨며 쏜 총알이지만, 총알은 제대로 박혔습니다. 특히 마이클 자신 역시 모욕한 부패 경찰에게는 굳이 두 발의 총격을 가합니다. 이렇게 마피아 패밀리들 사이에는 복수심에 흠뻑 젖은 전쟁이 시작됩니다.


영화 <대부>


전쟁의 끝에서, 결국 꼴레오네 패밀리는 장남 소니를 잃습니다. 죽일 거라면 총알 한 발로 충분했을텐데, 소니는 그 이상의 치욕을 당하며 죽습니다. 복수는 점점 이자를 먹으며 불어나기 마련입니다. 마이클은 살인에 필요한 총탄 발에 딱 한 발을 더해 복수심을 채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꼴레오네 패밀리에게 돌아올 때에는, 수십 발의 탄환에 모든 곳이 찢겨나간 소니의 시신으로 돌아왔습니다.


영화 <대부>


죽은 소니의 아버지 비토는 따뜻한 인간입니다. 전설적인 마피아 두목이지만, 자식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남자입니다. 비토는 소니를 잃은 슬픔을 창자에 욱여넣으며, 모든 복수의 이자를 스스로가 삼키기로 합니다. 비토는 주요 마피아 패밀리의 두목들과 자리를 마련하고, 자신은 이제 복수하지 않을 것을 이야기하며 전쟁의 끝을 이야기합니다. 가장 많은 걸 잃은 사람이 그 무정한 원한의 대화를 끊어냅니다.


그런데 가장 많이 잃은 사람이 아니라면 전쟁을 끝낼 수도 없습니다. 아버지를 죽이려 해놓고 화해를 요구한 솔로초의 제안이 난센스인 이유입니다. 유일하게 매듭을 끊어낼 수 있는 한 사람에게는 고통의 과제가 요구됩니다. 복수심을 참으며 살아가는 일입니다. 가장 복수하고 싶을 사람이 복수하지 않아야 설득력이 있는 유일한 화해의 제안이고, 한 인간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영화 <트로이>

머리에서 언급했던 아킬레우스는 전쟁 중에 소중한 친구를 헥토르에게 잃게 됩니다. 분노가 정수리까지 차오른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와의 결투 끝에 그를 죽이게 됩니다. 그러나 단순히 그를 죽이는 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아킬레우스도 복수의 이자를 받아야 개운할 것이고, 복수란 본래 눈에는 눈으로 그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아킬레우스는 청동 칼을 뽑아 헥토르의 시체에서 갑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발목에 줄을 매어 전차에 연결시켜 땅바닥을 질질 끌고 다녔다. 이것은 아킬레우스가 용감한 헥토르에게 모욕을 줄 방법으로 생각해 낸 것이다.

호메로스 <일리아스> (김대웅 역)


<Priam Pleads with Achilles for Hector's Body> by Bertel Thorvaldsen


헥토르는 프리아모스 왕의 사랑을 받는 아들입니다. 나라의 유일한 영웅이자, 가장 사랑하는 장남이 모욕당하는 것을 지켜보는 프리아모스 왕은 당연히 절망합니다. 그리고 프리아모스는, 한 인간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을 이행하려 합니다.


"그러니 제발 신들을 두려워하시는 아킬레우스여, 아버님을 마음에 두면서 이 몸을 가엾게 여겨주오. 나야말로 정말 가엾은 자요. 정말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아직 한 적도 없는 짓을 참고 견뎌내기까지 했소. 아들을 죽인 그 무사의 입가에 손을 내밀면서 말이오."

호메로스 <일리아스> (김대웅 역)


자기 아들을 죽인 아킬레우스에게 프리아모스는 구걸합니다. 아들을 시신을 돌려줄 수 있겠냐고 읍소합니다. 말하자면 프리아모스는 스스로 모든 것을 삼키려고 한 것입니다. 비토 꼴레오네가 장남의 죽음을 삼켰듯이요. 그리고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한 <일리아스>는 헥토르의 장례 마무리로 끝을 맺습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원한을 삼키는 인간다움을 일리아스를 읽을 때 느낄 수가 있습니다. 가장 고통받은 사람만이 용서의 자격을 가집니다. 슬프게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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