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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ent Nov 06. 2021

그 해 가을, 나뭇잎들은 울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이제 울지 않는다

오늘도 혼자 산에 오른다. 혼자 산에 오르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둘이 오르면 그대로 좋고 혼자 가야 할 상황이어도 또 좋다. 그뿐이다.

햇살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낙엽들을 느끼며 산의 숨소리를 듣고 나도 한 호흡 뱉어본다. 지저귀는 새들과 딱따구리 소리까지 내가 해석할 수 없는 소리들이 세상엔 참 많다.


맨발로 산에 오르다 보면 내 키보다 몇 자나 길게 뻗은 나무뿌리들이 발에 채이기도 한다. 내게 말을 거는듯하다. 내가 많은 말을 하고 싶은 순간은 무엇인가 내가 들을 이야기가 많다는 것은 아닐까? 엉뚱한 생각도 하며 귀를 기울여 본다.


봄에는 나뭇가지에 새싹이 돋았고, 여름에는 수풀이 우거질 만큼 울창해졌으며, 가을에는 예쁜 단풍이 들어 한껏 뽐내다가 지금쯤은 한 잎 한 잎 떨어져 겨울 맞을 준비를 한다. 겨울이 되면 땅을 따스하게 덮어주었다가 어느 순간 바스러져서 내년 봄에 나올 새싹들을 위한 거름이 되겠지!


나무들은 울지 않았다! 나뭇잎들은 걱정하지 않았다. 언제 떨어질지 어디로 가게 될지 묻지도 않았다. 그저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다른 모든 것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맨발로 산길을 걸으며 산새와 마주하고 있노라면 어디서 보도 듣지도 못한 행복감이 땅에서부터 올라온다. 온 우주의 기운으로 충만해지는 순간 어김없이 물음표가 따라온다.

다람쥐 집일까^^


암이라는 질병 한가운데에 있는 내가 이 순간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이런 충만한 기운에 사로잡히는 게 맞는 걸까?

우리 가족들은 나 때문에 힘들 수도 있다. 나에 대한 염려로 오늘 밤 맘 편히 잠들지 못할 수도 있다.


나뭇잎들은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흘러가는 바람과 새소리와 함께 혼자 또는 한꺼번에 멋지게 떨어지며 장관을 이뤄낼 뿐이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이 모든 것을 홀로 느끼며 이렇게 감사함에 머무르는 하루를 보내도 되는 걸까?

내 발로 산에 오르며 이 모든 기운을 느끼며 감동스러워도 되는 게 맞는 걸까?


아침에 일어나면 선물 받은 하루가 설렌다. 그리고 밤에 많은 걱정으로 잠이 들 땐, 오늘은 여기까지 stop 하고 고민을 멈추며 주문을 외우곤 한다.

"이제 그만~~~~" 텔레토비들처럼 말이다.

가끔 잘 안되기도 하지만 다시 되돌아가곤 한다.

"이제 그만~~~~~^^"


지금 여기 이 순간. 상쾌한 공기 이런 충만한 감정을 어디서도 느껴 본 적이 없었는데......

6개월 검사를 앞두고 있다는 두려움으로 놓쳐버리고 싶지 않다.

아픈 건 자랑이 아니지만 그리 큰 부끄러움도 아리라.


우연히 찾아간 초가집카페

누가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을까?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인체에서 가장 긴 방랑하는 신경인 미주신경?

(내가 자율신경을 해킹하여 두려움에서 벗어나도록 도움을 주는)

내게 큰 사랑을 맛보게 해 준 가족과 지인들?

나를 숨쉬기 어려운  두려움과 고통에 가두었던 암?


나는 이제 밉지 않다. 오동안  힘겨운 시간을 함께 해야 했던 시어머니도. 수년 전 나를 너무 힘들게 했던 직장 동료들도. 나를 나답지 못하게 살라고 괴롭혔던 나까지도!


낙엽 지는 이 가을에 잠시 의연해져 볼까?

그저 자연의 섭리대로 자신의 삶을 빛내는 나뭇잎들처럼 말이다.


자꾸 신에게 질문하지 않고, 신이 축복한대로  숨겨진   진짜 나의 모습을 찾아내어 멋진 하루하루를 사는 삶을 꿈꾸며 스피노자의 사과나무를 심는 달콤한 상상에 빠져본다.


나뭇잎들은 묻지 않았다.
내 시간은 언제 까지냐고.
그저 덤덤히 거기에 찬란하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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