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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ent Mar 29. 2023

책 한 권만 있으면

기다림이 즐거워진다.

전주역

금요일 아침이다. 금요일 공강이라는 수강신청 미션에 성공한 딸아이를 데리러 전주역으로 갔다.

도착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 사실 아이라 부르기엔 너무 커버린 대학교 3학년 생이다.

도착 시간이 지났는데  보이지 않아 전화를 걸었다.

깜짝 놀란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 엄마 어떡하지? 나 깜빡 잠들었나 봐"

아이가 전화를 받고 눈을 뜬 순간 이미 기차는 유유히 전주역을 벗어나고 있었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쩌지?' 다음 역으로 데리러 가야 하나?

다시 아이와 통화하며 엄마가 데리러 갈까? 물었다.

 아이가 첫차로 타고 온 차가 무궁화호라 다음역은 남원역일 거라 한다. 얼추 계산해 보니 왕복 2시간은 걸리 것 같았다. 문득 약속 있다는 것과 낭비될 2시간 남짓이 떠오른다.

 2시간 이상 걸리면 약속시간에 맞추기 너무 빠듯하다. 잠시 고민하는 사이 전화기 속으로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미안했는지 다음역에 도착하면 내려서 버스 타고 오겠노라고 한다. 나는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도 뭔가 개운치 않다. 다시 데리러 간다고 할까? 가지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있는 중에 다시 휴대폰이 울린다.

"엄마! 다음 역 임실이니까 임실 도착하면 다음 기차 타고 갈게. 그리고 역에서 버스 타고 갈게 걱정하지 마"

캐리어를 가지고 오는 아이가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갔지만 여기서 무작정 기다리고 있기엔 버려지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그때 문득 혹시 몰라 가지고 다니는 책 한 권이 스쳐갔다.

그 시간을 보내기에 책 한 권이면 충분하다 되뇌며 아이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다시 기차를 타고 역에 도착하는 시간을 물었다. 그리고 말했다.

엄마가 올 때까지 여기서 너를 기다리고 있겠노라고.

카페에 갈까? 고민하다가 내비게이션을 켜 가장 근거리에 있는 도서관을 검색했다. 요즘 도서관들은 웬만한 카페만큼이나 분위기가 있어서 책 읽기에도 훌륭하다.

괜한 커피 마시지 말고 도서관에 가기로 결정!

차를 돌려 도서관으로 출발하고 5분이 채 되지 않아 도착했다. 막 입구에 들어서려는 순간 눈부신 햇살이 뺨에 인사하는 게 너무 좋았다.

또 고민이다.

인생은 수많은 선택들로 이루어져 있다더니 말이다.

이런 날씨에 안에 있기엔 너무 아까운데 바깥 벤치에서 햇살 한모금하며 읽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이 몸이 돌아서 반대편으로 가고 있다. 한 바퀴 둘러보던 중 옆길에 승마장이라고 쓰인 나무간판이 시야에 들어온다. 승마장?

발동되고도 남는 나의 호기심! 한 번 가볼까? 하는 순간 나의 발걸음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말을 본다. 햇살 아래서 아무 걱정 없이 유유자적 풀을 뜯고 있는 한 마리 말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

무엇이든 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내게선 좀처럼 보기 어려운 모습이 보인다.

닮고 싶었다.

평화로운 말의 표정을 담고 싶었다. 왠지 뭉클한 지금의 이 마음을......

왜 인간은 입을 걱정, 집걱정, 무엇을 먹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소중한 시간들을 놓치며 살게 됐을까?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뭔가가 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쏟으며 보낼까?

나는 또 뭔가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하려는 나를 본다.

사실 이제 나는 무언가가 되고 싶지 않다.

나는 지금 이대로 온전하니까. 그런 것들은 단지 도구일 뿐이고 내가 쓰일 쓰일새일 뿐이다.

나를 힘들게 하거나 해칠 수 있다면, 혹은 도움이 안 된다면 언제든 버려도 좋을 것.

고개를 돌려 걷다 보니 편백 가득한 건지산 등산길이 보인다.

"심봤다~~"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다. 하하하하하

산에 오르며 승마장에서 찍은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자 딸아이가 사진 한 장을 보낸다. 요구르트를 먹으며 기차를 기다리고 있나 보다

마음의 짐을 조금만 조금만 내려놓으면 이런 순간을 종종 맞이할 수 있으려나?

때론 시간을 메울 책 한 권으로 많은 상황이 바뀔 수도 있더라. 정작 읽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실은 그 안에 여유로움을 일상으로 들여오지 못하는 내 마음이 반사되어 나타나지만.......

어쨌든

가방에 책 한 권을 준비해  마음의 여유를 저금해 둔다면 약속 시간에 늦을 누군가와 지체되는 많은 일들에 대한 원망이나 짜증을 별스럽지 않게 넘기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생각지도 못한 길에 들어서거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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