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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무개 May 01. 2024

창 내는 사람

"이건 오프 더 레코드인데……."


몇 잔의 알코올이 들어간 술자리, 알코올의 취기 덕분일까? 서로가 맨 정신이었을 때는 하지 않을 이야기들이 나온다. 얄팍한 농지거리가 나올 때도, 가끔은 심도 있는 이야기가 나올 때도 있기에 살짝 알딸딸한 분위기를 꽤 좋아하는 편이다. 


"종종 네가 그 자리에서 창을 내는 소리를 한다더라."


이 말을 들은 순간 생각이 멈췄다.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내색하지 않았고, 듣고 싶지 않았던 사실. 나는 인간관계에 굉장히 서툰 편이다. 그나마 대학생 때 단체생활을 명목으로 많은 부조리와 집합 덕에 사회생활하는 데는 괜찮아졌지만 객관적으로 20살 이전엔 썩 좋지 않은 사람이었다.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랐고, 친구에게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때문에 중·고등학생 때 친한 친구를 꼽으라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이름이 없었다. 더군다나 대학 때는 자취를, 군인 때는 이사때문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는 횟수가 점점 줄었고, 많으면 년에 한 번 정도 보는 사이가 됐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장거리 연인들에게 자주 쓰는 말이 나에게 해당됐다. 나를 제외한 친구들은 직업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같은 동네에서 자주 보는 사이였기에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몰랐다. 의례적으로 단체로 모일 때나 얼굴을 비추는 게 다였기에.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과 나의 심리적 거리감이 꽤나 멀다는 게 느껴졌다. 그 어색함이 불편해 이런저런 농담을 던지거나 장난을 쳐보지만 오히려 분위기는 더 냉랭해진다. 입을 여는 게 가만히 있는 것보다 못하는 걸 알았을 때 나는 말하기를 그만두었고, 년에 한 본보는 모임조차 가지 않게 됐다.


언젠가 서울에 있던 날, 오랜만에 모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불편하고 어색하지만 그럼에도 좋은 기억들이 많았기에 참석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톡방을 시끄러웠고 새삼 그들과 보냈던 학창 시절이 떠올라 나름 즐거웠다. 문제는 당일 저녁, 시간과 장소를 말해주는 이가 없었다. 내가 먼저 물어볼 수도 있었겠지만…… 나를 불편해하는 이들이 있는 걸 알기에 섣불리 연락할 수 없었고 결국 그 자리에 가지 않았다. 며칠 뒤 다른 친구를 만났을 때 그 친구는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다 같이 모인 날 너한테 전화를 몇 통이나 했는데 네가 안 받았다고 이야기하던데? "


기억을 더듬어봐도, 통화기록을 보아도 전화가 왔던 흔적은 없었다. 혹시나 내가 차단한 번호가 있나 싶어 차단 목록까지 들어가 봤지만 차단한 번호는 없었다. 카톡을 다시 읽어봐도 장소와 시간은 적혀있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있지 않은 톡방에서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을까 싶다.


꽤나 크게 쓸쓸하고 서운했다. 3년이 긴 시간은 아니지만 고등학교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들인데…… 결국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과 나는. 문득 머릿속에 수직선과 수평선이 그려졌다. 나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너희들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직선. 그렇게 만난 교차된 곳이 '고등학교'라는 곳일 뿐이었다. 너희와 나는 한 방향을 바라보는 수직선이 아닌 그저 한 순간 만나 헤어지는 수직선과 수평선 같은 관계였고, 나는 평평한 모래사장에 튀어나온 모난 돌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자위하며 끝내고 싶지만 쉽지 않다. 


끊어진 인연이라지만 종종 꿈에서 그들을 보곤 한다. 그럴 때 상황에 대한 서운함과 나에 대한 혐오를 느낀다. 내가 그렇게 창을 내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이라도 말을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서운함과 얼마나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이었길래 그들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까 하는 나에 대한 자괴감. 아니, 어쩌면 그들은 몇 번 신호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그 신호를 눈치채지 못했을 뿐. 삼십 년을 살았지만 아직도 인간관계란 많이 어렵다. 아마 앞으로는 더 어려울 것이고…….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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