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erre Boncompain 피에르 본꼼빵
오늘 식사하셨어요?
식사 : 끼니로 음식을 먹음 또는 그 음식
끼니 : 아침, 점심, 저녁과 같이 날마다 일정한 시간에 먹는 밥 또는 그렇게 먹는 일
가만히 보면 두 가지 다 같은 의미를 지닌 말인데 나에게 식사는 내 몸을 채워주는 좋은 영양분으로, 끼니는 급하게 때우는 간단함으로 다가온다.
결혼해 출가하기 전까지 엄마는 늘 내 아침식사를 차려주셨다.
밥을 먹는 시간보다 예쁘게 화장을 하고 나가는 시간이 더 중요했던 시절, 혹여나 못 먹고 나갈까 엄마가 입에 넣어주시던 밥의 의미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내가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갓난아기일 때는 정말 밥 먹을 시간이 없었고, 조금 자라 걷기 시작하고 난 뒤부터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고 먹기 일쑤였다.
그렇게 아이가 자라 홀로 밥을 잘 먹을 수 있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 난 본의 아니게 음식에 대한 관심과 매력을 잊고 살아온 것 같다.
프랑스 유학시절 친구의 집에 초대받아 간 적이 더러 있었다.
부모님들이 타국에서 온 나를 위해 정성스레 차려주신 음식들을 보며 무언가 대접받는 기분에 마음이 붕떴던것 같다.
누군가를 위해 장을 봐오고 정성스레 음식을 만들고 또 그것을 함께 나누는 시간까지.
이 모든 행위에는 어떤 것들이 담겨 있었을까?
‘빨리빨리’가 익숙한 우리나라에서 가져보지 못한 마음의 여유와 태도 그리고 문화가 이해되고 난 후에야 그 고마운 마음을 헤아려본다.
지난겨울 코로나로 아이들과 동고동락 삼시 세 끼를 하며 몇 달을 보냈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되풀이되던 식사를 만드는 일은 나에게는 버거운 일이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첫 점심을 먹고 오던 날 나는 조그만 냉동떡 하나를 레인지에 돌려 먹으며 너무 행복해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좋은 식사를 만들어 먹는 일보다 나 홀로 간단히 먹는 한 끼가 더 절실했기 때문이리라.
내가 움직이기에 필요한 만큼 먹고 허기짐을 때우면 되었고 또 살이 찌면 가끔은 거르기도 하는 끼니였다.
나를 위하는 행위 : 마음의 식사
마흔이 넘어가면서 몸이 아프다며 조금씩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런 신호를 받으면 잠시 조심하다가 괜찮아지면 또 그냥 모른척하고 살았다.
하지만 나의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나의 가족도 내가 하고 싶은 일도 모두가 힘들어짐을 알고 난 지금은, 나 홀로 식사도 조금 더 신경 써서 먹으려고 노력한다.
간소하지만 내 몸에 좋은 음식을 선택하고 손질해서 만들어 먹는 일과는 먹기 위한 행위라기보다는 나를 돌아보는 행위가 되어 나에게 돌아오는 것 같다.
비단 음식뿐 아니라 간단한 차나 커피도 오롯이 나를 위해 마련한다면 그 시간만큼은 나에게 충실한 시간이지 않을까?
애프터눈 티를 즐기려고 떼어둔 시간보다 즐거운 때는 없다
_타샤의 말 중
내가 나의 마음을 알고 내 몸을 알아가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린 듯하다 그리고 지금도 나를 알아가는 현재 진행형이다.
내 몸에 좋은 음식을 마련해서 먹는 시간.
이 시간이 나를 살피고 위하는 시간이고, 이 음식은 내 몸안에서 좋은 에너지가 되어 나오리라 생각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 차 한도 좋다.
나의 마음이 어떠한지 바라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잠깐의 시간을 늘 기억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오늘도 나를 위하는 마음으로 식사를 준비하고 맛있게 먹는다.
“잘 먹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