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또 어떤 사람들이 이 글을 읽을지 내게는 알 길이 없습니다. 한 해라는 애매한 단위가 끝나갈 때이니 다들 이런저런 생각을 하시겠지요.
일주일이나 한 달 또는 한 해 같은 문명의 시간 단위들이 저주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습니다. 일주일이라는 5 더하기 2의 셈법 때문에 우리는 5일의 노동을 거리낌 없이 등에 짊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1월 1일이 있다는 것, 월요일(혹은 일요일)이 있다는 것이 축복처럼 여겨집니다. 고작 떡국 한 그릇에 우리는 지저분한 매듭을 끊어내며 다시 시작한다는 걸 상상하곤 하니까요.
제게는 올 한 해가 유독 힘들었습니다. 해가 또 가고 무언가를 많이 듣고 읽을수록 오히려 내가 부족한 인간이라는 걸, 또 결함 많은 인간이라는 걸 책장을 넘기는 지문으로 느끼는 것 같습니다. 내 턱이나 코가 유독 못나 보이는데 거울 앞에서 발을 옮기지 못하는 아침 같았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에게도 올 한 해는 유독 힘든 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가까운 과거의 상처와 눈앞에 닥친 생활의 고난보다 사람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 것이 드무니까요.
어쩌다 보니 "많이 사랑하고 사세요."라는 말로 연말연시 인사를 종종 했습니다. 여러 해마다 그 해의 인사말을 주고받았지만 한 번도 그런 말로 인사한 적이 없었는데도요. 제가 그 사랑이라는 것과 자꾸 멀어져서 그런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아직 너무나 어리고 또 어리석습니다. 계속 스스로를 어리고 어리석다고 생각하다 삶이 끝나는 것인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제 어리석음에는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편하게 의자에 앉아 타이핑을 하는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방에서 저 때문에 상처받은 순간을 돌이키고 있겠지요. 분명히 누군가에게 제가 줬을 상처와 그 상처에 대해 무지한 스스로를 생각하면 무력감이 듭니다. 그러나 그러한 무력감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인간의 유일한 의무라는 누군가의 말에는 힘찬 확신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나는 아무것도 자신할 수 없지만 그 한 가지 의무에 대해서는 마음 깊은 곳에서 충만함이 우물처럼 차오릅니다.
꼭 본인이 준 사랑만큼이나 사랑받으시기를 역시 바랍니다. 그리고 지치지 않고 이겨내시길 기도합니다. 내가 지나치게 사랑하는 한 프랑스 남자의 말처럼, 희망은 품지 않되 절망하지 않으며, 무언가를 부정하되 체념하지는 않으며, 젊다는 이유로 막연히 불안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많이 사랑하며 사세요. 지나치게 사랑하는 일도 어떤 때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